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_/대학가_

존재하는 것에의 행복, 그 푸르른 안식을 찾아 나서다 (공지영,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Soli_ 2006. 6. 6. 23:44

대학가 책 소개, “녹음의 안식 



존재하는 것에의 행복, 그 푸르른 안식을 찾아 나서다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공지영 저/김영사 간)


김진형 간사


그녀에게 있어, 남아있는 최선의 선택은 자신의 영혼이 가진 오래된 갈망, 푸르른 안식을 찾아 떠나는 일이었다. 18년 동안 유물론자로 세상과 치열하게 부딪히며 살아왔고, 허기진 갈망을 냉소적인 언어로 풀어내었던 그녀. 몹시 피곤하여 지친, 회색 도시의 일상에서 그녀는 가끔씩 죽음에의 충동을 가졌다고 한다. 지옥을 경험했다고 한다. 그렇게 길을 잃었다고 한다. 


80년대의 암울한 상처들은 그녀의 성공을 가능케 했던 문학적 모티브가 되었고, 또 그로 인해 눈부신 성공을 거둔 의식 있는 소설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지만 그녀의 가슴은 너무나 지쳐있었고 공허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힘들고 지쳐 주저 앉았던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나, 유럽에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여행을 시작하면서 챙겨두었던 수첩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있었다. “내가 지칠 때, 나는 지금 내 영혼이 어디를 가고 싶어하는지 주의 깊게 보겠다.”(12페이지) 


이 책은 어쩌면 그간 공지영을 좋아했던 사람들에게는 실망스런 책일 수도 있겠다. 이전 소설에 담겨있던 시대의 아픔과 우울이 묻어나는 섬세하고 감성적인 언어. 그리고 때로는 거칠게 보듬어 안는 힘차고 숨가쁜 열정이 공존하는 그녀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무엇인가 어색한 구석이 있다. 유럽의 여러 수도원에서 담담히 쓰여진 고백들은 지극히 개인적이어서, 뭇 사람들과 공감을 이루기에 무리가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이 책 속에 고백되어지는 공지영이라는 작가의 모습은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정직하게 그려진다. 그래서 이 책은 수도원 기행이라는 제목보다는, 공지영이라는 개인이 본래의 자리, 안식의 자리로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보는 것이 더 나을 듯싶다. 한편 우리는, 이 책이 갖는 중요한 의미를 또 다른 면에서 얻을 수 있다. 이 책 이후 세상에 내놓는 작품들에게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따뜻함을 쉽게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존재하는 것에의 행복함, 바로 그 따뜻함 말이다. 이 책에서 언급된 그녀의 회귀(回歸), 그 즈음에서 그녀는 또 다른 감성과 열정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지쳐있을 때, 지금 나의 영혼이 어디를 가고 싶어하는지 주의 깊게 살펴 보자. 회색 도시, 뜨거운 아스팔트를 벗어나 녹음의 안식를 찾아보자. 녹음(綠陰), 푸르른 그늘 속에 오랜 시간 힘들께 뛰어온 나의 심장을 쉬게 하자. 안식을 누리자. 존재하는 것에의 행복함은, 내 영혼의 갈망이 맞닿아있는 곳, 안식의 자리에서 그분과 마주할 때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때, 하나님은 이 책에서 작가처럼 장 루슬로의 시를 인용하실지도 모른다. 


더 빨리 흐르라고

강물의 등을 떠밀지 말아라

강물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248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