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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 기독 출판계, 상상력 없어 위기

Soli_ 2013. 1. 2. 14:21

개인적으로 뵌 적은 없지만, 난 김성민 편집장님이 좋다. 그를 통해 출판되는 책들의 면면들이 돋보였고, 언젠가 보았던 서평들에 담긴 관점과 자기 성찰, 그리고 문장들이 좋았다. 

"출판은 책을 매개로 하는 텍스트 혁명에 참여하는 방식입니다. 기획자, 저자, 독자, 편집인 등이 함께 만들어 가는 일종의 종합 예술이자 분업적 노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만큼, 모든 주체들의 상상과 실험이 살길입니다. 상상은 단순한 몽상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시간과 구체적인 현실적 장에 있는 사람들과 일들 그리고 그들의 즐거움과 고통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입니다. 이런 상상력을 어떻게 구체적인 텍스트로 엮어 낼 것인지 다양한 실험이 요청됩니다."라는 대목은, 실은 내가 "복음과상황"에 쓰고 싶었던 이야기다.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192928



기독 출판계, 상상력 없어 위기

일반 출판사 '치유'와 '자기 구원' 중점, 교계는 없어... 복음주의 실천, 새로운 기독 생태계 등 담론 만들어야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이라는 책 이야기로 시작해 보고자 합니다. 이 선정적인 제목만큼이나 저자는 닷새 밤에 이 책을 모두 써 내려갔습니다. 책의 혁명성에 대해 다루는 책에 저자의 몸이 애절하게 참여한 셈입니다. 글을 쓰는 행위가 이상적 변혁을 꿈꾸는 기도하는 손을 대체했습니다. 기도라는 언어가 글 쓰는 언어 즉 텍스트를 만들어 내는 행위와 만나지 않는다면 '차라리 기도하지 말라'라고 읽히더군요. 말하자면 이 책은 글을 쓰고 읽고 다시 글을 쓰고 행동하고 하는 텍스트의 순환 자체가 진정한 변혁과 혁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텍스트를, 책을, 읽고, 다시 읽고, 쓰고, 다시 쓰고, 그리고 어쩌면 말하고, 노래하고, 춤추는 것. 이것이 혁명의 근원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무래도 이렇게 됩니다. 문학이야말로 혁명의 근원이다, 라고, 루터는 문학자였습니다. 말의 인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상 최대의 혁명가였습니다(105쪽)." 루터의 혁명은 기도하는 손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쓰고 행동하고 또 쓰고 행동하고 또 쓰는…써 내려가는 손에 있었던 것입니다.


책을 쓰는 사람이든, 책을 읽는 사람이든, 책을 만드는 사람이든 그 책이 뭔가 의미를 던져 주기를 바랍니다. 그런 마음으로 쓰는 행위, 읽는 행위, 편집하는 행위를 참여합니다. 그런데 책을 비폭력적인 혁명의 도구로 인식하고 대하는 자들이 얼마나 있을까요. 혁명이라는 말이 과격하다고 생각된다면 변혁 정도로 해 봅시다. 책이 변혁의 도구이자 거기에 담긴 문학을 변혁의 근원으로 본다면 세상의 변혁은 텍스트의 해석과 활동을 통해 이루어져 왔을 것입니다. 변화를 갈망하는 자들에게 텍스트는 유용한 도구이자 변혁 자체입니다. 책과 관계하는 자들의 고해성사가 필요한 지점입니다.


익숙함 버리고 상상력 키워라


연말이 되면 여러 언론 매체를 통해 통상 정리되어 나오는 출판계 동향이나 책을 통한 담론에 대한 분석 글을 접할 수 있습니다. 출판 비평가의 이야기와 출판사 마케터의 견해와 기획편집자의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2012년 한 해(정확히 말하자면 한 해만의 이야기는 아니지요) 출판계 전체가 상당한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듯합니다. 여러 환경의 변화 때문입니다. 흉흉한 전자출판 괴담이 나돌면서 심지어 종이 책의 종말을 예언하는 사람들까지 등장할 정도이니까요.


그런데 저는 다른 관점에서 기독교 출판계의 위기를 보고 있습니다. 바로 문학의 부재, 상상의 부재, 그래서 혁명(변혁)의 원동력 상실에 대한 것입니다. 갑자기 왜 문학이냐 할 것입니다. 문학은 시, 소설, 수필 등 장르나 특정 작품의 형식을 의미하기도 하겠지만, 넓은 의미에서 '삶에 대한 상상력이 글을 쓰는 행위와 직접적으로 연루되는 삶의 방식' 정도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문학의 정의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단지 상상력이 발휘되는 글 쓰는 행위가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느냐는 문제입니다. 과거의 삶을 과거에 고착시켜 놓지 않고, 현재의 이야기를 미래의 상상력에 연결하여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 내고 창조적인 행동을 창출하도록 유도하는 행위가 문학 활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출판에서 가장 안타까운 부분은 상상력에 의한 출판 기획입니다. 한국 기독교 출판 시장이 냉정하고 토양 자체가 경직되어 있긴 합니다. 상상력과 창조성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신앙 양태가 아니기에 상상력은 오히려 위험한 도박이자 무모한 실험으로 치부될 수 있습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2012년 기독교 출판계에서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내리는 책들을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장르 문학은 찾기 힘듭니다. 2012년만의 현상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장르 관련된 책이 거의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반 출판계에서도 문학 작품들이 점점 개인적인 에세이류 서적에 밀려나고 있는 현상이 나타나긴 합니다. 아무래도 공감과 치유가 필요한 현실 가운데서 위로와 안식을 주는 글들이 필요한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기독교 출판 쪽도 비슷한 상황입니다만, 기독교 출판 서적들은 글의 질적 수준이나 삶에 대한 이해의 정도가 상당히 편협한 편입니다. 표현뿐만 아니라 사유의 동어반복은 한국 기독교 출판의 한계입니다. 이것이 모두 상상력과 실험의 부재 때문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 글을 읽는 사람, 책을 만드는 사람이 모두 편하고 익숙한 언어 놀이에만 빠져 있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창조성이 결여된 기획에 안주할수록 기독교 텍스트의 상상력도 질식하고 말 것입니다.


출판은 책을 매개로 하는 텍스트 혁명에 참여하는 방식입니다. 기획자, 저자, 독자, 편집인 등이 함께 만들어 가는 일종의 종합 예술이자 분업적 노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만큼, 모든 주체들의 상상과 실험이 살길입니다. 상상은 단순한 몽상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시간과 구체적인 현실적 장에 있는 사람들과 일들 그리고 그들의 즐거움과 고통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입니다. 이런 상상력을 어떻게 구체적인 텍스트로 엮어 낼 것인지 다양한 실험이 요청됩니다.


<기획회의> 333호에서 2012년 출판계 키워드50을 정리한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이 중 가장 첫 번째로 '노마드의 이중 고뇌'를 뽑았더군요. 정말 좋은 키워드라고 생각합니다. 핵심 분석은 바로 이렇습니다. 모두가 자기 치유와 자기 구원을 위해 무엇인가를 찾아 고뇌하고 있는 인간상을 제시합니다. 개인과 사회가 앞만 바라보고 달려왔지만 유동하는 사회에서 정착할 곳을 찾지 못합니다. 자신의 정체성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찾기 위해 대안을 고민하지만, 쉽게 발견하기 힘듭니다. 여기에 이중적 고뇌가 발생합니다. 대중이 주목하고 있는 다른 책에서도 발견됩니다. 한병철의 <피로사회>는 성과 사회에서 주체의 과잉 긍정으로 주체가 고통당하는 현실을 보여 줍니다. 강상중은 <살아야 하는 이유>에서 국가와 전통이 이미 만들어 준 행복의 기준에 순응하기 위해 오히려 더 불행해지는 개인들의 역설적 현실을 잘 보여 줍니다. 스님들의 힐링 메시지도 노마드의 이중성을 잘 보여 줍니다. 멈추어 생각해야 하는데, 개인들이 멈추지 못하니 누군가의 힐링 메시지(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로 대리 만족하고 있는 현실도 노마드들의 이중 고뇌입니다.


일반 출판계는 그야말로 유동하고 변화하고 있는 노마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여러 형태로 담아내려고 노력해 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에 못지않게 <안철수의 생각>이라든지 <의자놀이>와 같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이슈를 다룬 책들도 베스트셀러 자리에 오르고 있으니 이 노마드의 고뇌는 더 복잡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복잡한 만큼 다양한 상상과 실험이 필요합니다. 대형 출판사는 말할 것도 없고 임프린트와 1인 출판사들이 다양한 의제로 글을 책으로 묶어 내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기독교 출판계는 이렇다 할 키워드를 잡아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눈에 가장 띄는 책을 한 권 정하라면 송강호의 <평화, 그 아득한 희망을 걷다>를 말하겠습니다. 송강호는 소위 복음의 급진적 실천에 대해 담론과 공명을 던져 주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평화 정신에 충실하게 살기를 선택하면 철저하고 급진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모델을 직접 제시해 주었습니다. 송강호의 상상력과 IVP 기획 팀의 상상력이 만나 만들어진 한국 출판계에서 전무한 상상력이라 평가하고 싶습니다. 그 이외에 소규모 출판사들의 의제 선정이 눈에 들어옵니다. 새물결플러스는 신학적이고 인문학적 성격을 지닌 중요한 책들을 출간하면서 기독교 출판의 견고한 토양에 도전장을 던졌습니다. 도서출판 대장간은 교회의 반제국적이고 반자본주의적 정신을 정의와 평화라는 화두와 관련하여 책을 엮어 내고 있습니다. 새로운 실험과 진중함이 돋보이는 출판사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 기독교가 어느 정도 금기시했던 영역을 넘나드는 출판 기획이 새로운 의제로 급부상할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새로운 실험과 변화는 기독교 현장 여러 곳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양희송이 의제로 던진 <다시 프로테스탄트>에서 기독교 생태계에 대한 새로운 실험이나 이 글에 대한 김진호 목사의 서평(<프레시안>)에서 제시하는 전혀 새로운 기독교의 출현 등에 대한 담론은 출판계에서도 피해 가기 힘든 아젠다로 토론되고 논쟁될 사안이 될 것입니다. 이에 실험적 사유나 경계적 사유에 능숙하고 기독교 토양의 변화를 혁명적으로 꿈꾸는 젊은 저자들이 출현할 것입니다. 이들의 목소리를 출판계가 잘 담아낼 준비를 해야 합니다. 번역서에 의존하는 기독교 출판계의 현실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현장에서 단련되고 좌충우돌하고 절망적 현실을 실낱같은 한 가닥 희망의 언어로 '어두운 곳에서' 밤새 뽑아낼 텍스트 '투사'들의 출현이 기대됩니다. 이런 활동들이 출판에 반영되려면 여러 해결되어야 할 부분들이 많지만, 무엇보다 출판계의 과감한 텍스트 실험과 상상력을 발휘하는 방법밖에 달리 길이 없습니다.


김성민 / SFC출판부 편집장, <뉴스앤조이>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