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_/대학가_

일상 속으로, 그리고 일상 그 너머 (마이클 프로스트, <일상, 하나님의 신비>)

Soli_ 2008. 9. 18. 23:19
대학가(2008년 10월호)_책 읽어주는 남자


일상 속으로, 그리고 일상 그 너머

일상, 하나님의 신비(마이클 프로스트 저홍병룡 역2002)


김진형 간사(IVP 문서사역부)


신현기 간사님께, 


가을 즈음이 시작될 무렵이면 늘 겪는 오랜 지병처럼, 그렇게 끙끙대며 앓기 시작하는 그리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문득, 비탈진 산 중턱을 이겨내고 차오르던 가쁜 숨을 움켜잡고 오른 정상에서, 정복자의 포만감이 아닌 이유와 근원을 알 수 없는 허탈함에 몹시 난감했던 때를 기억합니다. 그리움은 사람을 향한 것이고, 난감했던 허탈함은 내 속 사람을 향한 허기진 마음일진대, 오늘 다시 찾아온 이 그리움과 허탈함에 바삐 가던 길을 끝내 멈춰 설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복잡 다난한 정서적 고독을, 단지 가을을 탄다라고 설명해버리는 것이 더 쉬울 것 같기도 합니다. 어찌되었건, 걸음을 멈추어 서서 사무실을 뛰쳐나와 그냥 하늘을 우러러 고독을 되씹다가, 간사님을 찾아 뵐 것을 결심하게 됩니다.  

늘 그러했듯, 내일 간사님을 만나 무슨 이야기를 편히 나눌 수 있을까도 고민해보곤 하지만, 별 말씀 못 드리고 일상의 사사로움으로 식사와 차, 나누고 돌아오겠지요. 이곳에 남기로 했던 저의 결심, 그 이면의 이야기도 말씀 드리고 싶고 이곳에서 나름 얼마나 분투하고 있으며, 또 얼마나 유치 찬란하게 좌절하는지도, 그 좌절의 변도 장황하게 말씀 드리며 위로를 얻고 싶지만, 그럴만한 용기가 없다는 것을 결국 또 다시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일상의 사사로움. 다행히 제가 간사님께 배운 것 중 하나가, 보잘것없이 보이는 일상에 갖가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지요. 찾고 읽어내는 것이겠지요. 옷깃 스친 사소한 만남에서부터 깊은 인연을 약속한 만남에까지 모든 사람과의 만남 속에 깃든 하나님의 섭리를 읽어내는 것, 또한 언젠가 주셨던 간사님의 편지 속에 담겼던 글처럼 온 우주로도 하나님의 존재 어느 한 자락이라도 가둘 순 없지만, 작은 도토리 하나에도 하나님의 모든 솜씨와 보호와 사랑이 충만함을 읽어내는 것.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신비를, 하나님 나라에의 즐거운 향연을 지금 이 순간 충분히 누리는 것. 지난 몇 년간 가까이서 모셨던 간사님의 삶이 바로 그러하셨습니다. 저 역시, 아직은 서툴고 무디기는 하지만, 간사님께 제법 훈련을 잘 받은 것 같기도 합니다. 일상 속에서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 그것을 충만히 누리고 간직하는 것. 그리고 일상 그 너머, 우리가, 내가 살아내야 할 가치를 분명히 하는 것. 간사님 덕분입니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 가운데 조물주의 손길이 담겨 있으며, 볼 눈이 있다면 누구나 그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확신이다. 그것을 포착하려면 우리 편에서 주의를 집중하기로 다짐하고 속도를 늦추어야 한다. 우리는 떨리는 잎새를 유심히 관찰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모래를 밟고 지나치는데 바빠서 그 한 알 한 알의 아름다움 가운데 무엇이(혹은 누가) 계시되어 있는지 생각할 여유가 없다. 하나님의 나라가 역사를 통틀어 확장되고 있는 만큼 하나님 역시 종교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삶의 전 영역에서 활동하고 계신 것이다. 우리는 매 순간의 격분에 싸여 눈이 가리워지고 모든 시적인 정서가 메말라 버린다.”(마이클 프로스트, <일상, 하나님의 신비> 47-48페이지)


참으로 회심한 심령은 감사야말로 삶을 아름답게 수놓는 재료임을 안다. 우리가 가장 평범한 것에서 하나님의 선한 손길을 보는 법을 배웠다면 우리의 눈은 활짝 열린 것이다. 우리는 그분의 은혜가 만물을 통해 계시되는 것을 본다. 영화, , 이야기, 맛있는 음식과 음료, 스포츠와 취미, 요리, 짧은 대화, 자녀양육, 함께 웃는 웃음소리, 진한 커피 한잔등을 통하여 바로 이런 것을 인해 우리는 영원히 감사하게 된다.”(같은 책, 163페이지)


간사님과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할지라도, 가까이서 뵙고 사소한 일상을 나누는 것 자체에 즐거움과 깊은 안식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더불어,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내 속 사람에 대한 허기진 마음이 충분히 위로 받을 것입니다. 내일 만남을 통해 제가 기대하는 바입니다. 늘 그리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유진 피터슨 저, 이종태 역,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IVP, 1999)

도로시 C. 배스 편,  허정갑 역, 『일상을 통한 믿음 혁명』(예영,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