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본향을 향한 가장 깊은 갈망의 자리입니다(IVP 북뉴스 2006년 5-6월호)

IVP 북뉴스에 썼던 '사심' 가득한 글입니다. 결혼한 이듬해, 첫 아이를 유산하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원고 마감을 하루 넘겨 단숨에 썼던 글입니다. 아직도 가끔 우리의 첫 아이 "현서"를 기억합니다. 특히 예지와 예서가 너무 사랑스러울 때, 그 아이 생각이 더 많이 납니다. 언젠가 그 아이를 만날 날이 있겠지요. 그때가 속히 왔으면, 특히 요즘 그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2013/01/12

IVP 북뉴스(2006년 5-6월호)_booker의 책 읽기

결혼은 본향을 향한 가장 깊은 갈망의 자리입니다

사랑하는 아내, 순일에게

결혼, 언약 그리고 완전한 연합에의 갈망: 폴 투르니에에서 리사 맥민까지

남용되지 않는 참된 비밀의 가치는, 친밀하고 깊은 하나됨의 은혜로 누리는 기쁨입니다. 당신과 나, 우리는 그 비밀을 소유하는 기쁨을 서로에게 고백했었죠. 비밀을 견고히 지켜내고 또 그것을 서로에게 고백하는 우리의 행복은 전적으로 폴 투르니에에게 빚진 바 큽니다. 그때 우린 함께 「비밀」( IVP)이라는 책을 나누었죠. 그리고 결국  “결혼 생활이란 단순히 한 번 반짝이고 사그러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경험하는 새롭고 경이로운 모험”이라는 투르니에의 언급처럼, 우린 서로의 깊은 비밀을 영원히 함께하기로, 결혼의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로부터 일 년이 지났습니다. 아직도 그 기쁨이 여전하냐구요? 아니, 지난 시간만큼 더 깊어졌습니다. 사랑은 단순한 감정의 표현이 아닌, 고민하고 묵상하고 실천하고 드러내며 살아내야 할 그 무엇이라는 것. 그러하기에 진정한 사랑은 시간이 더해진 만큼, 그만큼 더 깊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혼은 곧 언약이라는 것. 최근 읽은 조은숙의 책도 그것을 잘 말해줍니다. 「우리들의 거듭난 결혼이야기」(IVP)라는 제목에서 ‘거듭나다’라는 의미와 이 책의 부제 “어느 평범한 부부에게 일어난 일상의 기적”에서 ‘기적’의 의미는 이 책을 읽는 내내 가슴 벅차게 다가왔습니다. 거듭난 결혼은 곧 언약 결혼에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오래된 고통, 관성화된 상처는 언약적 사랑으로 인해, 우리네 일상에 기적을 만들어냅니다. 기적을 살아내는 것은 다름 아닌 언약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일상의 기적이 시작된다는 것을 지난 일 년을 통해, 그리고 당신을 통해 배웠습니다. 

당신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우리’ 안에 발견한 ‘당신’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여성’의 가치를 발견하게 하고 그것을 축복으로 고백하게 만들었습니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 두 사람이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은 때로 불편한 일입니다. 그래서 그 불편함은 서로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더 나아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고통스런 이별이라는 비극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내가 믿기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연인의 감성을 극복할 때에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때에야 진정한 행복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연인의 감성을 벗어버릴 때, 우리는 서로의 가치를 더욱 깊이 알아갈 수 있습니다. 남성인 내가 여성인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여성으로서의 당신의 가치를 발견할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서 우리의 좋은 선생이었던 투르니에의 또 다른 책 「여성 그대의 사명은」(IVP)을 통해, 당신의 가치를 더욱 깊이 읽을 수 있음은 또 다른 행복이었습니다. 여성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기대, 그것은 남성을 향한 하나님의 배려이기도 합니다. 당신의 감성, 당신의 따스함, 당신의 눈물은 다분히 이성적인 저의 결핍을 채워주는 세심한 애정의 근거였습니다. 지난 우리의 일 년은 당신이 여성이라는 것에 더욱 가슴 벅차게 감사하는 시간들이기도 했습니다. 

여성인 당신에게 권하고픈 책이 있습니다. 리사 맥민의 「강한 딸 키우기」(홍성사)입니다. 리사 맥민의 글은 조금 특별합니다. 사회학자로서의 관심으로 주제에 접근하되, 신학적 본질을 간과하지 않는 균형 감각은 유난히 돋보입니다. 또한 논리적이면서도 섬세한 직관이 돋보이는 그의 글은 무척이나 화사하고 따뜻합니다. 이 책은 여성의 성적 본질에 주목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자신감과 확신에 근거한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에로의 성장과 양육을 매우 매력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딸’이 갖고 싶다는 어설픈 저의 욕심은 이 책에서 더욱 용기를 얻었답니다. 하지만 그 욕심은 그만두더라도, 부모가 되기 위해 준비해나가는 지금의 우리에게 이 책은 좋은 통찰력을 제공해줍니다. 더불어, 여성으로서의 당신이 앞으로(어쩌면 평생) 더욱 성장하고 성숙해야 할, 더욱 아름다운 여성이 되게끔 도울 수 있는 좋은 책입니다. 

또한 당신과 함께 읽고 싶은 책이 있습니다. 리사 맥민의 새로운 신간 「성, 거룩한 갈망」(IVP)입니다. 우리의 더욱 깊은 하나됨, 그에 대한 갈망에 있어 ‘성’이라는 문제는 아직도 드러내놓고 나누기 불편한 주제이기도 합니다. 이 주제는 분명 어려운 것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결코 놓아버리거나 회피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는 것에 우리는 언젠가 동의하였지요. 리사 맥민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관계, 즉 완전한 연합을 갈망한다. 우리의 깨어진 성에 대한 하나님의 구속은 우리가 소망하는 완전함의 정도에는 결코 이르지 못하겠지만 완전함을 향한 일생의 여정이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고민하는 성의 문제는 다름아닌, 완전한 연합에 대한 갈망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삶, 일생의 여정을 통해 이루어내야 할 완전한 연합, 그것에 대한 거룩한 갈망의 문제입니다. 당신과 온전히, 완전히,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은 가슴 벅찬 감격입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그 동안의 오해와 편견을 벗어버리고 보다 정직하게, 그리고 보다 간절한 열망으로 ‘성’의 본질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결혼, 고통을 넘어 하나님의 은혜로: 쉘던 베이컨에서 리사 맥민까지

당신과 내가 그렇게 감사하고 행복해 했듯이, 가정에 내리시는 최고의 축복은 바로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기쁨일 것입니다. 우리가 가정을 이룬지, 일 년이 조금 안되었을 즈음에 우리가 그렇게 고통스러웠던 것 역시, 생명을 잉태하는 기쁨을 결코 쉽게 놓아버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정확한 병명은 ‘계류유산’(Missed Abortion)이었습니다. 봄이 시작될 즈음, 병원에서 8주차 아기의 형체를 가졌지만 심장이 멈춰버린 우리 아이를 초음파 사진을 통해 확인하던 날, 우린 숨죽인 울음으로 두려운 고통을 마주했었습니다. 울고 있는 당신 앞에, 좀 더 의젓하게 당신을 위로하지 못하는 내 슬픔에 분노하기도 했었습니다. 수술 후, 당신의 지친 몸을 간호하던 며칠간 당신 옆에서 뒤적거렸던 책은 ‘고통’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잔인한 자비를 받은 것입니다. 결국 그렇게 해서야 당신은, 다시 하나님께 이르렀습니다.” 아내를 잃고 아파하는 친구에게 C.S.루이스가 했던 말입니다. 회심의 과정과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그리고 아내와의 사별을 다룬, 쉘던 베이컨의 「잔인한 자비」(복있는사람)는 우리와 경우는 다르지만, 주어진 ‘고통’ 너머 존재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친구를 위로했던 루이스는 몇 년 뒤, 마찬가지로 아내와 사별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역시 「헤아려 본 슬픔」(홍성사)을 통해 자신의 슬픔을 적어갑니다. 하나님에 대한 그의 탄원은 눈물마저 메마른 고독이었습니다. 결국 신앙은, 고통을 애써 미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마주하며 공존하는 용기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탄원하는 고독 속에, 우린 결국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게 됩니다. 

4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황무지”, T. S.엘리엇)

April is the crue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시인 엘리엇이 명명한 ‘잔인한 달’ 4월이 지나가면, 다시 눈부신 푸르름이 온 세상을 채울 것입니다. 4월은 잔인하지만, 마른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냅니다. 극심한 고통이 지나간 당신과 나, 우리의 자리엔 다시 하나님을 향한 고백이 시작됩니다. 아픔이 지나간 자리에, 우리는 비로소 은혜를 알게 될 것입니다. 

다시 리사 맥민의 글로 이 편지를 접을까 합니다. “결혼은 본향을 향한 우리의 가장 깊은 열망을 결코 완전히 만족시켜 주지 못하는 일시적인 가정을 제공할 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적인 표현과 경축의 장소, 용서와 은혜의 장소, 소속과 사랑의 장소를 제공한다”. 또 이렇게 말했답니다. “진정한 자유는 항상, 옳은 것을 선택하는 능력이다.”(이상, 「성, 거룩한 갈망」 중에서) 

나에게 순일, 당신은 언제나 진정한 자유, 항상 옳은 선택, 가장 아름다운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