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_

스물아홉, 그리고 서른아홉

Soli_ 2012. 10. 27. 05:00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라. 이런 것들은 모두 이방인들이 찾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잘 알고 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말아라.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의 괴로움은 그 날에 겪는 것만으로 

족하다."(마태복음 6:31-34, 공동번역)

스물아홉 살 때, 많이 아팠다. 전도사를 그만 두고나서, 대학원도 그만 둘 생각을 하고나서 많이 아팠다. 입안엔 물집으로 가득 찼고, 두 주 정도 거의 먹지 못했다. 신학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을 것이다. 공부하겠다는 마음을 접고, 대학원에서 주던 장학금을 포기하고, 교수님들의 기대를 접고 출판사에 입사했다. 

우리는 물려받은 재산도 없을뿐더러, 결혼할 당시 수천만 원의 빚을 안고 시작했다. 우린 대학 다닐 때에도 스스로 해결하거나 빚을 져야 했다. 경제적으로 기댈 가족은 애초에 없었다. 그리고 첫째 아이가 태어날 무렵 아내는 좋은 직장도 버렸다. 가난할지언정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던 까닭이다. 그리고 둘째가 태어난 이후, 우린 해마다 조금씩 더 가난해졌다. 

아침에 집안 곳곳을 살펴본다. 너무 많은 책과 음반들, 카메라, 오디오, 온갖 살림살이들,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 우린 그새 부자가 되었다. 가진 게 너무 많다. 물론 수천만 원의 빚은 그대로이고, 아내는 이제 돈 벌 궁리를 하지만. 그리고 내 나이, 이제 서른아홉이다. 그때처럼, 또다른 결정을 하고 있다. 아마, 난 다시 아플 것이다. 소중히 여겼던 무언가를 포기한다는 것은, 그처럼 아픈 일이다.

아침, 지인 몇 사람에게서 전화와 문자, 메일을 받았다. 내가 만든 책을 보았다고, 책의 갈피마다 나의 마음과 단어와 문장들을 발견했다고, 기뻐하고 기뻐했다. 나의 글쓰는 습관마저 기억하는 이들. 그 위로가 오늘 나의 결기를 북돋는다. 그새 나의 벗들도 많아졌다. 부자다. 

오늘 말씀을 마주하며, 난 여지껏, 그 말씀을 믿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야 만다. 권면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아픈 것인지를 깨닫는다. 새삼, 창밖 내리는 가을비가 꼭 그분의 마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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