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1인 출판'은 나무연필, 메멘토, 봄날의책, 오월의봄, 유유 출판사가 함께 운영하는 블로그입니다.
'숨은 편집자를 찾아서'라는 코너가 있는데 , 감사하게도 조성웅 유유 대표님과 인터뷰하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2016년 8월 10일
http://blog.naver.com/onepress5/220783559712
숨은 편집자를 찾아서
지금 한국에서 책을 만드는 사람, 편집자라는 일은 그다지 환영받는 직업이 못 됩니다.
게다가 편집자는 음지에 숨어 일하는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는 관념이 강합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판권 면에 이름이 적히고는 남몰래 뿌듯해하는 이유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편집자가 없으면 이 세계에 책이 나올 수 없습니다. 편집자는 한 권의 책이 존재하게 하는 데 있어 신과 같은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보이지 않는 사람'과 '신'의 차이는 적지 않지요. 이 차이는 편집자가 일하면서 얻는 기쁨과 자부 그리고 일하면서 받는 슬픔과 무시의 차이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이유이든 간에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책을 만들지 궁리하고, 어떤 책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그 책들을 조금이라도 더 팔아 보려고 갖은 애를 다 쓰지요.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일하는 편집자들의 이름을 불러 보자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고요. 그들이 만든 책의 운명이 어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이때에 책을 생각하고 만드는 사람들의 육성을 기록으로 남겨 보는 일도 조금은 의미 있는 작업이기를 바라며 시작합니다. 두 번째로 만난 분은 안목 있는 인문서를 만드는 김진형 편집장입니다.
1. 당신은 누구신가요? 자기소개를 부탁합니다.
십수 년째 책을 만들고 소개하고 팔고 있는 김진형이라고 합니다. 현재는 생각의힘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책을 만드는 것보다는 읽는 것을, 읽는 것보다는 읽어주는 것을 조금 더 좋아합니다(아이들과 책 읽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지요). 가끔 책이 벽돌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이 고백은 푸념이기도 하지만 결의이기도 합니다. 모든 물성에는 삶의 자리가 깃들어 있으므로), 대부분은 행동하는 삶(vita active)과 성찰하는 삶(vita contemplative)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사유의 책을 소망하며 살고 있습니다.
2. 책을 살 때 주로 어디에서 정보를 얻나요? 책은 어디서 구입하지요?
인터넷서점의 신간 코너를 습관적으로 들어가 출간되는 거의 모든 도서를 일별하려고 합니다. 수 년 전 몇 해 동안 ‘청년을 위한 추천도서목록’을 만들었는데, 그때 들인 습관이지요. 기획도 대부분 여기에서 시작되고요. 중요하다 싶은 책들은 체크를 해 두었다가 정기적으로 서점에 나가 확인하려고 해요. 구입 비율은 인터넷서점 절반, 오프라인서점 절반인 것 같아요.
3. 책을 만드는 일이 여전히 재미있나요? 또는 그저 일일 뿐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답해 주셔도 좋습니다.
요즘 책 만드는 일이 점점 어렵게 느껴져요. 편집의 노동이 관성으로 전락할 때 위기가 오는 것 같아요. 그리고 ‘(변정수 선생님이 일갈한) 카지노 출판’의 겁박에 속절없이 패배하곤 하죠. 모종의 추상이 구체적인 사유와 물성으로 탄생하는 순간까지 숱한 시간을 견디어야 하는데, 지금은 생존에 대한 조바심에 쫓기듯 책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회의하고 있어요. ‘재미’는 어떻게 생긴 건가요?ㅠㅠ
4. 책 만드는 일이 재밌다면 어떤 부분이 그렇게 재밌죠? 소소한 부분이라도 괜찮습니다.
그래요. 분명 재미도 있지요. 책 만드는 과정은 고통스럽잖아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순간, 습관과 관성에 젖어들게 되고, 그즈음 편집은 위태로워지는 게 아닐까 싶어요. 생각해 보면, 고통스러웠던 책들만이 개별적인 추억들로 남아 있죠. 편집자는 그렇게 고통을 즐기는 이들이 아닐까요. 특히 책의 구성에 긴밀하게 개입할 때가 가장 즐거운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책보다, 교정지가 더 아름답게 느껴져요. 거기엔 제 고통이 덕지덕지 묻어 있으니까요.
5. 편집자로서 언제 가장 기쁘지요?
저자, 번역자, 디자이너, 영업자, 서점 담당자, 그리고 무엇보다 독자와 전우로서의 우정을 나눌 때요.
6. 어떤 경우에 자신이 편집자답다고 느낍니까?
집에 교정지 들고 갈 때요.ㅠㅠ
7. 최근 읽은 책 중 편집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책을 꼽는다면요?
《자기록》(풍양 조씨 지음, 김경미 옮김, 나의시간 펴냄, 2014)이란 책을 최근에 읽었는데, 아, 감동적이었어요. 18세기 조선 후기 때 쓰인 책이에요. 남성들의 사회에서, 남성 문사들에 의해 기록된 허다한 열녀전 따위와는 전혀 다른 결을 가진 책이죠. 남편과의 사별 이후, 홀로 남은 한 여성의 치밀하고도 치열한 자기 고백 서사가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편집도 마음에 듭니다. 여성주의 담론이 한참 뜨거운 요즘, 제가 주변에 많이 추천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8. 당신은 책을 왜 읽습니까? 사소한 것이라도 무방합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하나는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일탈을 음모하고 꿈의 놀이를 즐기는 것’이죠. 사실 이 고백은 이광주 선생의 문장에서 빌려 온 거죠. 이 문장과 연결되는 다음 문장은 “그것은 분명 수태(受胎)의 성별(聖別)된 시간이요 공간이었다”고요. 일탈과 놀이로서의 책 읽기와 성화를 위한 책 읽기가 다르지 않다는 거죠. 다만 이광주 선생은 자신의 어린 시절이 그러했다고 말하고 있는데, 저는 지금도 그렇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저는 기껏 책 안에서, 그러나 마음껏 일탈하죠.
그리고 저의 첫째 아이가 예지, 둘째 아이가 예서인데요. 그들은 저의 또 다른 꿈이죠. 예지와 예서가 살아갈 세상을 위해 책을 열심히 읽으려고 해요. 그들이 살아갈 세상은,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아져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책을 읽으며, 용기를 내어 더욱 굳세게 세상과 맞서려고 하죠. 그런 면에서, 현재 저의 서재는 예지가 살아갈 세상입니다. 예지와 예서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이 좀 더 아름다워지기 위해 분투하는 곳이죠.
9. 책 읽기와 책 만들기는 당신 안에서 연결됩니까?
연결되기도 하고 충돌되기도 합니다. 바라기는 제가 읽고 싶은 책을 제가 만들 수 있기를!
10. 앞으로도 책을 계속 만들고 싶나요? 그렇다면 몇 살까지 만들고 싶습니까?
밥벌이로서의 출판은 저에게 고난이기도 하지만 축복이기도 하지요. 막내가 스무 살이 되면 제가 오십 대 중반쯤 되거든요. 그때까진 버티고 있지 않을까요. 다만 버티고 버티다 득도(得道)하기를요. 그리하여 그 ‘벽돌’들로 근사한 사유의 집을 지을 수 있기를요. 슬픔의 책으로 세상을 위로할 수 있기를요.
김진형 편집자의 존재를 알게 된 건 아마 페이스북이었을 겁니다. 복잡한 그곳에서도 글을 잘 쓰는 분들은 눈에 쏙쏙 들어오게 마련이죠. 늘 생각하게 하는 글, 코드가 맞는 글을 써서 올려 주시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땅콩문고에서 뵌 적이 있습니다. 파주에서 사는 분이라고 해서 반갑고 고마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인문서를 만드는 편집자들은 꽤 있지만 만드는 책과 만드는 사람이 닮은 경우는 흔치 않은데, 김진형 편집자를 뵙고 그런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도 오래도록 좋은 책 만들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생각의힘 편집장으로 일하는 김진형 편집자. 책을 만드는 사람과 그 사람이 만드는 책이 닮아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귀하다>
인터뷰. 유유 조성웅, 사진. 김진형 편집자 제공
[출처] 숨은 편집자를 찾아서. 두 번째 이야기|작성자 onepress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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