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_/책_ 96

「의자 놀이」, 그리고 부르그만

뒤척이다 결국 일어나 책상에 앉았다. 저녁에 읽던 「의자 놀이」 때문이다. 칠흑같은 비극들에 불편하고 아프고 슬프고 분노했다. 달리 무엇을 변명해야 할지 마땅한 말을 찾지 못한채, 기어코 찾아낸 것이 불면의 궁색함이다. 부르그만의 책을 꺼내어, 얼마전 읽었던 부분을 다시 되새긴다. 부르그만은 출애굽 내러티브가 형성되는 시점, 유대교의 가장 핵심적인 기억이며, 기독교 전통과 의식에 유입되는 핵심적 사건인 출애굽 기적이 시작될 즈음을 주목한다. 그리고, 그 기적을 가능케했던 이스라엘의 "가장 초보적 기도"를 주해한다.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출 2:23) "가장 초보적 기도..

view_/책_ 2012.08.17

송성영,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저는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의 구절을 읊조려가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늘 작은 소리에 놀라 그물에 칭칭 감기고 흙탕물에 나뒹굴며 제 성질을 못 이겨 부르르 화를 냅니다. 어리석게도 제 잘난 맛에 푹 빠져 자신 뿐 아니라 상대방까지 끌어들여 화를 내게 만듭니다." 송성영, , 37쪽. 우리가 읊조리고 고백하는 '가치'에, 굴복하며, 순응하며 살아가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것이야말로, '기적 같은 일'일 것.

view_/책_ 2012.08.07

소명에 대한 좋은 책(<모험으로 사는 인생>,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소명에 대한 좋은 책들이 있다. 소명을 정의하고 분별하고 공부하게 만드는 책. 그런 책이 필요하고 마땅히 읽어야 한다. 그런가하면 설명하기보단, 소명을 북돋고 위로하고 용기있게 내딛게 하는 좋은 책이 있다. 이런 책 중에서, 난 단연, 폴 투르니에의 과 파커 팔머의 를 첫 손에 꼽는다. 내 인생의 주요 '사건'을 정리할 때, 인용되는 책들이기도 하다.

view_/책_ 2012.08.03

<마이클 야코넬리의 영성> 제목 유감

좋은 책이다. 영성은 자신의 불완전함, 미성숙함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여기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의미는, 그것을 토대로 보다 온전한 어떤 존재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그런 강박에서 자유해지는 것이 절실하다. 헝클어진, 뒤죽박죽이 된 삶의 현실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워나가야 하는 것이다. 야코넬리의 여러 경험과 그의 위트있는 문장은, 어렵고 힘든 이야기를 따뜻한 위트와 더불어 적절히 전개해나간다. 독자는 여러 대목에서, 공감하고 감동할 것이다. 예전에 다른 출판사에서 이란 제목으로 출간된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 아바서원에서 새로운 제목으로 나왔다. 번역자는 같다. 좋은 책이 다시 출간되는 것은 언제나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이번엔 바뀐 제목과 표지는 그 좋은..

view_/책_ 2012.07.27

길 위에서 만난 책

"길 위에서 만난 책(들)" (혹은) "길 위에서 만난 책, 그리고 사람들" 세상엔 책이 너무 많다. 좋은 책, 읽어야 할 책들만 추스려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많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내가 읽지 않은 책을 좋은 책이라 할 수 없고, 읽은 책이라 할지라도 실천되지 않는 책을 좋은 책이라 할 수 없다. 야마무라 오사무가 말한대로, 몸과 마음으로 읽는 책이 진짜 책이다. 길 위에서 만난 책들이어야 한다. 출근하다, 문득 떠올랐다. 내년 "청년도록" 카피는 여기서 출발한다.

view_/책_ 2012.07.24

사사키 아타루,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_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

"거기에서는 누구나가 '모든 것'에 대해 '모든 것'을 말할 수 있게 되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무척 기묘한 일입니다. 사상이나 비평이라는 좁은 원에서 한 발짝만 바깥으로 나가면 모든 것에 대해 뭐든지 알고 있고 설명할 수 있는, 전지전능에 가까운 그런 자아를 추구하고자 하는 환상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요. 제 친구였던 화가들, 댄서들, 기타리스트들, 피아니스트들, 가수들, 레퍼들은 아무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사사키 아타루, , 21쪽. 요컨대, 저자는 '모든 것'에 대해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다는 환상에 대해 말하고 있다. 가령 우리는 모든 것에 대해 비평하는 법을 배우고 연단하여, '모든 것에 대해 조금은 재치있게 말 한마디를 해낼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

view_/책_ 2012.07.23

미로슬라브 볼프, <삼위일체와 교회>

"뒤따르는 연구는 다름 아니라 '우리가 교회다'라는 자유교회의 저항의 외침을 삼위일체적 틀 안에 자리 잡게 해서 해명하는 것이다. 그 일은 그것을 교회론적 프로그램의 위치에까지 높이고, 가톨릭과 동방 정교회의 교회론들과 대화하는 가운데 진행될 것이다."(35쪽) 어제, 오늘밤엔 볼프의 (새물결플러스)를 "끙끙"대며 읽는다. 볼프의 언어에 등장하는 온갖 개념들과 인용들이 버겁기는 하지만, 그의 논증은 상당히 명료하다. 명료한 논증 속에 심오한 깊이를 담아내는 이는 쉽게 찾기 힘든데, 볼프가 그렇다. 한편, 그의 글쓰기 방식은 세련되어 보이지 않는다. 어떤 부분에선 투박하고 거칠다(안타깝게도 번역과 교열의 질감도 거친듯). 하지만 에둘러 가지 않고, 깊은 심연 속의 본질로 바로 수행한다는 측면에서, 그는 자..

view_/책_ 2012.07.22

문학동네 시인선

문학동네 시인선이 작년 새롭게 선보였을 때, 반갑고 신선했다. 시인선의 라인업도 마음에 들고, 무엇보다 판형과 사철 방식의 제본 방식, 그리고 디자인이 좋았다. 뭐랄까, "시"를 오롯이 담아내되, 그 이외의 요소는 철저히 미니멀리즘화 하는 그 정성스런 마음이 좋았다. 그런데 딱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본문 폰트다. 가독성이 떨어져, 시인의 마음에 미처 가닿기 전에 딴 마음이 스며든다. 혹시 내 페친 중에, 페친의 페친 중에 문학동네 분이 계시면, 꼭 건의해주셨으면 좋겠다. 본문 폰트 좀 바꾸자고.

view_/책_ 2012.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