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숱한 연민을 까만 눈동자로 앓는 사람입니다. 섣부른 말로 단정 짓지 않으며 가만히 타자의 슬픔을, 때론 무심한 척하는 얼굴의 미세한 요동을 응시하는 사람입니다. 먼저 다가설 용기는 없지만, 굳센 사랑에는 무모한 결행을 감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무참해질 때도 있지만 후회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헤어짐의 윤리를 아는 사람입니다. 관계에 대한 경우의 수를 셈하는 이와는 우정을 논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우정을 맺은 벗에게는 경우의 수를 헤아려 그를 살피는 사람입니다. '우연'을 '섭리'로 해석하는 사람입니다. '테레자'처럼 책을 "은밀한 동지애를 확인하는 암호"(밀란 쿤데라)로 여기는 사람입니다. "이유 없이 찾아오는 것이 사랑의 시작이지만, 끝은 언제나 그렇듯이 조건짓고 이유를 동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