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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일, 제주도는 여전히 고독하다(<지슬> 리뷰, 오마이뉴스)

Soli_ 2013. 4. 1. 17:16

오마이뉴스에 21번째 기고한 글이며(오름), "제주도의 고독, '지독한 슬픔'으로 초대합니다"란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4월 3일, 제주도는 여전히 고독하다

 

-영화 <지슬> 리뷰-




영화 <지슬>의 오멸 감독은 제주 방언에 서툰 관객을 위해 자막을 선사한다. 친절함일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제주민들이 우리를 '육지사람'으로 여기듯, 나도 그들을 그저 '섬사람'으로만 여겼던 것 같다. 그들의 인식에는 깊은 슬픔과 원한이 스며 있지만, 난 그저 사치스런 환상에 머물러 있다. 언젠가 제주도를 여행하다 유독 불친절한 주민 한 분을 만났다. 사소한 오해였지만, 그는 우리 일행에게 거침없는 분노를 쏟았다. 그때 들었던 된소리와 독특한 억양은 한동안 잊혀지지 않았다. 서울말을 쓰다가도 화를 내기 시작하면서부터 제주 방언을 썼다. 흥분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우리를 배척하려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언어의 단절은 그 섬에서 우리를 외롭게 했다. 난 결국 그에게 '육지것들'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고독, 그 슬픔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섬'으로 존재하는 격리된 슬픔, 제주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_정현종, <섬> 

'섬'으로 존재하는 사람들. 정현종 시인은 두 개의 문장으로, 군중 속에 존재하는 '섬'의 고독을, '섬'으로 존재하는 격리된 고독을 그려 낸다. 하지만 시인은 격리된 고독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다. 기어코 섬에 닿고자 열망한다. 내가 볼 때, 그 열망은 곧 희망이었다. 영화 <지슬>은 섬 제주의 고독을 지독한 아름다운 영상과 서사 속에 풀어낸다. 지독한 슬픔을 담아내는 흑백의 영상은 자칫 핏빛으로 그득했을 잔혹함을 애써 외면한다. 자막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엿들으며 웃고 울다가 끝내 그들의 고독에 닿앟다. 격리된 고독, 그리고 그 안에 간직된 오래된 슬픔을 보았다.

  

우린 먼저 세상을 떠난 이의 죽음을 기억하고 기념한다. 그가 특별히 대단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나의 가족이기에 그가 죽은 날, 그를 기념하여 모이고 추억하고 영면을 기린다. 어느 인생이라도 자신이 태어나고 죽은 날은, 오롯이 그의 날이 된다. 허나 제주민들은 그럴 수 없었다. 특정한 날, 마을 사람들이 모여 다같이 제사를 드린다. 죽은 날로 미처 헤아릴 수 없는 숱한 '나의 사람들'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함께 제사를 드리며, 그 잔인하고 모진 슬픔을 곡한다. 그날은, 그들 스스로 함부로 입밖에 내지 않는 4월 3일이다. 

1947년 3월 1일, 제주에서 미군정 체제와 관리들의 행태에 항의하던 도민에게 경찰이 발포한 사건을 계기로 시민들의 항거가 시작되었다. 군정 당국은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도민들을 폭도로 규정하며 구금, 고문을 자행했고 마침내 이듬해 4월 3일부터 민중 무장 봉기가 시작되었다. '제주 4.3 항쟁'의 시작이었다. 같은 해 출범한 이승만 정부는 제주도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육지의 대규모 군인과 경찰을 투입하여 강경 진압하였고, 이 과정에서 무고한 주민들이 희생되었다. 이 사태는 1954년 9월 21일까지 지속되었고, 희생자는 최소 25,000에서 30,000명에 이른다. 당시 제주민 가운데 무려 10퍼센트가 희생당한 것이다. 

숨막히는 슬픔은 아득한 아름다움 속에 묻히고



영화는 1948년 11월 17일 계엄령 선포 직후 산간마을 일대를 초토화시킨 대대적인 토벌 작전에 맞춰 시작한다. 군 당국은 해안선 5km 밖의 모든 사람은 폭도로 간주한다고 선포하였고, 마을 사람들은 그들을 피해 피난길에 오른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도망치는 이유를 잘 알지 못한다. 그들이 당할 비극을 미처 짐작하지 못한채 잠깐 자리를 피해 생존을 도모할 뿐이었다. 

그들은 가족과 친지, 이웃들과 도란도란 모여 살던 순박한 촌사람들이었다. 농사를 짓고, 돼지를 키우고, 노모를 모시고 아이들을 키우고, 사랑을 꿈꾸는 총각이 있고, 책을 사랑하는 소녀가 사는 마을이었다. 그들은 도망쳐 동굴 '큰넓괘'로 숨는다. 그들은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는 마지막 은신처에서 지슬(감자)을 나누며 소박한 생의 희망을 나눈다. 

반면 미처 피하지 못한 사람들이 남은 마을에는 무자비한 광풍이 휩쓸고 있다. 공인된 폭력인 국가권력은, 갓난아이부터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남김없이 죽이고 불질러 초토화시킨다. 관객은 위기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마을 사람들의 투박한 담소를 지켜보며 웃다가도, 마을로 옮겨진 비극의 현장을 지켜보면서 그만 숨이 멎을 것만 같은 공포를 마주한다. 

책을 좋아하던 소녀 순덕이 책을 가지러 마을에 내려갔다가 돌아오지 않는다. 순덕을 찾으러 그를 사모하던 총각 만철과 아버지가 경찰인 '말다리' 상표는 순덕을 찾아 마을로 내려간다. 순덕은 토벌대에 발각되어 쫓기고, 마침내 토벌대의 상덕과 마주친다. 토벌대에 속해있으나 명분없는 싸움에 심각한 도덕적 딜레마를 겪으며 방황하던, 그래서 탈영을 모의하던 군인 상덕은 끝내 순덕을 쏘지 못한다. 상덕은 왜 그들이, 이 가녀린 소녀가 폭도인지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결국 순덕은 잡히고, 상덕은 또 모진 기합을 받는다. 순덕은 강간을 당하며 짓밟힌다. 상덕은 자신이 보초를 서는 시간, 아무도 없는 그때 순덕에게 지슬을 건네다 그만 순덕에게 죽임을 당한다. 물론, 순덕도 군인들에 의해 죽는다. 그리고 만철은 이 광경을 묵묵히 지켜보며 숨죽여 울고 있다. 감독은 만철과 상태가 마을에서 그들의 은신처인 큰넓괘까지 달리는 장면에서 순덕의 실루엣을, 제주의 산하와 오버랩시킨다. 숨막히는 슬픔은, 아득한 아름다움 속에 아득히 묻힌다. 

거동이 불편해 집에 두고온 노모가 걱정되어 마을에 돌아온 무동은, 불타버린 어머니의 죽음을 확인한다. 무동은, 자식들을 위해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품고 있던 어머니의 지슬을 가져와 마을 사람들과 나눈다. 그리고 군인들은 마침내 그들의 은신처를 알아내고 토벌에 들어간다. 마을 사람들 속에서도 배신자가 나타난다. 비극은 그렇게 완성된다. 

씻김굿으로의 초대

 


영화는 엎어진 제삿상을 보여주며 시작하고 마무리된다. 그리고 '신위(神位)', '신묘(神廟)', '음복(飮福)', '소지(燒紙)' 등으로 이어지는 제사의 순서에 맞춰 서사를 수행한다. 감독은 이 영화를 하나의 제사, 씻김굿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지금도 4월 3일이면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제사를 지내는 것처럼, 감독은 영화를 통해 제주민들 뿐만 아니라, '육지것'들인 우리도 그 지독한 슬픔의 현장에 초대하고 있는 것이다. 

2000년 국민의정부는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제주 4.3 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를 발족하였다. 그리고 2003년 10월 31일 노무현 대통령은 국정책임자로선 처음으로 국가권력에 의한 대규모 희생이 이루어졌음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하였다. 2006년 4월 3일 노 대통령은 제주 4.3 희생자 위령제에 참석하여 추도사에서 다음과 같이 거듭 사과의 뜻을 밝혔다. 

 

“저는 먼저 깊은 애도의 마음으로 4.3 영령들을 추모하며 삼가 명복을 빕니다. 오랜 세월 말로 다할 수 없는 억울함을 가슴에 감추고 고통을 견디어 오신 유가족 여러분께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울러 무력충돌과 진압의 과정에서 국가권력이 불법하게 행사되었던 잘못에 대해 제주도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 2년 반 전, 저는 4·3사건 진상조사 결과를 보고받고, 대통령으로서 국가를 대표하여 여러분께 사과드린 바 있습니다. 그때 여러분이 보내주신 박수와 눈물을 저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늘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뒤이어 등장한 이명박 대통령은 4.3 희생자 위령제를 단 한 번도 찾지 않았다. 그의 대통령 재임 시절, 일부 보수 정치인들은 종종 4.3 항쟁을 '폭도들의 봉기'로 표현하여 물의를 빚기도 하였다. 박근혜 대통령도 후보 시절 '4.3의 아픔을 해소하겠다'고 약속하였으나 올해 위령제는 불참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제주도는 여전히 고독하다. 영화 <지슬>은 우리를 씻김굿으로 초대한다. 죽은 영혼과 산 사람들의 원은(怨恩)을 헤아려 슬픔을 씻어내자고 우리를 초대한다. 

제주민들 가운데 2만의 관객이 이 영화를 보았단다. 2만이란 숫자가, 이 영화를 보았을 그들의 마음이, 이 영화를 보던 내내 생각나서 가슴이 아팠다. 슬프지만 난데없는 웃음을 주었던 영화, 그 웃음은 독한 슬픔의 패러독스다. '육지것들'에 대한 한서린 그 슬픔이, 이 영화를 통해 씻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했다. 우리의 진심이 그 섬의 슬픔에 닿을 수 있기를, 그래서 시인의 고백처럼 '그 섬에 가고 싶다'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시인의 희망을 가슴에 쓸어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