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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혹한 슬픔이라 할지라도 (빛과소금, 131112)

Soli_ 2013. 11. 29. 08:50

빛과소금 2013년 12월호

 

엄혹한 슬픔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삶은 

결코 비극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스무 살 예지에게,[각주:1]

 

1979년 4월 3일, 아버지가 암으로 소천(召天)하셨습니다. 저의 아버지, 그대의 할아버지였지요. 저의 나이가 여섯 살이었으니, 지금의 그대보다 한 살 어렸을 때입니다. 아버지가 투병하시던 그즈음, 집에는 친척들의 발걸음이 잦았고 어머니는 종종 소리 내어 우는 누나를 달래곤 하셨지요. 전 아버지의 냄새가, 가래 끓는 소리로 탁하게 갈라진 낮고 굵은 목소리가 싫었습니다. 담배 냄새 절은 삼촌들이 얼굴을 비비대는 것도 싫었습니다. 

 

집 앞 골목에서 세발자전거를 타다가 아버지의 죽음을 들었습니다.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비명처럼 들렸습니다. 뭔지 모를 해방감에 잠시 기뻐했던 것 같습니다. 무서운 아버지께 불려가 그 냄새를 맡지 않아도 되는구나, 저 친척들도 이제 우리 집을 떠나겠구나, 생각하며 안도했습니다. 훗날 지독한 가난을 만날 때마다, 거친 노동에 지친 어머니의 신음소리를 밤새 들을 때마다… 그때 내가 버릇없이 웃었기 때문일 거라고, 그래서 우리 가족이 벌받는 것이라고 자책했습니다. 

 

두려움이란 것을 그때 처음 만났던 것 같아요. 어머니의 곡소리, 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들고 언덕을 오르던 두 살 터울 형의 지치고 곤한 얼굴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 ‘낯선’ 두려움입니다. 해마다 명절과 아버지 기일에 맞춰 비포장 도로를 두어 시간 넘게 달려 장지에 도달하기까지, 난 수없이 구토했습니다. 가슴이 파도처럼 일렁일 때마다 그 막막한 슬픔을 직감했고, 그 슬픔을 잊기 위해 차를 타면 언제나 서둘러 잠을 청해야 했습니다. 

 

일곱 살 예지는 동네 작은 동산을 오를 때마다 숱한 꽃과 나무에게 이름을 붙여주고는 살며시 말을 건네지요. 숲속을 가만히 응시하며 요정을 찾기도 하고요. 그런 그대를 볼 때마다, 저의 여섯 살 봄을 추억합니다. 회색빛 골목 무채색 풍경 속엔 유독 노란 민들레가 소박하게 피어 있었습니다. 아침마다 일어나 그 민들레에게 안부를 묻고는 했습니다. ‘일곱 살 예지’가 그랬던 것처럼 ‘여섯 살’이었던 제가 그랬지요. 아버지를 장지에 묻고 돌아온 어느 봄날, 민들레는 잊기로 했습니다. 제법 결연한 다짐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더 이상 누릴 수 없는 사치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처음 만나는 절망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제 나이 여섯 살 때의 일입니다. 

 

내 안에 남아 있는 너를 찾는 일

 

고달팠던 청소년 시절을 지나 스무 살 언저리에 입대한 군대에서 저녁마다 신경숙의 소설 <외딴방>을 노트에 옮겨 적었습니다. 겨울에 시작하여 여름이 시작될 즈음 필사를 마쳤지요. 열여섯에서 스무 해까지 문학을 꿈꾸며 독한 가난과 속절없는 패배를 가슴속에 차곡차곡 쌓던 소설 속 주인공 ‘나’는, 작가 신경숙이 아닌 독자인 저의 현현顯現으로서 유효했습니다. 작가는 내게, 절망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고, 그것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자 소명이라고 다독였습니다. 

 

그리움이란 참, 무거운 것이다. 어느 한 순간 가슴이 꽉 막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게 할 만큼. 어떤 날은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짐스럽다 여기게 할 만큼. 따지고 보면, 그리움이란 멀리 있는 너를 찾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남아 있는 너를 찾는 일이다. 너를. 너와의 추억을 샅샅이 끄집어내 내 가슴을 찢는 일이다. _신경숙, <외딴방>(문학동네, 1995)에서.

 

꿈을 품는다는 것은, 가슴을 찢는 그리움 같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떤 꿈은 필사적입니다.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고통을 잊기 위해, 살기 위해 품는 꿈도 있는 법입니다. 어떤 꿈은 위태롭게도 아득한 절망으로 추락합니다. 통쾌한 승리는 사실, 이 세상에서 거의 만나기 힘든 로또복권의 행운에 가까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소설을 통해, 제 오랜 꿈, 혹은 오랜 절망과 마주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마치 고해성사처럼, 가슴속 깊이 숨겨놓았던 은밀한 상처들을 꺼내놓는 일과 같았습니다. 

 

 

이 소설은 세상과 격리된 ‘외딴방’이라는 조각난 공간에서 자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입니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야간고등학교를 다니던 주인공의 이야기를 작가는 힘겹게 썼을 것입니다. 작가가 된 주인공 ‘나’에게 ‘산업체특별학급’ 동창인 ‘계숙’의 전화가 걸려 옵니다. 친구는 “너는 우리들 얘기는 쓰지 않는구나”라고 말했고, 작가는 “차가운 물이 한 글자씩 이마에 떨어졌다”고 그 순간을 회상합니다. 가장 아팠던 시절을 기억에서 배제하여 자신을 지키려 했는지도 모릅니다. 작가는 열여섯에서 스물 언저리의 자신에게 말을 건네기 시작합니다. 신경숙은 ‘문학이 끼어들 수 없는 삶조차 있다’고 말합니다. <외딴방>은 그 위태로운 경계를 용기 내어 걷습니다. 

 

망각된 기억이 복원됩니다.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지면, 우리는 그를 망각하기를 원하면서도, 간절한 그리움을 쉬이 놓아 버리지 못하지요. 현재의 ‘나’는 ‘외딴방의 나’를 향한 그리움을 아프게 수행합니다. 글쓰기라는 방식이 가장 유효했습니다. 

 

“글쓰기란, 그런 것인가. 글을 쓰고 있는 이상 어느 시간도 지난 시간이 아닌 것인가. 떠나온 길이 폭포라도 다시 지느러미를 찢기며 그 폭포를 거슬러 돌아오는 연어처럼, 아픈 시간 속을 현재형으로 역류해 흘러들 수밖에 없는 운명이, 쓰는 자에게 맡겨진 것인가. 연어는 돌아간다. 뱃구레에 찔린 상처를 간직하고서도 어떻게든 다시 목숨을 걸고 그 폭포를 거슬러 처음으로 돌아간다. 그래 돌아간다. 지나온 길을 따라, 제 발짝을 더듬으며, 오로지 그 길로.” _<외딴방>에서. 

 

상처를 간직하고서도 다시 목숨을 걸고’ 거슬러 올라가 마주해야 하는 슬픔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복원된 슬픔의 현장엔, 슬픔에 압도되어 미처 보지 못한 희망의 조각들이 있었습니다. 온갖 부조리를 일상으로 살던 유신 시절, 공장에서, 야간고등학교에서, 간이숙박소 같은 ‘외딴방’에서 그 희망은 거칠지만 끈질긴 호흡으로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나’는 이렇게 소리칩니다. “살아 있다는 것. 우리는 그 골목에서 간이숙박소 같은 삶을 살았다고 해도, 중요한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야”라고. 

 

‘익명의 그들’이 있었다

 

희망은 절망과 동거합니다. 두려움 너머 오랜 상처를 직시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소설 속 ‘나’는 그 용기를, 오랜 벗에게 얻습니다. 지극한 슬픔과 동행하던 그때, ‘외딴방’의 벗들이 있었다는 당연한 사실도 그제서야 알게 됩니다. 

 

“이름도 없이, 물질적인 풍요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이, 그러나 열 손가락을 움직여 끊임없이 물질을 만들어 내야 했던 그들을 이제야 내 친구들이라 부른다. 그들이 나의 내부에 퍼뜨린 사회적 의지를 잊지 않으리. 나의 본질을 낳아준 어머니와 같이, 익명의 그들이 나의 내부의 한 켠을 낳아 주었음을… 그래서 나 또한 나의 말을 통하여 그들의 의젓한 자리를 세상에 새로이 낳아 주어야 함을.” _<외딴방> 중에서.  

 

오늘 내가 살아 있다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나의 곁에 ‘익명의 그들’이 있었다는 성찰로 나아가야 합니다. 나의 ‘본질’은 어머니에게서 비롯되어 타자와의 연대로 완성됩니다. 나의 희망은 또한 ‘나의 말을 통하여’ 그들에게로 전진해야 합니다. 

 

쉘던 베너컨은 사랑하는 아내와 사별한 후, 자책의 나날들을 보냅니다. 그들은 두 사람 사이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자녀를 갖지 말고 죽을 때는 같이 죽기로 약속했었지요. 절망 때문이 아니라 사랑 때문에 자살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겠냐고 C. S. 루이스에게 묻습니다. 루이스는 이렇게 답장합니다. 

 

“영원한 봄날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당신은 생명의 나무를 결대로 자르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이 계속 살아가면서도 그것이 죽는 길도 여러 가지로 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잔인한 자비로 당신을 대하셨고, 당신은 자신이 하나님을 질투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얼마나 자주 대하는 진실인지요!). 당신은 ‘서로’에게 벗어나 ‘서로와 하나님’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과 서로’에 이르는 일이 남았습니다.” _C. S. 루이스, <당신의 벗, 루이스>(홍성사, 2013)

 

베너컨은 그들의 러브스토리를, 그리고 그 지극한 슬픔의 서사를 <잔인한 자비>(A Severe mercy, 복있는사람, 2005)라는 아름다운 책에 담았습니다. ‘하나님과 서로’에게 나아갔던 것이지요. 또한 하나님의 자비는 ‘우리’에게서 ‘그들’에게로 나아가도록 추동합니다. 

 

그대가 ‘스무 살’에 이르렀을 때, 얼마나 많은 슬픔의 서사를 가슴에 짊어지고 있을까요. 그런 생각을 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상처 없는 삶을 사시길 기대하지만, 그대의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슬픔이 그대를 급습할 때 그대의 ‘외딴방’으로 피하시길, 연필을 들어 또박또박 그 슬픔을 기록하시길, 엄혹한 슬픔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삶은 결코 비극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잔인한 자비’로 섭리하시는 그분의 심정을 헤아리시길, 그리하여 결국 타자와의 연대를 도모하여 희망에 이르시길 기대합니다. 

 

그대의 아이는 그대의 아이가 아니다

 

 

지난 6개월간 그대에게 편지를 쓰며 자주 울었습니다. 기쁨과 감격에 자주 멈춰야 했지요. 그러나 되돌아 보면, 훗날 그대가 이 편지를 기뻐할지 자신이 없습니다. 도리어 엄중한 부담을 끼친 건 아닌지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넉넉한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어쩌면, 이 편지들은 ‘스무 살 예지’가 아닌, 그대가 스무 살 청년으로 자라기까지 그대의 곁을 지킬, 부모 된 우리 자신에게 쓴 서약 같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이 마음들.  

 

그대의 아이는 그대의 아이가 아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갈망하는 생명의 아들이고 딸이다.

아이들은 그대를 거쳐서 왔으나 그대에게서 온 것이 아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대와 함께 있어도 그대의 소유물이 아니다.

_칼릴 지브란, <아이들에 대하여(On Children)>

 

 

그대의 아빠, 진형 드림. 

 

 

  1. ‘예지’는 지금 일곱 살인 저의 첫째 딸 이름입니다. 이 공간을 통해, 훗날 ‘청년 예지’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편지 형식으로 담고자 합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