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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손택의 길을 생각한다 (오마이뉴스, 130226)

Soli_ 2013. 2. 26. 00:50

오마이뉴스에 9번째로 기고한 글이며, "박근혜가 탐탁잖은 당신께 이 책을 권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한편,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은, 오마이뉴스 쪽에서 보통 제목을 다시 정합니다. 아무래도 언론사이니까 시의성을 고려한 좀더 대중적이고 직설적인 제목으로 짓지요. 보통은 저도 오마이뉴스가 정한 제목들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글의 제목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이 글은, '박근혜가 탐탁잖은 당신'께 쓰는 글이 아니라, '나의 희망이 탐탁하지 않은 우리'에게 쓴 글인 까닭입니다. 



다시, 손택의 길을 생각한다
무엇보다 '타인의 고통'이 우리 곁에 여전히 존재하므로


2013년 2월 25일, 경제민주화를 전면에 내세운 박근혜는 대한민국 18대 대통령으로 공식 취임했다. 1974년 퍼스트레이디로 세상에 나섰던 그녀는 40여 년 만에 아버지 박정희를 이어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된 것이다. 취임 일성으로 '제2의 한강의 기적'을 만들겠다고 선언했고, 비정규직 문제를 임기 중에 해결하겠다는 굳은 의지도 보여주었다. 박근혜와 함께 경제민주화 공약의 전면에 섰던 김종인은 새로운 정부에 중용되지 못했고, 새로운 정부의 어느 누가 김종인의 역할을 대신할지 막연하게 보였지만, 어찌되었건 박근혜는 대통령 취임식에서 경제민주화 화두를 계속 유지했다. 두고 볼 일이다. 

박근혜보다 위태로운 나의 희망

지난 대선, 패배한 48%에 속하여 박근혜의 반대편에 있었던 나는, 종일 소란스러웠던 대한민국 속에서 짙은 허무함으로 허덕이고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 어떤 희망을 말해도 냉소하고 비난했던 나의 마음은 자못 무력했다. 진보의 편에 있다고 믿고 싶지만, 그 믿음은 힘겨웠고 나의 희망은 아득했다. 기실 박근혜보다 위태로운 것은 나의 희망이 아니던가.  

2004년 12월 28일, 수전 손택은 골수성 백혈병으로 생을 마감했다. 나에게 손택은 자유와 진보의 길이었고, 희망이었다. 수전 손택은 죽었지만, '손택의 길'은 남았다. 그리고 2013년 오늘, 나의 무력한 마음에, 위태로운 희망에게 다시 손택의 길을 이야기해주련다. 

수전 손택(1933-2004)은 소설가이자 에세이 작가였고, 예술 평론가였다. 그녀는 '예술에 온 정신이 팔린 심미가'이자 '열렬한 실천가'로 불리길 원했다. 서른세 살에 출간한 평론 모음집 <해석에 반대한다>는 당대 지성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손택은 "해석은 지식인이 예술과 세계에 대해 가하는 복수다"라고 도발했고, 특히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를 구별하던 당시 문화계를 재기발랄한 언어로 비판했다. 무엇보다 손택은 강인한 여성이었다. 40세에 유방암에 걸렸지만 투병하여 이겨냈고, 이 과정을 <은유로서의 질병>이란 작품으로 출간하였다. 


손택의 대표작 <타인의 고통>

그녀의 대표작은 2003년에 출간된 <타인의 고통>일 것이다. 이 작품은 25년 전 출간된 <사진에 관하여>의 연작으로, 이미지가 사용되는 방식과 그 의미, 전쟁의 본성, 연민의 한계, 양심의 명령 등을 탐구한다. 특히 이라크 전쟁 직후, 폭력이나 잔혹함의 이미지가 미디어를 통해 소비되는 방식, 즉 '타인의 고통을 일종의 스펙터클로 소비'하는 현실을 폭로한다. 타인의 고통은 그저 반복되는 재난 뉴스처럼 유통되며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한다. 나의 연민이 필요 이상 개입되는 것을 막는다. 우리는 더이상 공감하지 않는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손택은 잊고 있었던 우리의 소명을 재차 강조한다.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우리가 상상하고 싶어 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휘저어 놓는 고통스런 이미지들은 최초의 자극만을 제공할 뿐이니.(<타인의 고통>, 154면)

손택이 세상을 떠난 후, 아들 데이비드 리프가 서문을 쓴 그녀의 유고작 <문학은 자유다>가 2007년 출간되었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문학 평론, 그리고 예루살렘상, 오스카 로메로상 등의 수상 연설과 강연 원고를 모은 것이다. 이 책의 제호는 <타인의 고통> 개정판 부록으로 실린 독일 출판협회 평화상 연설과 동일하다. 소설가이자 예술평론가로서, 저항하고 실천하는 양심으로서의 손택의 면모가 잘 담긴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수전 손택의 입문서로 <타인의 고통>을 권한다면, 손택 사상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책으로 <문학은 자유다>를 추천하고 싶다. 

손택 사유의 절정 <문학은 자유다>


1부 '아름다움에 대하여'의 세 번째 에세이 '도스또옙스끼를 사랑하다'는 나의 통념에 거세게 도전하는 오래 간직하고픈 글이다. 

도스또옙스키를 사랑하는 사람은 (그를 사랑하는 유대인은) 도스또옙스키가 유대인을 증오했다는 사실을 두고 어떻게 해야 할까? "소설 속에서는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해 그렇게 민감한 사람, 능멸당하고 상처 받은 사람을 열렬히 옹호했던 사람"이 증오에 가득차 유대인을 혐오했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또 "유대인들이 도스또옙스키에게 특히 끌리는 이유"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문학은 자유다>, 61-62면)
 
유태인 태생이었던 손택은,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도스또옙스끼에 대한 딜레마를 털어놓는다. 이 대목에서 며칠 전 읽었던 서경식 선생의 칼럼이 생각났다. 눈부신 미학적 가치와 윤리적 딜레마의 충돌에 대한 해법은 참으로 난망하다. 

으음,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초인처럼 완강하고 성인처럼 선량한 주인공의 활약과 가난한 매춘부의 유복자로 빛나듯 사랑스런 코제트의 행복한 연애 등 요컨대 전체적으로 ‘판타지’ 같은 얘기다. 원작자인 위고 자신이 사회변혁보다 종교적 자선의식 경향이 강하고, 강고한 애국주의자이며 공화주의자였다. 원래 엥겔스는 이런 공상적 사회주의를 비판하고 <공상에서 과학으로>를 썼던 것이다. 그리고 영화에서 완전히 빠져 있는 사실이 있는데, 프랑스의 알제리 식민지배는 그때 시작됐다. 자유주의 혁명과 식민지주의는 그들에게 모순 없이 양립하고 있었다. 근대의 양면성이며 기만성이다.(서경식, "레 미제라블")

2부 "미국의 야만성"은 손택의 여러 정치 비평을 담았으며, 저항하는 지식인이며 실천하는 양심으로서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사진에 대하여><타인의 고통>의 코다로서 잘 정리된 에세이들로 채워져 있다. 타자를 분석하거나 교정하려 하지 말고 공감하며 돌볼 수 있는 연민을 갖는 일, 연민의 한계를 인식하되 양심의 명령에 따르는 것을 강조한다. 무엇보다 손택은 9.11 이후 미국의 독선적 태도와 야만스런 폭력을 규탄하며, 패권 제국주의로 치닫는 미국에 단호히 반대했다. 

3부 "투쟁하는 독자"는 수상 연설과 강연들의 모음집이다. '거짓 이미지와 뒤틀린 진실로 둘러싸인 세계에서 사상의 자유를 굳건히 수호해 왔다'는 찬사를 안기며, 독일 출판협회는 평화상을 손택에게 수여했다. 손택은 수상 연설에서 문학의 본질은 온갖 모순과 야만에 대한 투쟁에 있다고 선언한다. 또한 문학은 '더 나은 기준에 바탕한 현실 비판'이며, '사람들을 지배하는 경건함에 반대 진술을 만들어 내는' 자유라고 강조한다. 손택은 빛나는 작가였지만, 그보다 먼저 '투쟁하는 독자'로서 살고자 했다. 실로 손택의 삶이 그러했다. 저항하는 예술인이었고, 투쟁하는 자유인이었다. 

박근혜 정부, 그리고 손택의 길

다시, 수전 손택을 생각한다. 그녀는 '용기와 저항'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하지만 우리의 투쟁이 승리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악을 막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서로 이 고통의 순간은 '당분간'이라고 말하지만, 실은 아주 긴 시간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그녀는 '우리가 반대하는 세력의 힘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한다. 현실을 냉철하게 인식하되, 용기와 저항의 가치를 우리의  정신과 현실 속에 새기라고 권면한다. 

저항해 보았자 부당함을 막을 수 없다고 해서, 진심으로 깊이 숙고하여 자기가 속한 사회의 최선의 이익이라고 믿는 것을 위해 행동하는 걸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252면) 우리가 열렬히 지지해야 할 이 힘든 싸움을 넘어, 정치적 저항에 있어서는 인과 관계가 직접적이지 않고 복잡하다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모든 투쟁, 모든 저항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투쟁은 전 세계에 파장을 미칩니다. 여기가 아니라면, 저기에서. 지금이 아니라면, 곧. 이곳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253면)


다시, 박근혜 정부를 생각한다. 경제민주화의 기치가 어떤 정책으로 담보되는지, 비정규직을 비롯한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희망을 선사하겠다는 당찬 포부가 어떻게 실천되는지, 박근혜 정부의 행보를 지켜 볼 일이다. 어쩌면 우리의 적은 박근혜 정부보다 더 크고 강할지도 모른다. 근거 없는 냉소와 비난을 거두되, 우리 자신의 위태로운 희망을 더욱 굳건히 다질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타인의 고통'이 우리 곁에 여전히 존재하므로, '손택의 길'은 우리에게 소명이자 운명으로 주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