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지 113

엄혹한 슬픔이라 할지라도 (빛과소금, 131112)

빛과소금 2013년 12월호 엄혹한 슬픔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삶은 결코 비극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스무 살 예지에게,[각주:1] 1979년 4월 3일, 아버지가 암으로 소천(召天)하셨습니다. 저의 아버지, 그대의 할아버지였지요. 저의 나이가 여섯 살이었으니, 지금의 그대보다 한 살 어렸을 때입니다. 아버지가 투병하시던 그즈음, 집에는 친척들의 발걸음이 잦았고 어머니는 종종 소리 내어 우는 누나를 달래곤 하셨지요. 전 아버지의 냄새가, 가래 끓는 소리로 탁하게 갈라진 낮고 굵은 목소리가 싫었습니다. 담배 냄새 절은 삼촌들이 얼굴을 비비대는 것도 싫었습니다. 집 앞 골목에서 세발자전거를 타다가 아버지의 죽음을 들었습니다.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비명처럼 들렸습니다. 뭔지 모를 해방감에 잠시 기뻐했던 것 같습니다...

그대, 행복이란 신화 너머 좋은 삶을 사십시오 (빛과소금, 131009)

★ 11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예지’는 지금 일곱 살인 저의 첫째 딸 이름입니다. 훗날 ‘청년 예지’에게 전하고 싶은 일상 영성 이야기를 담고자 합니다. 그대, 행복이란 신화 너머 좋은 삶을 사십시오 스무 살 예지에게, 무지개 ‘예(霓)’, 이르다 ‘지(至)’. 우리는 그대를 “예지”라 부르기로 결정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아들과 딸들의 이름에는 부모의 소망이 담겨있듯이, “예지”란 이름은 우리의 소망이자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아주 오랜 옛날, 하나님은 타락한 세상을 물로 벌하신 후, 노아와 무지개 언약을 맺으셨지요. 모든 불신앙과 절망, 공포, 죄악을 이겨내고 다시금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이들에게 은혜를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러하시죠. 늘 먼저 찾으셨지만 되려 버림 받으셨고, 외면 받으시면..

그대의 청춘을 응원합니다 (빛과소금, 130910)

★ 10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예지’는 지금 일곱 살인 저의 첫째 딸 이름입니다. 훗날 ‘청년 예지’에게 전하고 싶은 일상 영성 이야기를 담고자 합니다. 그대의 청춘을 응원합니다 스무 살 예지에게, 어렸을 적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는 삼 남매를 힘겹게 키우셨습니다. 집은 점점 작아지고 좁아졌으며, 마침내 여름이면 푸른 곰팡이가 피던 반지하 집에 살 즈음부터 어머니는 공장에서 일하시기 시작했습니다(어쩌면 그전부터 그러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어린 저의 기억엔 ‘그때’의 슬픔이 하나의 정지된 화면처럼 새겨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푸른 곰팡이가 아니라, 한때 푸른 잔디밭 마당을 가진 집에 살았다는 자부심으로 버텼지만, 좌절은 곧이어 엄습했습니다. 좋은 선생님도 만났지만, 어떤 선생님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장흥아트파크에 가다

지난 주, 새로운 직장의 출근일이 정해지고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가족들과 가고 싶은 곳도 많고, 아이들과 좀더 함께 있고 싶은 마음에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습니다. 하지만 마침 예지가 아파서 생각처럼 여행을 가거나 멀리 가진 못했지요. 가장 마음에 든 곳은 장흥아트파크(http://www.artpark.co.kr)입니다. 거리도 가깝고, 그리 넓은 곳은 아니고 화려한 시설도 없지만, 좋은 미술관도 있고 알뜰히 놀 수 있는 놀이터도 있습니다(수영장도 있는데 들어가진 않았어요). 아이들이 무척 좋아했고... 사실 저도 즐겁게 놀았지요. 가장 먼저 들른 곳은 "가나 어린이 미술관"입니다. 멋진 그림과 전시물도 있고 두툼한 도록도 공짜로 얻을 수 있고 미술관 안쪽엔 실내 놀이터가 있습니다. 공원 내 작은 전시관이 ..

霓至園_/rainbow_ 2013.08.31

너머서교회 유치부 가족캠프(2013/8/15-16)

너머서교회 유치부 가족캠프를 다녀왔습니다. 강화도의 큰나무캠프힐에서 아진아윤(민형)이네, 예지예서네, 다빛다휘네, 소연(소정)이네, 이음이네, 유민이네 등 총 여섯 가정과 안해용 목사님, 이영지 유치부 부장선생님 등이 함께했습니다. 아이들도 즐거웠지만, 아이들을 볼모(?) 삼은 부모들도 행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마당에서 물놀이. 예서, 방긋! 물놀이 후 영화 감상. 아이들 표정은 사뭇 진지. 애교 율동으로 우리를 사로잡은 막내 소연이. 팬션 마당의 멋진 아이들의 요새로 뛰어오르는 유민이. 유민 엉아 뒤를 물풍선 폭탄을 들고 따르는 예서. 진격의 유치부! 이런 멋진 요새를 가진 팬션이라니!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아이들. 수백 수천 개의 표정을 가진 아이들. 모든 프로그램은 아빠들이 돌아가면서 진..

視線_ 2013.08.19

고향집 양동

지난 주에 아내 순일의 고향집 양동에 다녀왔습니다. 아내가 자란 집, 가난과 힘겨움의 흔적이 깊게 새겨진 곳이지만아이들은 이곳을 참 좋아합니다. 언제나 환한 웃음으로 맞았다가눈물로 작별 인사를 건네는 외할머니, 지천에 널린 푸른 생명들과 옆집 소, 송아지들, 동네에 하나뿐인 조그만 구멍가게, 겨울이면 눈썰매장으로 바뀌는 논두렁, 여름이면 충분히 훌륭한 물놀이터 냇가,맑고 높은 푸른 하늘, 쏟아질 것 같은 별빛 가득한 밤하늘. 아이들이 이곳을 '고향'으로 간직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아이폰으로 찍은 몇 장의 사진과 동영상을 옮겨 놓습니다. 그리고 할머니에게 들려드릴 노래를 연습 중인 예지. 곡명은 "햇님 사랑".

霓至園_/rainbow_ 2013.07.25

아이들을 위한 시 (도종환)

아이들을 위한 시 도종환 이 아이들의 가슴 속에 무슨 꽃이 피고 어떤 나무가 자라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래도 나는 이 아이들이 좋다 이 아이들의 마음속에 어떤 바람이 불고 어떤 구름이 지나가고 있는지 나는 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나는 안아주고 싶다 작고 죄 없는 이 아이를 이 여윈 아이들의 깊은 곳에 어떤 하느님이 계시고 어떤 기도가 흘러나왔는지 나는 듣지 못하였다 그래도 나는 바란다 눈동자가 까만 이 아이들의 기도가 이루어지길 서귀포 모래밭 순비기꽃보다 더 순한 빛깔이 그들에게서 나오고 천년을 사는 사오댄 나무보다 더 오래가는 생명이 그들에게서 시작되므로

scrap_ 2013.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