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_ 87

밥벌이

동료가 밥을 샀고, 난 얻어 먹었다. 나의 밥벌이를 걱정해주는 동료의 마음이 감사했다. 가진 재산 없고, 아내는 전업 주부고, 아이들은 나날이 무섭게 자란다. 떠나야 할 이유와 의미도 소중하고 모든 좌절, 모든 소망에도 근거가 있겠으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당장 오늘을 살아내기 위한 밥벌이다. 사실, 그것이 가장 두렵다. 동료의 진심어린 눈빛, 그간 애써 지켜오던 온갖 그럴듯한 명분이 그 앞에 무너졌다.

窓_ 2012.11.06

스물아홉, 그리고 서른아홉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라. 이런 것들은 모두 이방인들이 찾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잘 알고 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말아라.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의 괴로움은 그 날에 겪는 것만으로 족하다."(마태복음 6:31-34, 공동번역) 스물아홉 살 때, 많이 아팠다. 전도사를 그만 두고나서, 대학원도 그만 둘 생각을 하고나서 많이 아팠다. 입안엔 물집으로 가득 찼고, 두 주 정도 거의 먹지 못했다. 신학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을 것이다. 공부하겠다는 마음을 접고, 대학원..

窓_ 2012.10.27

페이스북 권력

"페이스북 권력" 어제 지인과 만나 대화하는 가운데 들은 단어다. 얼마 안되는 사람들이 비슷한 공간에 모여 바글바글거리는 느낌, 페이스북에 대한 나의 이해 수준이다. 그런데 나와는 달리 페이스북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는 이들도 가끔 본다. 간혹, 그들 중엔 내가 제법 잘 아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사람들의 환호를 보며, 뭔가 찜찜하다. 페이스북에 남기는 글로는, 그의 '진면목'을 도저히 알 수 없는 까닭이다. 그의 직함, 위치, 사회적 영향력도 한 몫 한다. 그런 경우, 보통 난 그의 글을 '숨기기' 기능으로 감춰놓는다. 그를 보는 것보다, 그에게 환호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더 곤혹스런 까닭이다. 그 영향력 있는 이들 가운데 일부는 어떤 사람, 혹은 그와의 관계를 암시하며(가끔은 대놓고) 글..

窓_ 2012.10.23

뜨락

우리 교회는 소그룹을 뜨락이라고 하고, 뜨락 모임을 정기적으로 한다. 뜨락 도우미로 명명되었으나 제대로 섬기기는커녕, 제대로 뜨락 모임에 참여도 하지 않았다. 교회에 충분히 들어가지도 못한채, 나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운영위원이나 뜨락 도우미로 임명된 것이 불만이었고, 고달프고 바쁜 삶이 늘 변명거리였다. 그런데 이번엔 잡혔다. 그래서 참석한 뜨락 지기 모임. 가만히 듣고만 있었는데, 성도들의 힘겨운 삶이 기도제목으로 나누어졌다. 아픈 아들로 인해 절망에 길들여진 엄마의 기도, 하루하루 버티기 힘든 재정적 위기 속에 아이들의 양육을 위한 부모의 기도, 본인 또는 자녀의 이혼에, 가정의 불화에 힘겨운 이들을 위한 기도가 이어졌다. "우리가 혼자가 아닌 것을, 공동체라는 것을 잊지 않게 하소서." 모두가..

窓_ 2012.10.21

성묘

내가 예지만 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무덤 앞에 무슨 기도를 드려야할지 늘 막막했다. 아버지의 부재는 내게 늘 당연한 듯 했으니까. 만약 내가 지금 세상을 떠난다면, 예지는 나의 존재를, 지금 내가 아버지를 기억하는 만큼만 기억하겠지. 아내는 세상 살아가야 할 일이, 내 어머니만큼 막막하고 고되겠지. 좀더 건강해져야겠다. 아버지께 가는 길에 안개가 잔뜩 꼈다.

窓_ 2012.09.30

고독

오늘 설교 제목은 "고독"이었다. 어머니가 어렸을 적 돌아가신 이후, 늘 혼자였던 목사님은, 밤 늦게 집에 들어올 때면, 자신을 맞이하는 깜깜한 어둠이 싫었다고 한다. 그래서 혼자일 땐 라디오를 켜놓거나 아침 집 밖으로 나갈 때 작은 등불을 켜놓고는 했다고 한다. 너머서교회를 개척하고 나선, 다시 혼자인 시간이 많아졌다고 한다. 사무실에 혼자일 때가 많고 식당에도 혼자 가야 했다. 처음에 그것이 너무 싫었으나, 지금은 그 고독을 연습한다고 한다. 음악도 끄고, 아득한 정막 속에 자신과 마주한다고 한다. 설교를 들으며, 나의 고독을 생각했다. 어렸을 적 돌아가신 아버지, 언제부턴가 일하러 나가신 후 밤마다 우시던 어머니. 아버지의 빈자리와 어머니의 울음소리 사이에서, 난 혼자있기를 바랐다. 혼자 있는 시간..

窓_ 2012.09.23

모자

택배가 여럿 왔다. 알라딘에서 주문한 책도 왔고, 아내가 주문했을 기저귀 박스도 왔다. 미팅 끝나고 와보니, 박스가 하나 더 있다. 아내가 주문한게 또 있나 싶었다. 박스를 열어보니 왠 모자가 하나 들어있다. 그리고 엽서 하나. 문서학교에서 만났고, 그 인연으로 캠퍼스에 초청하여 만났고, 전리대에서 다시 만났던 이에게서 온 선물이다. 여름 휴가 갈 때, 쓰고 가란다. "인연은 소중히 간직하라고 있는거래요." 촘촘히 적힌 문장 중 하나다. 아, 감동이다! 근데, '조건'이 하나 있단다. 모자 쓴 사진 하나를 페북에 올리는 것. 아, 이것 때문에 정말이지, 한참 고민했다. 퇴근하기 전, 약속은 지켜야겠다(...대신 곧 내릴거다. 그래도 되지? 제발!).

窓_ 2012.08.07

엽서

출장 다녀와서 좀 지쳤나보다. 이번 출장이 그랬다기보단, 그간의 일정이 좀 무리였던 까닭일거다. 어제는 자다가 땀에 흠뻑 젖어 새벽에 일어났다. 열대야도 그렇지만, 몸에서 열이 났다. 아내는 아이들과 친정에 가 있다. 이런 더위에 혼자 아이들 키우는 것도 버겁긴하지만, 남편이 아이들에게 시달리는 것을 걱정한, 배려의 마음이 담겨 있다. 그런데 몸이 아프니, 아내가,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다. 이런 더위를, 아이들을 돌보며, 집에서 이겨내야 했을 아내에게 고맙고 미안하다. 2주간의 방학인데 같이 놀아주지 못한 예지에게 미안하다. 이제 똥오줌을 '거의' 완벽히 가린다는 예서가 눈에 밟힌다. 예배도 거르고, 점심 즈음 일어나 그제서야 서재에 들어갔다. 그런데 책상 위에 엽서 하나가 놓여있다. 미국 여행 중에 ..

窓_ 2012.08.05

길동무

우린 오늘도, 변함없이,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살아가지만, 가끔 우리 가슴은 숨이 멎을 것만 같은 답답함을 호소하지요. 그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살아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랍니다. 가쁜 호흡을 품고, 무언가를 향해 힘차게 올라가는 발걸음, 몸짓을 가능케하는 의미가, 그럴만한 충분한 의미를 만나야 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늘 숨 쉬며 살아가지만, 그 '숨'에, 어떤 '결'을 가져야 하는 것이지요. 어떤 '결'을 가졌는지가 무엇보다 중요한거지요. 그래서, 우린 늘 길 위에 있어야 하고, 그 길 위에서 누군가를 만나 우정을 쌓아야 한답니다. 오늘 나의 발걸음이 가진, 그 발걸음이 향하는 곳의 가치를 확증시켜 주는 것은, 늘 우리의 친구들이지요. '길동무' 말입니다. _누군가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窓_ 2012.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