티타티타(김서령 지음|현대문학|2010)
모두가 기적 같은 일(송성영 지음|오마이북|2012)
사랑 아닌 것이 없다(이현주 지음|샨티|2012)
모든 것이 은혜다(브레넌 매닝 지음|양혜원 옮김|복있는사람|2012)
1. 고통 모든 결핍은 욕망으로 발현된다. 그리고 욕망은 사랑과 더불어 위태롭게 존재한다. 재채기만 해도 소문 날 것 같은 한적한 마을에 남편을 잃고 정착한 테레즈와 아들 조르제의 비극적 이야기다. 사회적 테제는 인간의 욕망을 억압하지만, 끝내 그 억압을 떨쳐내는 욕망이 더러 있다. 그런 욕망은 종종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테레즈의 욕망이 그러했다. 홀로 외롭던 테레즈의 사랑은 정당하였으나 아들 조르제는 그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아들의 욕망은 어머니의 욕망을 끝내 허락할 수 없었던 것일까. 욕망과 사랑의 동거는 과연 가능한 것인가. 위태로운 질문은 그저 고통스럽다.
어떤 사랑이든 자기 마음을 인정하느라 보내는 최초의 시간은 축복받은 시간이다. 특히 자신의 감정을 헤아리는 데 그다지 익숙하지 못한 존재들에게는.(84면)
이야기는 비극으로 끝난다. 전쟁이라는 시대적 비극 아래, 엇갈린 욕망은,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면서 어머니와 아들은 불의의 사고로 파국을 맞이한다. 소설은 주로 밤에 진행된다. 어둠의 음울함은 강력한 메타포로 이 소설을 지배한다. 알베르 까뮈는 이 소설에 대하여 이렇게 썼다.
<고통>은 내 마음 깊은 곳에 단단하게 묶여 있던 매듭을 풀어주었고 속박에서 나를 놓아주았다.
까뮈의 <이방인>은, 이 소설에 빚진 바가 있을 것이다. 조르제는 <이방인>의 청년 뫼르소의 어떤 고독과 닮아 있다. 허나 뫼르소는 그 고독을 의연하게 물리친다. 소설을 읽는 내내, 뫼르소가 생각났다. 그리고 유년 시절 나의 고독과 욕망도 생각났다. 그러나 나는 뫼르소처럼 의연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프다. 어머니의 욕망을 끝내 허락하지 않는 나의 욕망, 그래서 이 소설은 나에겐 슬픔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문체로 그려낸 슬픔이 못내 원망스럽다. 조만간 까뮈를 다시 읽어야겠다.
2. 티타티타 삶의 주요 변곡점마다 친구가 있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어느 때부터인가 친구가 아닌 직업이나 어떤 사건이 그 변곡점을 차지할 때부터 난 슬퍼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친구를, 그때 그 시절을 그리워하였다. 소설 속 소연과 미유가 연주했던 '티타티타'(젓가락 행진곡)의 선율은, 마치 내게도 그 언젠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만 같다. '우리'에서 '나'로 변해가고, '나'는 '우리'를 그리워하지만, 못내 그리움을 극복하지 못한채 나의 영역만 지키고 있다. 속상하다.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저마다 슬픔과 상처들을 안고 살아간다. 외다리 아빠를 버리고 미혼모로 소연을 키웠던 엄마, 그런 언니와 조카 때문에 삶의 많은 부분을 포기하고 사는 이모 연희, 자식들을 위해 바람 피는 남편을 참고 살아가는 미유의 엄마, 아버지의 높은 기대감에 늘 좌절하며 살아야 했던 언니 은유. 등장 인물들은 하나같이 평범하나 그들의 상처는 하나같이 예사롭지 않다. 우리도 그러하다. 우린 지극히 평범하나 우리의 상처는 다른 무엇과 비교하기 힘들 만큼 아프다. 작가는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응원하듯 소설을 쓴다. 작가의 문장은 마음의 언어를 읽어내는 데 탁월하다. 작가의 서사는 시각적 감성을 담보하되 시간의 속성을 한껏 활용한다. 배우고픈 글쓰기다.
김서령의 단편들을 주로 읽었는데, 장편 소설은 처음이었다. 같은 '1974년'생이란 이유만으로, 순전히 그 이유만으로 작가의 소설을 처음 읽었던 기억이 있다. 무언가 동지의식 같은 것이 있었다. 그리고 그 소설은 마치 나의 친구처럼 우정을 말해주었다. 이 소설도 그러하다. 숱한 소설을 읽으나, 추억이 되는 소설은 흔치 않을게다. 요즘 작가의 페이스북 담벼락 글을 읽는 재미가 쏠쏠한데, 곧 그의 에세이가 나온단다. 반가운 소식이다.
의심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지옥도 같이 시작되는 법이니까.(123면)
어떻게 하면 삶을 견딜 수 있죠. 나는 자클린의 말을 빌려 묻는다. 소리 내지 않았기에 아무도 나에게 대답해주지 않았다.(241면)
언젠가 우리는 땅속 지하철에서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밖에 뭐가 보여?" "온통 검은 세상." "정말?" "아니……아무것도 보이지 않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검은 세상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말끄러미 무언가를 찾고 있는 우리 모습만 도리어 비치는 것이 아니었던가. 아무것도 없는 땅속에서 땅 밖의 세상을 감지하지 못한 채로 한동안 가두어지는 것. 땅 밖의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 동안 어떠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어서 몸이 꾸물꾸물해지는 불안함. 너희들이 알고 있는 것쯤 우리도 다 알아, 라고 말할 수 없는 유일한 주눅.(285면)
나는 처음 와보는 대학병원의 로비에서 나의 한 시절과 작별하는 중이다. 한 장의 인생이 악보처럼 지나갔으니, 이제 다른 인생이 또 시작될 것이다. 나도 엄마처럼, 연희 이모처럼 또 다른 어른들처럼 훌쩍 키가 자랄 것이다. 그러니 괜찮다. 이쯤은.(288면)
3.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오마이뉴스에 연재되었던 글을 엮은 책이다. 송성영은 글쓰는 농부다. 충남 공주에 살던 지은이가 고속철도가 생기면서 결국 그곳을 떠나 전남 고흥에 거하는 과정을 소박한 글쓰기로 잘 그려 놓았다. 적게 벌고 적게 쓰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저자의 철학은, 현실에서 만만찮은 벽에 부딪치고는 한다. 하지만 낙천적인 그는 결국 자신의 꿈을 소신껏 개척한다.
이 책은 제목처럼 기적 같은 일로 가득하다. 전라도 땅 끝 고흥 바닷가에 우여곡절 끝에 원하는 땅을 찾고, 말도 안 되는 비용으로 땅을 사서 집을 짓고, 또 동네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을 만들었다. 전국 각지에서 기증한 책들로 도서관은 가득 채워졌다. 정말, 모두가 기적 같은 일이다.
책 속에 소개된 여러 이야기들이 다 그렇지만, 가장 감동 깊은 것은 가출한 저자의 친구 아들과 세대를 뛰어넘는 우정을 나누는 장면이다. 소위 스스로 진보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오만은, 그 스스로 고립될 때가 많다. 그는 무소의 뿔처럼 걷되, 이웃과 사람들과 연대하는 길을 택했다. 저자는 가식없는 정직으로 소통하는 법을 안다. 그것이 몹시 부럽다. 진리에 다다른 진심은 기어코 기적을 이루어 낸다.
저는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우파니샤드>의 구절을 읊조려가며 살아가고 있습니다."(37면)
부조리한 세상을 등지고 시골에서 혼자서만 잘 살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과 부대껴 살면서 부조리한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224면)
돼지 같은 세상, 그래도 자유를 꿈꿔라 아들들아.(246면)
세상 살이는 하나로 이어져 있습니다. 한쪽에서 필요 이상으로 누리면 다른 한쪽에서는 그만큼 고통당하게 됩니다.(326면)
4. 사랑 아닌 것이 없다 이현주 목사는 우리나라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영성가이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것은 그의 동화이다. 이 책은 이레에서 2001년에 출간된 <물物과 나눈 이야기>의 개정판이다. 이레에서 붙인 제목처럼, 돌, 쓰레기통, 나무 젖가락, 안경, 잠자리, 손거울, 단소, 빈 의자, 송곳, 도기 등의 사물과 나눈 우화집이다(사물을 의인화하여 대화한다고 어설픈 신학적 잣대를 들이댈까봐 겁난다).
화자인 사람은 어떤 사물을 자신의 고정관념으로 재단하고 정의하여 개념화한다. 개념화된 사물을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소유하고 멋대로 다룬다. 그러나 사물들은, 도리어 인간을 부끄럽게 하여 세상 사는 지혜를 가르친다. 세상 사는 이치에 모든 존재는 저마다의 역할을 한다. 생물학적 정의로 생명을 가져다 붙이지 말라. 생명은 그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호흡할 것이다. 생명은 무릇 그런 것이다. 이 책은 이현주의 동화나 우화가 늘 그러하듯, 따뜻하면서도 날카로운 풍자를 아름다운 문장으로 읊는다.
"고맙구먼. 먼저 있던 자리로 돌려보내 주시니... 산다는 게 무엇인가? 나는 이리저리 굴러다니다가 사람 발에 밟혀도 보고, 자네는 밤길에 돌을 밟아 넘어져도 보고... 그러는 게 사는 것 아니겠나? 자네가 넘어져 상처를 입는 것도 그게 다 자네가 살아있어서 겪는 일일게. 그러니, 그래도 굳이 '너 때문에 사는 맛 한번 봤다. 고마워.' 눈 한번 뜨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세상이 거기 있다네."(15면, '너 때문에'/돌)
"사물을 볼 때마다 마음을 모아서 주의 깊게 보아라. 그렇게 주의 깊게 볼 때 너는 네가 보는 사물과 함께 깨어나게 된다. 그런 일을 되풀이해라. 습관이 되도록 반복해라."(20면, '깨끗하지 않은 것이 없다'/쓰레기통)
"그래도 나는 '갈 데까지' 갑니다. 그러니 슬플 이유가 없어요."
"어디가 너의 '갈 데까지'냐?"
"당신도 나와 함께 그리로 가고 있으니, 나한테 묻지 마셔요."
(38면, '끝은 본디 없는 것이다'/아기 도토리)
"타고난 목소리보다 크게 말하는 사람을 나는 믿지 않는다. 참말은 골목 밖에서 들리지 않고, 고운 노래는 언덕을 넘지 않는 법. 제발 너도 나를 믿지 마라."(58면, '고운 노래는 언덕을 넘지 않는 법'/마이크)
"자네 몸에서 나는 냄새가 무슨 냄새든 어차피 냄새를 풍기게 되어 있는 것이 자네의 숙명일진대, 역겹고 썩은 내가 아니라 향긋한 향내이기를 바라겠네."(119면, '냄새는 사라지지 않는다/떨어진 꽃)
"자네는 꼭 무엇을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딱한 종자(種子)로구먼!"(150면, 돌아가는 몸짓/감꽃)
"이현주는 우리의 그런 고민을 대신해 주고 있다. 그래서 우리 눈을 맑게 씻어준다. 평화를 사랑했던 사람들은 이렇게 끊임없이 고민했다. 먼지 하나 티끌 하나도 모두가 성스러운 목숨들이다. 정말 눈물겨운 생각들이 구슬처럼 꿰어져 있다."(214면, 권정생의 글)
5. 모든 것이 은혜다 "부활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거침없는 열정적 사랑(체스터턴이 말한 대로 'the furious love of God')이다. 복음에 담겨진 하나님의 은혜, 구원에 이르게 하는 그 눈부신 은혜. 그 은혜 앞에 그저 자격 없는 부랑자처럼 우리의 존재를 조아릴 뿐이다. 하여 브레넌 매닝은 그 은혜를 ‘부랑아 복음’이라고 불렀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에 깊이 매몰된 사람이다. 프란체스코회 사제로 서품을 받은 뒤, 스페인으로 건너가 사역하던 그는, 어느 한겨울 밤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
(중략) 물론 브레넌은 그다음에도 숱하게 무너졌고 넘어졌다. 사제로서 성공적인 사역을 하는 듯 보였지만, 어느샌가 그는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사역을 중단하고 건강을 잃었다. 사제직을 내려놓고 결혼했지만 곧 이혼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아바 하나님은 그를 붙잡았고, 그는 늘 그 십자가를 기억했다. 돌아갈 집이 그에겐 있었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직면한 우리 존재의 가난함은, 이제 더 이상 도망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이제 그분의 ‘맹렬하고도 미칠 듯한 사랑’의 대상인 까닭이다. '그분은 까닭없는 사랑이시다.' 국내에 소개된 그의 책을 닥치는 대로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브레넌 매닝의 마지막 저작이자 회고록인 <모든 것이 은혜다>를 권하고 싶다. 그의 인생, 그 자체가 은혜의 역설이며, 부활의 증거이다."("큐티진" 3월호에 쓴 서평 중에서)
이 책은 또한 이리들 틈에서 산 마음이 여린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27면)
내가 그를 ‘더’ 찾았다기보다 그가 ‘더’ 나를 찾았다. 기독교는 어떤 도덕 규칙이 아니라 연애였고, 나는 그것을 직접 경험했다.(100면)
[출처] 은혜는 모든 것입니다.|작성자 hismessage
브레넌 형제,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요.("It's Okay not to be Okay", 116면)
내가 은혜의 세계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실패는 언제나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다.(187면)
환상을 잃는 것은 힘든 일이라고, 왜냐하면 우리는 환상에 의지해서 살기 때문이라고 나는 수도 없이 말했다. 암이 우리를 쓰러뜨리기 전까지는 자신이 천하무적이라고 생각한다. 혹은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기 전까지는 복귀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그 거짓을 다 벗겨 내신다. 왜냐하면 벌거벗은 채 진리 속에서 사는 것이 옷을 입고 환상 속에서 사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간은 내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벗김’의 시간이었다. 내게 남은 것이라고는 이제 누더기밖에 없다. 부랑아 복음을 전한 사람에게 제법 어울리는 모양새라고 하겠다. 전에는 내가 어땠는지 몰라도 지금은 확실히 부랑아다. 부랑아에게 하나님의 이름은 자비 그 자체다. 혹은 현재 내 인생의 언어로 말한다면, 도움이다.(218-219면)
"하나님은 당신을 조건 없이 사랑하십니다. 마땅이 되어야 하는 당신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왜냐하면 마땅히 되어야 하는 모습을 갖춘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2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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