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23

‘시작’은 늘 희망을 갖게 만듭니다.

여전히 신학이 무엇인지 모르고, 여전히 사랑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다만, 그럼에도 그것 없이는 나의 작은 존재가 더 이상 기댈 곳이 없기에, 그 언저리에 늘 그렇게 머물 뿐입니다. ‘신학’을 하지 않으면 내 삶이 더 이상 의미가 없을 것 같고, ‘사랑’이 없으면 더 이상 속사람이 숨쉬지 못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진형이는 순일을 여전히 잘 모르고 있는지도…. 다시 꺼내어 본 편지에서의 고백처럼, 다만 그럼에도 순일에게 좀더 다가가고픈 마음의 설레임, 마음의 그리움, 마음의 욕심이 있을 뿐입니다. 그런 까닭에 마음을 아프게 하던 속상함조차도 제게는 너무 귀했으며, 함께 고민하고 함께 가슴의 쓰라림을 않고 기도할 수 있었던 지난 시간들도 참 행복했습니다. 귀한 행복을 저에게 주신 하나님, 그..

霓至園_/soon_ 2003.05.23

처음 쓴 편지

신학이 무엇인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다만… 신학을 공부한다는 것. 이제는 조금씩 알 것도 같습니다. 거창한 비전이나, 그럴듯하게 말해오던 '소명'을 잊혀지게 만들던 시간들 속에, 다만 그분을 향해 끊임없이 바둥대며 살아가는 것. "나의 가는 길은 오직 그가 아시나니…" 내가 무슨 길을 가야하는 길은 감추시는 하나님. 그것이 저에게 은혜가 됩니다. 삶을 향한 불확실성. 그것이 오히려 내게는 하나님을 따라 살 수 밖에 없는 ‘소명’이 됩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다만… 끊임없이 주고받는 상처들 가운데, 그로인해 지금 나의 삶은 너무 지쳐있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생이, 나의 생이 의미가 있으며 가치가 있을 수 있음은 모두 사랑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입니다. 잠시나마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를 ..

霓至園_/soon_ 2001.08.28

쓰다만 편지

"전태일 평전"이라는 책을 읽었다. 여기선 아직도 금서(禁書)로 남아있는 책이어서 사람들 눈을 피해 조심스럽게 읽은 책이었어. 어렴풋이 알고 있던 '전태일'에 대한 실체. 글쓴이의 논리에 어느 정도는 모순도 있는 것 같고 과장도 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전태일이란 사람이 나타나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를 외치며 스스로 신나를 뿌린 몸에 불을 붙여 죽어간 얘기…. 그를 대하는 느낌은 단지 감동이 아니라, 쉽게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긴장감을 내게 전해준다. 그는 유언장에 이렇게 쓰고 있었다. 그대들이 아는,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 힘에 겨워 힘에 겨워 굴리다 다 못 굴린 나의 나인 그대들에게 맡긴 채 잠시 다니러 간다네. 잠시 쉬러 간다네. 어쩌면 반지(金力)의 무게와 총칼의 질타에 구애되지 않을..

窓_ 1997.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