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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아이는 인류의 희망이다 (오마이뉴스, 130529)

Soli_ 2013. 6. 1. 14:33

오마이뉴스에 33번째 기고한 글이며(오름), "아내와 딸도 없는 여성의 몰살, 끔찍한 일이다"란 제목으로 실렸습니다(link). 





그대의 아이는 인류의 희망이다

[서평] <남성 과잉 사회>(마라 비슨달 지음|박우정 옮김|현암사 펴냄 |2013년 4월|1만8000원)



인류의 역사는 대개 남성의 역사였다. 일부 여성의 탁월한 활약이 돋보일 때도 있었으나 오래 가지 않았다. 남성은 힘의 우위로 권력을 독점했고, 사실상 여성을 지배하고 억압했다. 근현대에 이르러 원시적 힘이 아닌, 자본이 권력의 핵심이 되었으나 남성의 시대는 여전히 공고하다. 우리나라는 그 전형적 표본이다. 여성 대통령을 배출했으나 한국의 여성은 사회적 약자로 존재한다. 여성학자 정희진의 비판 대로, '일부' 여성의 사회적 진출은 남성 문화의 선택 사항일 때가 많다. 남성 본위의 사회는, 윤창중과 같은 '과잉 남성'의 폭력을 일반화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로버트 서먼 박사는 남성의 본성을 '군국주의적이며 산업적 탐욕'으로 규정하며 '평화를 지키려는 본성'을 가진 여성의 시대를 염원했다(<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76쪽). 하지만 2012년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오르고, 2011년 <월스트리트 저널> '올해의 책'에 선정된 마라 비슨달의 <남성 과잉 시대>는 그 염원을 아찔하고도 참혹한 전망으로 대체한다. '남성 과잉'이라니, 끔찍하다.

'지워져버린' 소녀들의 끔찍한 진실

인류의 자연적인 출생 성비는 여아 100명당 남아 105명이었다. 독일의 통계학자 요한 페터 쉬스밀히는 "소년들의 무모함, 탈진, 위험한 작업, 전쟁, 항해, 이민 때문에 일어나는 남성의 손실"로 인해 결혼 적령기에 이르러 남녀 성비는 균형을 이룬다고 하였다. 100:105로 시작한 남녀 성비는 성년 즈음 100:100으로 균형을 이룬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평균'적이고 '정상'적인 출생성비는 현대에 이르러 무너지고 있다.


남녀불평등 사회는 '남아 선호'의 문화적 전통을 견인하고, 그 전통은 불평등 사회를 더욱 고착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사회에서 남녀 성비의 평균적이고 정상적인 비율은 유지되었지만, 최근 30년간 태아의 성별을 제어할 수 있는 의학적 기술이 보급되면서 남녀 불평등을 가속화할 뿐만 아니라 온갖 재앙의 위험성을 야기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주로 아시아에서 두드러진다.

인도는 저렴한 성 감별 비용과 만연한 낙태로 인해, 점차 여아가 사라지고 있다. 인도의 병원들은 "나중에 50만루피(여성의 결혼 지참금)를 쓰느니 지금 500루피(낙태 가격)를 쓰는 게 낫다"고 광고한다. 중국은 1980년 '한 자녀 정책'이 나오고 1982년 초음파 기계가 보급되자, 남학생이 여학생의 거의 두배가 되었다. 저자는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친디아(중국과 인도)에 있으니 금융 위기와 같은 전 지구적 재앙이 시작된 것"이라고 경고한다.

인구통계학자 크리스토프 길모프가 2005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지난 30여년 동안 초음파와 낙태의 조합으로 아시아에서만 1억6300만명의 여성이 사라졌다". 이는 미국의 전체 여성 인구와 맞먹는 수치다. 저자는 이 현상의 심각한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억6천만 명은 미국의 전체 여성 인구수를 넘기 때문이다. 미국의 여성이 모두 몰살되었다고 상상해보라. 한 나라의 쇼핑몰과 슈퍼마켓, 고속도로, 병원, 회의실과 교실이 남자로만 채워져 있다고 상상해보라. 통근 버스나 지하철, 차를 그려본 뒤 당신 옆의 여성들을 지워보라. 아내와 딸을 지워보라. 혹은 당신 자신을 지워보라. 이렇게 상상하면 문제가 더 잘 와 닿을 것이다.(본문 27쪽)

'인구학적 남성화'의 주된 원인은 "임산부에게 널리 알려진 저렴한 성 감별법(초음파), 그로 인한 낙태 때문"이었다. 주로 아시아 지역의 개발도상국에서 유행했던 인구 조절 캠페인은 성 감별법을 이용한 낙태를 퍼뜨렸는데, 이러한 현상의 배후엔 '미국 정부를 비롯한 서구 주요 기관들의 책략과 협잡'이 있었다.

1968년 폴 에들리히는 광범위한 빈곤, 생태 파괴, 전쟁 등을 예측한 베스트셀러 <인구 폭탄>을 펴냈고, 뒤이어 임박한 사회 붕괴와 지구의 생명 유지 체계의 위험성을 경고한 <생존을 위한 청사진(A Blueprint for Survival)>을 펴냈다. 세계적 차원에서 인구 증가를 억제해야 한다는 서구 사회의 위기감은 '인구 조절 프로젝트'를 아시아에 확산시키려 하였고, 미국을 위시한 관련 업계들의 상술은 성 감별 낙태 기술을 아시아로 팔아넘겼다.

남성 과잉은 곧 재앙

인류 역사에서 폭력적인 행동은 단연 남성의 몫이었다. 따라서 남성 과잉은 곧 재앙이다. '남성 과잉 사회'는 '잉여 남성'의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다. 배우자를 만나지 못한 독신 남성들은 증가한다. 그들 중 일부는 부적절한 거래로 여성을 '획득'하려 한다. 2008년 한국의 농어촌에서 외국인과 결혼한 남성의 비율은 40%였다. 성비 불균형은 성매매, 신부 수입 등을 '비정상적' 사회문제를 야기한다.

또한 저자는 '남성 과잉은 사회 전체의 테스토스테론(남성 호르몬) 수치가 높아지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곧 '폭력성의 상승을 뜻한다'고 경고한다. 테스토스테론은 남성에게서 훨씬 다량으로 분비되며 특정한 문화 및 환경 요인이 조성될 경우 공격 성향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테스토스테론은 폭력 범죄를 조장할 뿐 아니라 반달리즘(vandalism, 문화나 예술을 파괴하려는 경향), 공격성, 모험심, 기본적인 규범 위배 같은 다른 반사회적 행동과도 관련된다.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게 나온 남성은 장물을 매매하거나 악성 부태를 지거나 교통위반 외의 범죄로 체포되는 경향이 더 많다. 또한 군사 전투에 참여할 가능성도 더 높다.(본문 272-273쪽)

윤창중을 비롯한 기득권 남성의 폭력은 테스토스테론의 과잉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윤창중을 비롯한 사회적 이슈를 일거에 덮어버린 소위 '일베충'의 여성 비하, 인종차별, 폭력적 성향도 이와 관련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의 경우는 어떠할까.

한국은 1980년대 성비(여아 100명당 남아 수)가 109를 넘어섰으며, 1989년 첫째의 성비는 104, 둘째는 113, 셋째는 185, 넷째는 209였다. 아들을 얻기 위해 아이를 계속 낳는 경우, 그만큼의 여아가 소리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2007년 한국은 20여년 만에 정상적인 출생 성비를 회복했다. '이전에 성비 불균형이 일어났다가 성별 선택 낙태를 일소한' 세계 유일의 나라가 되었고, 저자를 비롯한 세계의 전문가들은 한국의 성공을 분석했다.


도시화와 교육의 확대로 인한 남아 선호 사상의 약화가 출생 성비의 균형에 기여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었다. 하지만 저자는 직접 한국을 방문하고 여러 여성들과 직접 인터뷰하며, 전문가들의 판단을 유보시킨다. 저자는, 한국이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른 인구 노령화를 보여주는 '초고령사회'(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의 고령 인구 비율이 20% 이상인 사회)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성별에 상관 없이 하나만 낳거나 거의 낳지 않는 저출산 사회가 되면서 겪는 '일시적' 현상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저자는 한국에서 여성의 인권과 사회적 지위가 열악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음을 여러 인터뷰에서 인용한다. 결국 남녀 불평등 사회는 언제든 다시 '남아 선호'적 경향과 성비 불균형의 사회로 악화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변화순은 실컷 웃더니 한국 여성들이 10년이나 20년 전보다 처지가 상당히 나아졌다는 생각은 분명 남성이 내 머릿속에 주입시켰을 거라고 말했다. 변화순은 여성에게 주어지는 기회를 평가하기 위한 유엔개발계획의 지표상으로 한국은 형편없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사회는 점점 더 부유해지고 있지만 여성권한지수는 선진국 중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본문 316쪽)

서울 번화가에서 작은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소현은 "오늘날에는 체외수정 기술 덕분에 부모들이 여러 유형의 태아 중에서 선택하는 일이 가능해요"라고 말한다. "부모들은 원하지 않는 태아를 없애달라고 요청하죠. 딸들을 지울 수 있어요. 아들은 남기고요."(본문 332쪽)

'도래할 인류의 재앙'에 맞설 우리의 희망


성감별과 낙태, 그리고 새로운 의학 기술인 PGD(착상 전 유전자 진단)를 이용한 체외수정은 성비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저자는 몇 가지 희망의 단초를 모색한다. 일부 생명윤리학자들은 '여성의 권리'와 '그녀가 미래에 낳을 아이의 권리'를 조화시키는 새로운 접근 방식의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즉 부모가 될지를 선택할 권리는 있지만, 일단 부모가 되기로 했다면 그 아이의 성별을 자기 마음대로 형성할 권리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대의 아이는 그대의 아이가 아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갈망하는 생명의 아들이고 딸이다.
아이들은 그대를 거쳐서 왔으나 그대에게서 온 것이 아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대와 함께 있어도 그대의 소유물이 아니다.
_칼릴 지브란, <아이들에 대하여(On Children)>

저자의 희망은 단출하며, 그 희망이 인류의 오래 욕망에 맞설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것은, 저자가 예견한 '도래할 인류의 재앙'에 맞설 우리의 그 어떠한 희망도 절박하단 것이다. 어쩌면, 그 '절박함'을 깨닫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