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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이데올로기'를 넘어 다시 가족에게로 (오마이뉴스, 130227)

Soli_ 2013. 2. 27. 17:07

오마이뉴스에 10번째로 기고한 글이며, "'서영이'에게 익숙한 당신께 다른 시각을 권합니다"란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가족 이데올로기'를 넘어 다시 가족에게로
[서평] 고종석의 신작 혹은 마지막 소설 <해피 패밀리>(문학동네, 2013)



아버지와는 얼굴도 마주하기 싫어 집을 나가 살았고, 심지어 시댁에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거짓말했다. 그렇게 결혼해서 3년을 넘게 살았다. 남편과 상의도 하지않고 피임약을 먹으며 임신을 거부했던 것은, 아마도 아버지에 대한 상처, 가족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녀에게 가족이란 근원적 절망이었다. 물론 사랑하는 동생이 있다. 쌍둥이로 태어났지만, 자신을 누나라고 부르며 세심히 챙겨주었던 동생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원망스런 아버지와 결별할 수만 있다면, 끝내 동생과의 인연도 포기할 마음이 있다. 그런데 아버지는 자신이 몹쓸 아비라는 것을 너무 잘 안다. 그래서 유학간다고 거짓말하고 결혼한 딸의 행방을 알면서도 죄인처럼 숨어 지낸다. 그저 그림자처럼 딸의 주위를 오가며, 딸의 안위를 걱정하고 지킬 뿐이다. 어느날 아버지는 딸의 사위를 구했고, 사위는 또다른 어느날 자신을 구해준 그 남자가 아내의 아버지란 것을 알게 된다. KBS 주말 연속극 <내 딸 서영이>의 이야기다. 



아내는 서영이를 보며 울었다

드라마가 거의 결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우리가 예상하듯, 서영이는 아버지와의 화해를 받아들인다. 한때 몹쓸 아버지였지만, 아버지는 자신의 출생으로 꿈을 접어야 했고 어릴 적 자신을 끔찍히 아꼈던 딸바보 아빠였고, 커서는 남편의 목숨을 구할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자신의 생명도 위태로운 지경에 처한 아버지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서영이는 그렇게 가족을 되찾고 있다. 

드라마를 보는 나의 아내는 곧잘 운다. 칠남매 중 여섯 째로 살았고, 막내가 아들인 이유로 늘 찬밥 신세였던 아내는 가슴에 맺힌 것이 많다. 서영이처럼은 아니지만,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몹쓸 기억을 제법 많이 가슴에 안고 산다. 그런 까닭에 서영이가 아버지를 되찾는 과정은, 아내에겐 불가능한 그리움이자 꿈이다. <내 딸 서영이>는 '가족 이데올로기'의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지만, 아내의 꿈은 결코 닿을 수 없는 곳에 그저 그리움으로 있을 뿐이다. 


고종석의 페르소나

고종석의 신작 소설 <해피 패밀리>를 읽었다. 단단한 문장 속에 펼쳐지는 이 소설의 제목은 역설적이다. 고종석은 가족에 대한 근원적 회의를 담담한 서사 속에 담아내고 있다. 어찌보면, 고종석의 <해피 패밀리>는 드라마 <내 딸 서영이>와 정반대의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 것 같다. 

소설은 여느 가족처럼 행복해보이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회과학과 외국어 소설 분야의 책을 만드는 편집장 한민형을 중심으로, 가족을 이루는 9명의 인물이 각자의 시선으로 가족이란 큰그림의 조각을 맞추어 간다. 우리의 평범한 기대는 큰그림이 완성될 즈음, <내 딸 서영이>처럼 어떤 극적 화해에 이르지 않을까 추측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는, 완성된 그림속에 또하나의 파문을 던지려 한다. 

첫 번째 독백. 아들 한민형은 편집장으로 일하나 책의 이상, 혹은 낭만 따위가 아닌 책의 비루한 현실에 그저 도피할 뿐이다. 어떤 면에서 한민형이란 인물은 글의 무력함을 토로하며 절필 선언을 한 고종석의 페르소나처럼 보인다(참고로 이 소설은 고종석의 절필 선언 이전에 쓰여진 것이다). 누이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도 그런 심증을 더욱 굳히게 한다. 한민형은 사람이 쓴 글에 대한 기대를 이미 잃은지 오래되었다. "'글과 사람'이라는 말은 확실히 과장된 격언"이라고 단정 짓고, 그저 책은 "세상에서 나를 격리하는, 아니 보호해주는 벽"으로 존재한다. 한민형에게 "책은 아편이다. 술만큼이나". 그런 한민형의 손에 들여있는 책은 아이러니하게도 프랑수아즈 파리스의 소설 <행복한 가족>이다. 한민형은, 저자를 대신하여, 혹은 우리를 대신하여 묻고 있는 것이다. "행복한 가족이란 과연 존재하는 것인가?"

해피 패밀리의 불행

한민형의 독백을, 아버지 한진규의 독백이 잇는다. 그리고 어머니 민경화가, 다른 이들의 독백이, 이 가족들의 민낯을 보여준다. 한진규는 아들을 편집장으로 둔 출판사의 사장이다. 아버지는 도대체 욕심도, 열정도 없는듯 보이는 아들 한민형이 못마땅하다. 어머니 민경화는 남편 몰래 바람을 피고 교통 사고로 죽은 친구의 딸을 입양시켜 시녀처럼 부린다. 입양된 동생 한영미는 엄마에게 괴롭힘을 당하며 자라다가 민형의 도움으로 명문대학에 입학한 후에야 가족들의 인정을 받는다. 한민주는 입양된 한영주와 같은 방을 쓰는 것이 못마땅했다. 둘은 동갑이었고, 마치 그림자처럼 자신을 따라다니는 영주를 괴롭히는 것은 당연했다. 한민형의 아내 서현주에겐 가족에 대한 지나친 기대감은 처음부터 없었다. '그들을 지금까지 함께 살게 한 것은 그저 관성'이었음을 발견하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아버지 한진규도, 남동생 한민형도 그리워하는 누이 한민희. 

유럽 신화의 요정 같은 아이. 탐미 속에 윤리를 감추고, 윤리 속에 탐미를 숨기던 아이. 천사의 육체에, 사시미의 와사비처럼 악마의 쏘는 맛을 살짝 묻히고 다녔던 아이. 그 쏘는 맛 때문에 더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아이.(61면)

한민희는 대학생이 된 이후, 얼마 되지않아 자살한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민희가 자살에 이르게 된 과정은, 소설의 마지막 즈음에 소개되는 민희의 일기와 유언장 같은 마지막 편지에서 밝혀진다. 자살의 이유가, 이 가족의 불행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 같지는 않다(자살의 이유를 이 글에선 밝히지 않겠다). 다만 그 사건은, 보다 근본적 문제의 과정일 뿐이다. 지극히 현실적인 개연성이 이 가족들에게서 발견되지만 유독 한민희란 캐릭터는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이다. 고종석이 언제부턴가 금기시된 어떤 통념과 합의에 도전해 왔듯이, 한민희란 인물에 그런 작가의 욕망이 투영된 것은 아닐까 추측했다. 한민희란 인물은 비현실적이나, 그녀의 욕망은 지극히 세속적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건 한민희의 죽음을 통해, 이 가족의 근본적 문제는 전면에 부각되고 봉합된다. 

가족들의 독백을 통해 발견하는 것은 그 속에 잠재된 깊은 불신이다. 서로를 원망하고 오해하지만 내밀한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근본적 원인은,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소통과 연대가 불가능하다는 것에 있다. 그런 불가능에도 불구하고, 한민형의 가족들은, 자신의 욕망을 가족들에게 요구하고 집착한다. 작가는, 정겹고 행복해야 할 당위로서의 가족이란 이데올로기에 도전하고 있다. 우리의 오랜 믿음인 가족이란 성역에 도전한다. 결코 소통되지 않는 우리의 고독이 있다는 것을, 그 엄연한 사실을, 가족이란 공간을 통해 더욱 극적으로 드러내고자 했을 것이다.  

하기야 한 사람이 또 한 사람을 어떻게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겠는가?(153면)

가족 이데올로기를 넘어

<내 딸 서영이>에서 서영이에게 닦친 불행은 현실적이다. 간혹 그처럼 '몹쓸 부모'를 보았다. 그런 가난은 흔한 세상이다. 허나 '몹쓸 부모'의 회심과 극적인 변화, 그리고 서영이가 아버지와 화해하는 과정은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사실 우리의 감동은, 그런 비현실적 서사에서 비롯된다. <해피 패밀리> 속의 가족 이야기도, 한민희를 둘러싼 사건을 제외하면 나름의 현실적 개연성을 유지하고 있다. 가족이란 공고한 이데올로기의 허상에 억눌린 우리의 위태로운 고독은 지극히 평범한 현실이다. 


어쩌면 고종석은 금지된 사랑을 무기 삼아 '가족 이데올로기'를 극복하되, 함께 있지만 여전히 홀로 서 있는 개인에게 집중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여 작가는, 가장 가엾은 아이 한지현에게 가족의 의미를 다시 설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의지해고 연대해야 할 새로운 가족의 의미를 말이다. 

“응, 따지고 보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다 우리 식구지.”
“그게 무슨 말이야?”
“위로 위로 올라가보면 조상이 똑같을 테니까.”
“단군 할아버지 말하는 거야?”
“단군 할아버지도 그렇고, 또 더 위로 위로 올라가면 세상 사람들 모두의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있을 거 아냐?”
‘응,그렇구나. 사람들은 모두 식구구나. 그럼 저기 경비 할아버지도 식구고 만둣집 아줌마도 식구고 응, 응, 다 식구네?“
“그렇지.”
“유치원 선생님도 식구고 은미도 식구고 봄이도 율이도 식구네?”
나는 신이 나서 소리쳤다.
“그렇지, 그렇지. 그런데 사람들만이 아니란다. 원숭이, 고양이, 개, 사자, 참새, 꽁치, 소나무, 대나무, 장미꽃 이런 것들도 따지고 보면 다 식구란다.”
(18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