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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은, 없다

Soli_ 2017. 11. 7. 16:47

<CMR(기독경영연구원)> 2017 Vol. 18호 



4차 산업혁명은, 없다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 – 경제 혁명 100년의 회고와 인공지능 시대의 전망

로버트 J. 고든 지음, 이경남 옮김, 김두얼 감수, 생각의힘 펴냄, 2017년 7월



김진형(생각의힘 편집장)


4차 산업혁명에 관한 논의가 뜨겁다. 2011년 독일 정부는 ‘인더스트리 4.0’ 정책을 추진하며 4차 산업혁명이란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2016년 세계경제포럼(WEF)은 향후 세계가 직면할 화두로 4차 산업혁명을 제시했다. 4차 산업혁명은 로봇, 인공지능(AI), 생명과학, 빅데이터 등이 주도하는 차세대 산업혁명을 말한다. 지난 대선에서 유력 후보들은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해야 한다고 새로운 성장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고,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 직속으로 곧 ‘4차 산업혁명 위원회’를 신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주류 거시경제학의 대가이자 인플레이션, 실업, 경제성장에 관한 세계적인 전문가로 손꼽히는 로버트 J. 고든은, 로봇과 인공지능이 전대미문의 속도로 미국 경제의 생산성 상승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테크노 낙관론자들(techno-optimists)’의 주장, 즉 4차 산업혁명의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로봇이나 인공지능 같은 디지털 기술 분야가 눈부시게 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 성과가 경제성장의 동력이 될 만큼의 성과를 달성하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게다가 불평등이 심화되고 교육 체제가 흔들리고 인구학적 역풍이 불고 정부 부채 문제가 심화되면서 경제성장은 앞으로 훨씬 느려질 것으로 예상한다. 따라서 지금의 젊은 세대는 그들의 부모 세대만큼 교육을 받지도 건강하지도 경제적으로 잘살지도 못하는 첫 번째 세대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는 1870년부터 촉발된 미국의 경제 혁명 100년, 그리고 1970년 이후 경제성장의 둔화 과정을 총체적으로, 그리고 시기별, 지역별, 소득계층별, 산업 부문별 각론으로 다루는 이 방대한 저작이다. 이 책은 세 개의 빅 아이디어에서 출발한다. 


첫 번째 빅 아이디어는 경제성장은 몇백 년 동안 일정한 속도로 경제적 발전을 창출하는 꾸준한 과정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1770년까지 수천 년 동안 경제성장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며, 이후 1870년까지 100년 동안은 점진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다가 1870년부터 1970년까지는 비약적인 경제성장이 이루어졌다. 1869년 대륙횡단철도와 전신의 동시 개통은 미국 전역을 하나로 묶는, 미국의 진보와 미래에 관한 상징적 사건이었다. 제조 기술의 발달과 우편주문 카탈로그와 백화점의 등장으로 인해 가격은 인하되고 가계소득은 상승했다. 도시의 각 가정들은 전기, 수도, 하수도, 가스, 전화 네트워크로 연결되었다. 네트워크화된 주택과 현대식 가전제품은 여성들을 집안일에서 해방시켰으며 여성들이 시장노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TV는 사람들에게 ‘세상을 보는 창’을 선사하며 공적 경험까지 만들어냈다.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위대한 발명‘들은 일상생활의 거의 전 영역에서 혁신과 각성을 일으켰다. 단 한 번의 100년인 이 ‘특별한 세기’는 다른 어떤 100년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고든은 이 특별한 경제 혁명의 세기를 유일하고 반복될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던 여러 양상을 각종 사료와 데이터를 통해 제시하고 논증한다. 


두 번째 빅 아이디어는 1970년 이후의 경제성장은 현란하면서도 동시에 실망스러웠다는 것이다. 3차 산업혁명은 1960년에 시작하여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이 책에는 ‘4차 산업혁명’이 등장하지 않는다. 저자는 현재를 3차 산업혁명 시기로 분류한다. 4차 산업혁명으로 부를만한 경제성장의 혁신은 여전히 요원하기 때문이다. 


고든은 경제성장의 지표로 국내총생산(GDP)가 아니라 총요소생산성(total factor productivity, TFP)을 제시한다. TFP는 노동과 자본 투입량에 비해 생산량이 얼마나 빨리 늘어나는지 측정하는 척도인데, 1970년 이후의 TFP는 1920년부터 1970년까지 이룩한 성장 속도의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1970년 이후에도 혁신은 계속되었지만, 그 범위는 엔터테인먼트와 정보통신기술에 집중되어 예전만큼 전면적이지 않았고 생활수준의 향상 속도도 느렸다. 컴퓨터 속도의 진화, 메모리 가격 하락률, 정보통신기술 투자의 폭등 등으로 TFP가 일시적으로 빠르게 상승하기도 하였으나 1994~2004년까지의 10년에 국한되었다. 요약하면, 3차 산업혁명은 2차 산업혁명의 경제적 성과에 현저히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세 번째 빅 아이디어는 미래의 경제성장을 예측하기 위해서는, 1970년 이후 미국의 성장 기제가 만들어낸 주요 역풍을 살펴보고 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악화되는 불평등은 소득증가분의 상당 부분을 최고 1%로 몰아주어 하위 99%의 몫을 더욱 위축시켰다. 20세기 내내 빠르게 성장했던 교육 수준은 이제 정체되기 시작해 생산성 성장을 감소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1인당 노동시간은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와 함께 줄어들고 있다. 늘어나는 은퇴한 노령 인구와 줄어드는 생산가능인구 비율은 재정적 역풍을 초래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미국은, 그리고 인류는 과연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까. 


이 책이 주목하는 것은 현 시대가 맞닥뜨린 경제성장의 둔화가 아니라 1870년부터 1970년 사이의 혁명적 한 세기다. 1970년 이후 성장 속도의 둔화는 새로운 발명과 혁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음식, 옷, 주택, 교통, 엔터테인먼트, 정보, 통신, 건강, 의료, 근로 조건 등 생활수준을 결정하는 많은 기본적인 차원에서 이룰 것이 이미 다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적어도 고든에 의하면, 3차 산업혁명은 2차 산업혁명의 경제적 성과에 현저히 미치지 못했으며, 4차 산업혁명의 가능성을 긍정할 어떤 데이터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상황에서 생산성을 높이고 저성장 시대의 역풍을 퇴치하기 위한 정책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고든은 ‘결과의 평등’을 위해 세금 체제의 누진성 강화, 최저임금 인상, 근로소득 지원세제 등을, ‘기회의 평등’을 위해 영유아 교육 기회 확대, 중·고등교육 강화, 퇴행적 규제 완화 등을, 인구 및 재정 역풍에 맞서기 위해 이민 정책의 재고와 세제 개혁 등을 제안한다. 

  

이 책은 1870년 이후 현재까지의 미국의 경제를 다루고 있지만, 우리에게도 공명하는 바가 적지 않다. 미국이 1970년부터 1970년까지 경제 혁명을 이루어냈다면, 한국은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고도성장을 이루어냈다. 미국의 1970년 이후, 그리고 한국의 1980년 이후도 유사하다. 경제적 불평등은 심화되고 있으며 본격적인 저성장시대를 지나고 있다. 고든은 최근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경제성장의) 황금기와는 달리 성장이 항구적으로 둔화될 것이라는 점을 양국 모두 받아들여야 한다.”(<중앙일보>, 2017년 7월 26일자) 따라서 4차 산업혁명의 신화를 쫓기보다는, ‘4차 산업혁명 위원회’를 만들기보다는, 결과의 평등과 기회의 평등을 위한 고든의 정책 제안을 우리의 상황에 맞게 개발하고 적용해야 하지 않을까. 


(17/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