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rap_

[한겨레-이성복 시인] 난해한 은유 걷어낸 ‘직유’의 시 (최재봉)

Soli_ 2013. 1. 23. 00:28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570496.html




시인 이성복(61)

이성복 10년만의 시집 ‘래여애반다라’


이성복(61) 일곱 번째 시집 <래여애반다라>(문학과지성사)
신라 향가에서 빌린 주문같은 제목
인생의 여섯단계, 여섯글자로 요약
시 전편에 ‘~처럼’ 직유표현 넘쳐나
모든걸 하나로 잇고싶은 욕망 비쳐
실험시보다 편안한 산문 두드러져


시인 이성복(61·사진)이 일곱 번째 시집 <래여애반다라>(문학과지성사)를 펴냈다. 2003년에 낸 두 시집 <아, 입이 없는 것들>과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이후 10년 만이다.

반가운 마음에 시집을 손에 쥔 독자는 수수께끼 같기도 하고 주문 같기도 한 제목 앞에 당혹해할 듯하다. ‘來如哀反多羅’라고 한자로 새겨 주어도 요령부득이기는 마찬가지다. 이 구절이 이두 문자로 쓰인 신라 향가 ‘공덕가’(功德歌)에서 온 것으로, 양주동의 풀이에 따르면 “오다, 서럽더라”라는 뜻이라고 설명해 주면 비로소 고개를 조금 끄덕일 테다.

“원래의 뜻은 그렇다지만, 여섯 글자 하나하나를 뜯어보면 인생의 파노라마가 거기 다 들어 있는 것 같더군요. ‘이곳에 와서, 같아지려 하다가, 슬픔을 맛보고, 맞서 대들다가, 많은 일을 겪고, 비단처럼 펼쳐지다’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17일 오후 서울 서교동 문학과지성사 사옥에서 만난 그는 더 나아가 이 여섯 글자가 10년 단위로 나뉘는 인생의 여섯 단계에 대응한다고도 보았다. 그렇다면 지난해 회갑을 겪고 30년 봉직했던 대학도 그만둔 그에게는 이제 비단 같은 생의 찬란만이 남아 있다는 것일까.

“그러나 노래가 알지 못하는 이번 생의 기억은 시퍼런 강물이 물어뜯는 북녘 다리처럼 발이 시리다”(<노래에 대한 각서> 부분)

“그래도 처음엔 봄밤의 사과꽃 속으로 지는 달처럼 아름다운 무늬를 지녔으리라”(<눈에 대한 각서> 부분)

그의 유명한 시 중에 <남해 금산>이 있긴 하지만, 그의 시 모두가 비단의 세상을 구가하지는 않는다. ‘래여애반다라’ 여섯 글자로 요약되는 시세계란 사실은 생로병사와 오욕칠정을 모두 포괄하는 큰 한 우주인 것이어서 거기에는 아픈 기억과 어여쁜 기억이 동서(同棲)하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또한 죽음과 삶이 사이좋게 공존한다. 이런 식이다.

“장지로 가는 길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친척 친지들 화장실 들렀다가
통감자와 구운 오징어
그런 것 먹으며 서성거릴 때,”
(<오다, 서럽더라 2> 첫부분)

“마수다, 마수! 첫 손님 돈 받고
퉤퉤 침을 뱉는 국숫집 아낙처럼,
갑자기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생이여

어떻든 봄은 또 올 것이다”
(<來如哀反多羅 9> 끝부분)

인용한 시 넷 가운데 세 편에 ‘~처럼’이라는 직유가 쓰인 것을 알 수 있거니와, 시집 전편에 걸쳐 직유는 불꽃놀이용 폭죽처럼 한껏 터져 오른다. 그중에서도 <비 온 뒤>라는 시의 뒷부분은 가히 직유의 연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처럼’이 찰랑댄다.

“이제 그는 두부를 건져낸
양철통의 멀건 국물처럼
그녀를 기억해야 한다
오는 봄에도 바람은
갓 피어난 보리 모종처럼
유순할 테지만, 장작개비
빠져나간 휑한 부엌처럼
한여름을 견뎌야 한다
비 온 다음 날의 하늘처럼
그녀에게선 전화가 오지 않는다”
(<비 온 뒤> 뒷부분)

시인이 이처럼(!) 직유에 헤픈 것은 무엇 때문일까. 서로 다른 것들 사이에서 닮은 점을 찾아내는 눈썰미가 시에서의 직유를 낳는다는 사실에 착안해 보자. 세상 모든 것을 하나로 잇고 싶다는 욕망이 시인으로 하여금 직유를 부려 쓰게 하는 것 아닐까.

이 시집에서 풍성한 직유와 함께 두드러지는 특징은 난해한 이미지 조작과 형식 실험보다는 편안한 산문적 진술이 자주 보인다는 점이다. 시인은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를 쓸 때에는 걷거나 달려서 목표 지점에 도달하는 방식으로 시를 썼다면, 이번 시집의 시들은 트럭이나 자전거에 실려서 가는 방식으로 쓴 것들”이라며 “그렇지만 불가능이라는 삶의 본질에 대해 질문하고 기록한다는 문제의식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설명했다.

글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