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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자, "노을의 진실"

Soli_ 2009. 4. 30. 21:53

양귀자의 "노을의 진실"이란 수필을 읽으며, 
세상이 어두울 수록 희망을, 아름다움을 도모하는 것,
노을의 희망을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양귀자의 수필 중 일부를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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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이야기이지만 딸아이가 다섯 살쯤이었던 
어느 날 서편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 주홍빛 노을을 가리키며 내게 물었다. 
저것은 무엇이냐고 그래서 나는 대답했다. 
저것은 노을이라는 것인데 낮 동안만 세상에 머무르도록 되어 있는 
해님이 이제는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왔음을 아쉬워하며 하늘에다 쓰는 작별의 편지라고.

하늘에다 쓰는 해님의 작별편지가 노을이라는 내 대답은 딸아이보다 오히려 나 스스로를 더 감동시켰다. 
그랬으므로 나는 더욱 기고만장해서 이번에는 백과사전을 펼쳤다.
어렴풋이 알고 있던 노을에 관한 과학적 상식을 보다더 확실히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다가 그만 말을 잃고 말았다 백과사전은 적고 있었다. 
노을은 하늘에 먼지가 많은 날 생긴다고.

공기 중에 떠 있는 먼지는 파장이 짧은 청색 계통은 되돌려 보내지만 
파장이 긴 적황색 계통은 그대로 통과시키기 때문에 하늘이 붉게 물든 것처럼 보인다고.
반사체의 역활을 하는 먼지가 많으면 많을수록 노을은 더욱 붉고 아름다워진다고.

그러한 까닭에 진실은 그토록이나 냉정한 것인 탓에 어른들은 사랑하는 아이에게
"그런 건 몰라도 돼" 라고 말 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몰라도 좋은 것을 굳이 알고 나면 그때부터 삶의 신비는 사라지고 
현실의 뻑뻑함만 남는 법이었다.
노을이 해님의 작별편지이기는커녕 세상이 올려보낸 먼지들의 난무라는 진실에 대해
그러므로 나는 지금까지도 딸아이에게 입벌리지 않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지금, 어떻게 살아야 제대로 사는 것인지 
아직도 다 알지 못한 채 속절없이 삶의 나이테만 늘려가는 요즘 
나는 다시 노을을 생각하고 있다. 

더러운 먼지가 많은 날 생긴다는 그것... 
먼지가 많으면 많을수록 더 붉고 아름답다는 그것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