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_/큐티진_

물질 세계에서 그리스도인이 사는 법 (큐티진, 130429)

Soli_ 2013. 5. 28. 01:13

큐티진 2013년 6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주제는 '물질에 관한 추천도서'였고 독자 대상은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가장 큰 비중으로 양낙흥 교수의 <깨끗한 부자 가난한 성자>를 추천했습니다. 저는 사실, IVP에 있을 때부터 이 책에 대한 적지 않은 불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물론 이 책은 좋은 책입니다. 특히 이 책은 2012년 한국기독교출판문화상 국내부분 우수상으로 선정되기도 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질세계를 사는 그리스도인'이 첫 번째로 읽어야 할 책으론 '적당'할 듯 싶었습니다. 다만 저의 사적 불만을, 다른 두 권의 책으로 만회하고자 했습니다. 자끄 엘륄과 김찬호의 책입니다. 서평에선 적은 비중으로 소개했지만, 저의 '사심'은 이 책들에 좀 더 있답니다.



물질 세계에서 그리스도인이 사는 법

깨끗한 부자 가난한 성자 (양낙흥 지음|IVP 펴냄|2012년 6월)
하나님이냐 돈이냐 (자끄 엘륄 지음|양명수 옮김|대장간 펴냄|개정2판, 2010년 5월)
돈의 인문학 (김찬호 지음|문학과지성사 펴냄|2011년 1월)


요즘 나의 고민은 욕망의 문제다. 무엇을 더 가질 것이며 더 소비할 것인가에 대한 욕망도 있지만, 살기 위하여, 살아남기 위하여 바둥대는 욕망도 있다. 옳지 않은 방법인 것을 알면서도 더 가지려는 욕망이 있고, 살아남기 위한 욕망 앞에서 잠시 모른 척하는 가치가 있다. 지금 내 문제는 후자의 경우다. 하지만 어떤 경우라도 상관없이, 그 욕망에 우리의 삶이 압도되는 순간, 우리 존재에 존엄을 부여하던 가치의 몰락을 경험한다. 가치가 몰락할 때 우리 존재는 비루하다.

욕망의 대척점에 가치가 있다. 가치란 우리 존재의 쓸모를 결정짓는 그 무엇이며, 삶의 목표가 되는 그 어떤 의미로 정의된다. 성서는 가치와 욕망의 문제를 "하나님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재물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압축한다. 성서는 '부(富), 돈, 재물'이란 뜻을 가진 맘몬을 ‘우상’으로 정의했다. 결코 타협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가치를 수용하는 선한 욕망은 가능하지 않은 것일까. 간혹 그런 사례들이 있지 않은가. 현실 속에서 가치와 욕망의 문제는 혼재되어 있다. 특히 우리의 여린 마음은, 그것을 쉬이 구별하기 힘들다(구별하지 '못하는' 것인지, 구별하지 '않는' 것인지조차 구별하기 힘들다!).

이때 우리가 읽어야 할 책이 있다. 2012년 출간된 양낙흥 교수의 <깨끗한 부자 가난한 성자>(IVP)를 첫 번째로 권하고 싶다. 2000년대 들어 한국교회를 뜨겁게 달궜던 ‘청부론-청빈론’ 논쟁이 있었다. 그리고 십여 년이 훌쩍 지났다. 두 논쟁 모두, 저마다의 이름은 퇴색했으나 그 명분과 논점은 여전히 타협하지 않고, 그 진영에 머물러 있다. '깨끗한 부자'로 표현되는 청부론은, 부의 윤리적 획득과 이웃을 위한 선행을 강조한다. 반면 청빈론은 자발적 영성적 가난을 추구하며 단순한 삶과 나눔을 강조한다.


이 책은 청부론과 청빈론 모두 좋은 동기에서 시작한 담론이며 성경적 요소가 ‘일부’ 있으나, 심각한 위험성 또한 내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청부론은 번영신학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으며 자칫 번영신학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 반면 청빈론은 하나님의 선물로서 주어지는 부를 일체 부인하는 극단적 금욕주의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저자는 번영신학이 한국교회의 몰락을 야기한 주된 원인이라고 강고한 어조로 비판하되, 금욕적 청빈론이 아닌 향유하는 청빈적 삶을 강조한다(번영신학의 위험성에 대해선 행크 해네그래프의 <바벨탑에 갇힌 복음>을 보라).

저자는 아우구스티누스와 칼뱅의 텍스트를 인용하여 '누림은 그리스도인의 권리이자 의무'라고 말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의 삶에는 축제 혹은 잔치의 순간이 있으며 또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시간이 필요하며, 그것은 때로 하나님의 선물로 표현되기도 한다. 예수님은 부자를 포함한 여러 사람들의 초청에 기꺼이 응하시고 그들의 집에서 잔치를 즐기셨다. 물론 누림의 권리보다 우선되는 것은 절제의 미덕이다.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이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기 위해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더하라‘고 권면했다.

이 책의 부제는 '성경에서 찾은 자족, 향유, 나눔의 원리'다. 대체로 유익하고 일독할 만한 '좋은 책'이다. 허나 한 가지 아쉬운 점과 한 가지 부족한 점이 있다고, 감히 비판해본다. 아쉬운 점은 이 책의 주된 텍스트는 성경 외에 주로 개혁주의적 칼빈주의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다. 아마 숱한 반론은 그 논거에서 시작할 것이다. 
  부족한 점은, 좀 더 거시적 안목에서 물질 세계를 성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신학자는 목회적 상황을, 목회자는 성도가 처한 현실적 정황을 보다 면밀히 살필 필요가 있다. 결국 기독교인의 실존은 교회를 거점으로 하되, 현실에 거한다. 교회가 아닌 현실에서 그 실존의 고뇌는 갈음된다. 결국 세상이 문제다!

다음 두 권의 책을 더불어 읽기를 권한다. 하나는 자끄 엘륄의 <하나님이냐 돈이냐>(대장간)다. 엘륄은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침의 핵심에 가난의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돈(맘몬)의 권세'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선, 그 권세의 속성을 간파할 필요가 있다. '돈의 권세'로부터 해방되는 길은 금욕의 삶으로 도피하는 것도 아니고, 부자가 되어 그것을 지배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오직 ‘세상의 공고하고 폭력적인 체제’에 대항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거저 주는 삶'을 실천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찬호 교수의 <돈의 인문학>(문학과지성사)을 권한다. '돈은 개인과 사회를 묶어주는 사회 시스템'이다. 돈은 '외부 세계에 있는 객관적인 제도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마음과 존재에 심층적으로 얽혀 있는 에너지'다. 현대에 이르러 돈의 권력은 점점 막강해진다. 이 책은, 돈이 우리의 삶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묻고, 성찰할 것을 제안한다. 인문학, 즉 인간다움의 가치는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어떤 함의로 주어져 있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돈의 세계를 극복할 수 있는가. 


궁금하다면, 이 책 다음으론 당신의 욕망을 읽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