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김수영 시인의 열렬한 독자이나, 김도언 시인의 지적도 소중히 간직하련다.
"시인에 대한 평가는 가장 정확하고 객관적인 균형을 유지하고 있을 때 그에 대한 최상의 예의와 존경이 되는 것이다."
"오히려 나는 소유와 욕망 사이에서 일어나는 개인적 분열과 모순 때문에 갈팡질팡하는 그의 쇄말적 진실과 그것이 당대와 불화할 때 무기력하게 절망하는 모습이 솔직하고 멋있어 보였다. 문학이 대학과 사회의 교양으로 널리 퍼지고 있을 때, 그리고 독재정권과 투쟁하는 보루가 되었을 때, 지식인들에 의한, 지식들을 위한 문학적 포지션을 구축하기 위해 김수영은 동원하기 좋은 아이콘이었고, 그 과정에서 김수영도 원하지 않았을 거대한 권위가 만들어졌다. 김수영은 닭이나 키우면서 평생 권위에 맞서 싸운 사람인데, 그 자신이 지금과 같은 권위를 구축하고 있는 걸 과연 스스로 원했을지. 김수영을 거의 교조 수준으로 떠받드는 사람들은 정치적 맥락은 이해할지 모르지만 시는 조금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밑줄은 여기에. 깊이 새겨야 할 아포리즘이다.
"거친 표현이겠지만 문학은 그 어떤 도그마의 울타리에도 갇혀선 안 된다."
"시인에 대한 평가는 가장 정확하고 객관적인 균형을 유지하고 있을 때 그에 대한 최상의 예의와 존경이 되는 것이다."
"오히려 나는 소유와 욕망 사이에서 일어나는 개인적 분열과 모순 때문에 갈팡질팡하는 그의 쇄말적 진실과 그것이 당대와 불화할 때 무기력하게 절망하는 모습이 솔직하고 멋있어 보였다. 문학이 대학과 사회의 교양으로 널리 퍼지고 있을 때, 그리고 독재정권과 투쟁하는 보루가 되었을 때, 지식인들에 의한, 지식들을 위한 문학적 포지션을 구축하기 위해 김수영은 동원하기 좋은 아이콘이었고, 그 과정에서 김수영도 원하지 않았을 거대한 권위가 만들어졌다. 김수영은 닭이나 키우면서 평생 권위에 맞서 싸운 사람인데, 그 자신이 지금과 같은 권위를 구축하고 있는 걸 과연 스스로 원했을지. 김수영을 거의 교조 수준으로 떠받드는 사람들은 정치적 맥락은 이해할지 모르지만 시는 조금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밑줄은 여기에. 깊이 새겨야 할 아포리즘이다.
"거친 표현이겠지만 문학은 그 어떤 도그마의 울타리에도 갇혀선 안 된다."
시인 김수영의 미망인인 김현경 여사의 회고록이 실천문학에서 출간된 모양이다. 책 내용이 무척이나 궁금하다. 김현경 여사는 내가 샘터에 다닐 때 두 번 정도 뵌 적이 있는 분이다. 참 고아하고 점잖은 분이셨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김수영에게 호기심이 있던 나는 그의 선집과 전집, 그리고 그와 관련된 책들을 꽤 찾아서 읽어봤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호의와 찬탄 일색인 김수영에 대한 평가의 대세가 다소 불편하게 느껴졌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김수영은 그가 죽은 직후인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에 한국사회에서 촉발된 지식인 아비투스의 형성과 전개과정에서 특정 집단의 전략적 소용에 의해 적극적으로 과대평가 됐다는 것이 내가 가진 생각이다. 시인에 대한 평가는 가장 정확하고 객관적인 균형을 유지하고 있을 때 그에 대한 최상의 예의와 존경이 되는 것이다. 한글세대가 아닌 탓에 몸에 익은 한문투와 번역을 업으로 삼으면서 익숙해졌을 번역투가 적당히 섞여 있는 그의 시가, 그를 일관되게 옹호하는 세력이 평가했듯이 그렇게 선명한 민중지향성과 근대적 시민의 자유의지를 담아내고 있었는지 난 잘 모르겠다. 오히려 나는 소유와 욕망 사이에서 일어나는 개인적 분열과 모순 때문에 갈팡질팡하는 그의 쇄말적 진실과 그것이 당대와 불화할 때 무기력하게 절망하는 모습이 솔직하고 멋있어 보였다. 문학이 대학과 사회의 교양으로 널리 퍼지고 있을 때, 그리고 독재정권과 투쟁하는 보루가 되었을 때, 지식인들에 의한, 지식들을 위한 문학적 포지션을 구축하기 위해 김수영은 동원하기 좋은 아이콘이었고, 그 과정에서 김수영도 원하지 않았을 거대한 권위가 만들어졌다. 김수영은 닭이나 키우면서 평생 권위에 맞서 싸운 사람인데, 그 자신이 지금과 같은 권위를 구축하고 있는 걸 과연 스스로 원했을지. 김수영을 거의 교조 수준으로 떠받드는 사람들은 정치적 맥락은 이해할지 모르지만 시는 조금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거친 표현이겠지만 문학은 그 어떤 도그마의 울타리에도 갇혀선 안 된다. 시인은 그가 죽었든 살았든 그저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가장 정중한 예의인데, 사실 이것은 불가능한 얘기다. 결론이 없는 얘길 써버렸다.
'scrap_'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이들을 위한 시 (도종환) (0) | 2013.07.17 |
---|---|
유시민의 항소이유서(1985) (0) | 2013.03.04 |
[김규항] 재개 (0) | 2013.02.15 |
[southclock] 소조-김영하 논쟁을 보고 든 생각 두 가닥 (0) | 2013.02.01 |
[雨香] 김영하-조영일 논쟁: 다시 불거진 문학 논쟁에의 관심 (0) | 2013.02.01 |
[김도언] 변방의 작가들을 위하여 (0) | 2013.01.25 |
출판 불황 (0) | 2013.01.25 |
해서웨이의 감동은 영원하고나 (0) | 2013.01.23 |
[한겨레-이성복 시인] 난해한 은유 걷어낸 ‘직유’의 시 (최재봉) (0) | 2013.01.23 |
[진중권] <레미제라블>과 혁명과 사랑 (0) | 2013.0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