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_ 120

그대, 행복이란 신화 너머 좋은 삶을 사십시오 (빛과소금, 131009)

★ 11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예지’는 지금 일곱 살인 저의 첫째 딸 이름입니다. 훗날 ‘청년 예지’에게 전하고 싶은 일상 영성 이야기를 담고자 합니다. 그대, 행복이란 신화 너머 좋은 삶을 사십시오 스무 살 예지에게, 무지개 ‘예(霓)’, 이르다 ‘지(至)’. 우리는 그대를 “예지”라 부르기로 결정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아들과 딸들의 이름에는 부모의 소망이 담겨있듯이, “예지”란 이름은 우리의 소망이자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아주 오랜 옛날, 하나님은 타락한 세상을 물로 벌하신 후, 노아와 무지개 언약을 맺으셨지요. 모든 불신앙과 절망, 공포, 죄악을 이겨내고 다시금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이들에게 은혜를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러하시죠. 늘 먼저 찾으셨지만 되려 버림 받으셨고, 외면 받으시면..

우리에게도 ‘순례’가 필요하다 (복음과상황, 130905)

복음과상황(2013년 10월호)_“독서선집” 우리에게도 ‘순례’가 필요하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양억관 옮김│민음사 펴냄│2013년) “기차역” 주인공 다자키 쓰쿠루는 철도회사에서 역사(驛舍) 설계를 한다. ‘쓰쿠루(作)’라는 이름은 ‘만들다’라는 뜻을 가졌다. 공사를 담당한 역의 어딘가에 늘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는다. 십대 시절부터 그는 시종일관 기차역에 매료되었다. 역사가 없다면 기차는 멈출 수 없다. 기차가 플랫폼에 멈춰 서면 수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들은 자연스럽게 길을 찾아 빠져나간다. 쓰쿠루는 기차역을 만드는 사람이다. “5” 다섯 명은 나고야의 한 고등학교 같은 반으로 만났다. 여름 봉사활동을 하다가 친해졌는데, 그들은 제각기 ‘나는 지금 올바른 장소에서 올바른 친구를 만났다’고 ..

그대의 청춘을 응원합니다 (빛과소금, 130910)

★ 10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예지’는 지금 일곱 살인 저의 첫째 딸 이름입니다. 훗날 ‘청년 예지’에게 전하고 싶은 일상 영성 이야기를 담고자 합니다. 그대의 청춘을 응원합니다 스무 살 예지에게, 어렸을 적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는 삼 남매를 힘겹게 키우셨습니다. 집은 점점 작아지고 좁아졌으며, 마침내 여름이면 푸른 곰팡이가 피던 반지하 집에 살 즈음부터 어머니는 공장에서 일하시기 시작했습니다(어쩌면 그전부터 그러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어린 저의 기억엔 ‘그때’의 슬픔이 하나의 정지된 화면처럼 새겨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푸른 곰팡이가 아니라, 한때 푸른 잔디밭 마당을 가진 집에 살았다는 자부심으로 버텼지만, 좌절은 곧이어 엄습했습니다. 좋은 선생님도 만났지만, 어떤 선생님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사랑이라는 빛나는 모험에 대하여 (빛과소금, 130805)

★ 9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예지’는 지금 일곱 살인 저의 첫째 딸 이름입니다. 훗날 ‘청년 예지’에게 전하고 싶은 일상 영성 이야기를 담고자 합니다. 사랑이라는 빛나는 모험에 대하여 스무 살 예지에게, 오로지 ‘함께’가 아니면 의미 없음을 깨닫는 순간, 그녀와 결혼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녀는 ‘남자’에 대한 존재론적 회의를 가지고 있었고, 저는 ‘다른 존재’와 함께한다는 것에 대한 막연하면서도 꽤나 구체적인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여기에선 저의 두려움만 얘기하지요. 세상을 인지하기 시작할 무렵부터, 가난의 숙명을 온몸으로 익혔던 까닭에 다른 누군가와 더불어 공동의 운명을 모색한다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저의 인생만으로도 벅찼으니까요. 함께하여 얻을 수 있는 유익도 꽤나 매력적인 것이었지만, 만약 그..

‘정의와 샬롬’에 헌신한 ‘그을린 예술’의 길 (복음과상황, 130805)

복음과상황(2013년 9월호)_“독서선집” ‘정의와 샬롬’에 헌신한 ‘그을린 예술’의 길(심보선 지음│민음사 펴냄│2013년)(니콜라스 월터스토프 지음│신국원 옮김│IVP 펴냄│2010년) 일흔이 되기 전까지 까막눈이었다. 뒤늦게 글을 배워 시를 쓰기 시작한 할머니는 이제 여든살이다. 이제는 한낮에도 시상이 자꾸 떠올라 밭일에 집중하기 힘들 정도다. 예술이란 “작품의 제작인 동시에 삶의 제작이기도 하다는 것, 그러한 몰두가 자아에 대한 배려인 동시에 사회질서가 자기에게 부과한 정체성으로부터 해방되려는 모험”이기도 하다. 어떤 예술은 비루한 현실에 대한 저항이 되고 모험이 된다. 심보선 시인은 이를 ‘그을린 예술’이라 명명한다. 그을린 예술은 타들어 가고 부스러지는 현대인의 삶, 자본주의의 격렬하고 성마른..

부디, 박원순의 야심과 우리의 희망이 패배하지 않기를 (오마이뉴스, 130805)

★오마이뉴스에 38번째로 기고한 글이며, "'겨우' 1년 6개월, 이런 정치인 처음 봅니다"란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아렌트의 정치적 공공성에 대한 열망과 박원순의 야심이 부합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고, 아직 '1년 6개월' 밖에 되지 않았으니 좀 더 지켜 볼 필요가 있다는 점도 지적하고 싶었습니다. 분명한 건, 여지껏 봐왔던 정치인과 '정치인 박원순'은 다르다는 점이었지요. 오마이뉴스에서 글도 조금 읽기 좋게 편집하고 제목도 새로 달았는데, 그래서 박원순 시장에 대해 훨씬 더 호의적인 서평으로 읽혀진다는 점, 그 부분이 조금 불만입니다. 부디, 박원순의 야심과 우리의 희망이 패배하지 않기를 [서평] 오연호가 묻고 박원순이 답하다 한나 아렌트(1906-1975)는 철학자가 아닌 정치이론가로 불리길 바랐다..

‘가 보지 않은 길’을 도모하는 ‘못다한 사랑’(복음과상황, 130705)

복음과상황(2013년 8월호)_“독서선집” ‘가 보지 않은 길’을 도모하는 ‘못다한 사랑’ (디트리히 본회퍼, 마리아 폰 베데마이어 지음│정현숙 옮김│복있는사람 펴냄│2013년) (문익환 지음│사계절 펴냄│1994년) 살아서 못다한 사랑/천 길 무덤 속 고요한 어둠/뚫고 솟아나리/차가운 샘물로 못다한 사랑 모이고 모여/내를 이루어 흐르리/목메는 강산 곱게 가슴에 수놓으며/흐르고 흘러 바다로 가리/바다로 갔다 구름 되어/못다한 사랑 눈물로 쏟으리 _문익환의 시, “못다한 사랑” 전문 살아서 못다한 사랑은 산하(山河)를 곡진히 흘러 바다에 이르고, 결국 구천(九天)에 올라 다시 눈물 같은 빗줄기로 세상에 내린다. 비 내리는 날이면 끝내 못다한 사랑을 헤아려 잠시라도 숙연한 그리움을 품어야 한다. 황국명 시인..

"할 수 있는 것만 하는 건 사랑이 아니다" (뉴스앤조이, 130724)

★뉴스앤조이에 기고한 글입니다(link). "할 수 있는 것만 하는 건 사랑이 아니다"[서평] 발칙하고 괘씸한 결혼 이야기 부제가 "와서 보라! 우리의 결혼을!"이다. 발칙하다. 살짝 마음이 상한다. 나도 그런 결혼 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결혼하기 전, 결혼에 관한 각종 책을 섭렵했고, 무도한 권위를 휘두르던 선배들을 보며 남자의 반성문을 가슴속에 대필했고,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뭇 여성들로 인해 충분히 분노했으니까. 거기다 자매를 위한 서비스 차원에서 "결혼예비학교"란 것도 이수했다. 하여, 나의 결혼 생활은 행복할 뿐만 아니라, 연인들의 교범이 될 것이며, 나의 일상은 아내의 칭찬으로 채워져야 마땅했다. 그래서 나도 "와서 보라! 우리의 결혼을!"이라고 외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서평에서 빠진 부분

서평에서 빠진 부분 "이런 동맹도 좋기는 하지만 무엇보다도 아나키즘이 우선이야. 그 위대한 사상 때문에 우리 같이 힘 없는 사람들도 자유를 만끽할 수 있잖아. 그러니깐 그 신발이 있든 없든, 진짜 부적은 바로 우리의 정신과 이 신조 속에 있어. '신도, 조국도, 주인도 없다!'"(57쪽) 주인공 안토니오와 더불어 '납탄동맹'이라는 아나키스트 연대를 이루던 날 나누던 대화다. 여기에서 '신발'은 전설적인 아나키스트로 스페인 공화정 시대를 이끌었던 부에나벤투라 두루티의 신발을 말한다. 안토니오의 친구 중 하나가 '두루티의 신발'을 득템하여 나중에 안토니오에게 선물한다. '두루티의 신발'은 아나키스트적 열망을 향한 어떤 승리의 의식과도 같다. 두루티는, 내 기억이 맞다면, 스페인 내전이 시작될 즈음 생을 마감..

90세 한 노인의 투신을 희망이라 부르는 까닭 (오마이뉴스, 130723)

★ 이달의 당선작(리뷰)_2013년 7월★ 선정작_2013년 7월★오마이뉴스에 37번째로 기고한 글입니다. 90세 한 노인의 투신을 희망이라 부르는 까닭[서평] 스페인 만화대상 수상작 ⓒ 길찾기 그가 처음부터 아나키스트가 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다. 지독한 가난에 포위된 채, 폭력으로 억누르며 생존의 당위만 강조하던 아버지와 형제들, 담을 쌓아 경계를 나누며 서로를 증오하고 탐하던 이웃들 사이에서, 그는 "모름지기 사람은 인류 외에 다른 고향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 욕망은 곧 절망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고향 페나블로를 떠날 결심을 한다. 그가 떠나고자 했던 것은 고향이 아니라, 온갖 야만과 폭력의 현장이었을 것이다. 이 책 은 평생 아나키스트로 살았던, 아니 그렇게 살고자 갈망했던 안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