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일 57

예지의 다섯 번째 생일

아내는 온 몸이 아픕니다. 한의원에 갔더니, 혹시 아이 출산한 달이냐고 묻습니다. 엄마의 몸은 참으로 신비합니다. 출산의 고통을, 그 몸은 평생 기억하고 되새깁니다.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그리고 평생 가장 큰 고통으로 기억할 그 '순간'을 엄마의 마음은 소중히 간직합니다. 아내는, 아픈 몸으로 밤늦도록 예지에게 해줄 여러 먹거리를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예지를 참으로 힘들게 낳았습니다. 혈소판 수치가 낮았던 아내는, 이틀 간의 진통 끝에 예지를 낳았고, 낳자마자 정신을 잃었습니다. 한 시간 뒤에 간신히 깨어난 아내는 새벽까지 수혈을 받았습니다. 태명은 "지음"이었고, 이름은 "예지"로 지었습니다. 무지개 '예', 이르다 '지'. 예지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언약을 언제나 되새기게 하는 아이이고, 오랜 힘..

霓至園_/rainbow_ 2012.04.24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박총의 <밀월일기> 외)

2008년 7월호 사랑한다면 이들처럼_박총의 (복있는사람, 2008)_헬렌 니어링의 (보리, 1997) 김진형 (IVP 문서사역부장) +1164. 내 핸드폰에 나날이 업데이트 되는 이 숫자는, 아내와 결혼의 언약을 맺은 이후 지금까지 이른 날들에 대한 헤아림이다. 결혼의 언약을 가슴에 새기고, 같은 곳을 바라보고 살아온 날들이 그냥 잊혀지도록 방관할 수 없음은, 우리가 함께한 날들 속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들 때문이다. 함께 간직하는 우리만의 이야기는, 오늘 우리 사랑이 어제보다 더한 깊이를 갖게 해주고 그만큼 다져진 확신으로 서로를 향하게 한다. 물론 일상의 지난(持難)함에 지쳐, 마치 우리 사랑이 더불어 시들어간다고 착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때, 우리와 같은 사랑을 고백했고 그 고백한 대로 살아갔..

기고_/CTK_ 2008.06.22

가난한 내가 그대를 사랑하여

가난한 내가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오늘밤은 푹푹 눈이 내린다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중에서 가난한 내가, 그대를 사랑하여 오늘 같은 한 여름날 오후에도 내 가슴엔 눈이 내린다.내가 사랑하는 누군가로 인해, 내가 사랑하는 그 무엇 때문에 오늘 나는 풍요롭다.가난과 힘겨움, 이루지 못한 온갖 꿈들로 지난한 일상에도, 사랑하는 그대로 인해 난 아름다운 오늘을 산다.

霓至園_/soon_ 2007.07.31

아버지가 된다는 것

아버지가 된다는 것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제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영역으로만 알았는데, 오히려 이미 오래 전에, 아님 제가 남성의 본질의 가지고 태어나는 그 순간에서부터 이미 간직하고 있었던 본능, 본능에의 기쁨을, 희생을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새롭지만, 결코 낯설치만은 않은 기쁨입니다. 되려 '회복'이라는 단어가 적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_아침, 신현기 간사님께 보낸 메일 중에서.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인 것만은 분명하다. 경제적인 부담감은 말 그대로 현실이 되고, 이로 인해 '내가 정말 하고 싶어하는 것'은 위축될 수 있으며, 한달이 채 안된 예지와 아직 몸이 완전하지 않은 아내를 섬기는 일도 생각처럼 그렇게 쉽지 않다. 그러나..

霓至園_/rainbow_ 2007.05.17

순일과 진형이 만나 예지에 이르다

진형이 순일을 만나 예지에 이르다 -'무지개 아이' 예지에게- 예지霓至 지난 10개월 동안 ‘지음'이라 불렀던 너에게 이제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련다. 무지개 '예'霓, 이를 '지'至. '예지'라 부른다. 세상의 모든 아들과 딸의 이름에는 그 부모의 소망이 담겨 있듯이, '예지'는 우리의 소망이자 신앙고백이란다. '예지'는 첫째, '하나님과의 언약에 이르다'라는 뜻이다. '무지개'는 노아에게 주셨던, 그리고 홍수 심판 이후에 인류에게 주셨던 언약의 징표였단다. 모든 불신앙을 이겨내고, 모든 절망과 공포를 이겨내고, 하나님의 헤세드, 언약적 사랑에 다다르는 삶을 살라는 뜻이다. 하나님과 더불어, 그분의 약속을 성취하며 살라는 우리의 바람이다. 둘째, '아름다움에 이르는 삶을 살라'는 뜻이다. 가장 선한 것이..

霓至園_/soon_ 2007.04.24

산모수첩

7주차. 드디어 산모수첩과 초음파 사진을 받았다. 지난 주 응급실에 다녀온 이튿날, 초음파로 지음이의 심장소리를 듣던 날, 간호사에게 산모수첩은, 초음파 사진은 주지 않냐고 물어보았었다. 혹시 깜빡하고 주지 않은 것은 아닐까해서. 하지만 간호사의 대답은, 아직 유산 징후가 있어서 명백한 임신 안정기에 들어가지 않아서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찌나 야속하던지. 아내가 몇 걸음 뒤에서 기다리고 있어서 가만있었지, 아내만 없었으면 간호사하고 한바탕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제 일주일만에 다시 초음파를 통해, 아이의 심장소리를 확인한 의사 선생님께서 "임신 축하합니다"라고 하신다. 7주만에. 그제서야 산모수첩도 만들어주고 초음파 사진도 수첩에 담아준다. 큰 고비를 넘겼다. 힘겨운 시기를 이겨내준 아내가, 지..

霓至園_/rainbow_ 2006.09.18

결혼은 본향을 향한 가장 깊은 갈망의 자리입니다(IVP 북뉴스 2006년 5-6월호)

IVP 북뉴스에 썼던 '사심' 가득한 글입니다. 결혼한 이듬해, 첫 아이를 유산하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원고 마감을 하루 넘겨 단숨에 썼던 글입니다. 아직도 가끔 우리의 첫 아이 "현서"를 기억합니다. 특히 예지와 예서가 너무 사랑스러울 때, 그 아이 생각이 더 많이 납니다. 언젠가 그 아이를 만날 날이 있겠지요. 그때가 속히 왔으면, 특히 요즘 그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2013/01/12 IVP 북뉴스(2006년 5-6월호)_booker의 책 읽기 결혼은 본향을 향한 가장 깊은 갈망의 자리입니다 사랑하는 아내, 순일에게 결혼, 언약 그리고 완전한 연합에의 갈망: 폴 투르니에에서 리사 맥민까지 남용되지 않는 참된 비밀의 가치는, 친밀하고 깊은 하나됨의 은혜로 누리는 기쁨입니다. 당신과 나, 우..

그대를 향한

그대를 향한 나의 마음은 어둠은 이길 수 없는 깊고 깊은 생명의 빛 그대를 향한 나의 마음은 아침 내 창가에 내린 햇살과 같네 그대를 향한 나의 마음은 절망은 어쩔 수 없는 날마다 새로운 소망 그대를 향한 나의 마음은 내게와 내 작은 삶을 향기롭게해 내 시로는 너무 부족한 내 노래엔 다 담을 수 없는 내가 전엔 느끼지 못한 새로운 나의 기쁨 그대를 향한 나의 마음은 그대를 내게 허락한 그분을 보게 하는 힘 그대를 향한 나의 마음은 이토록 나의 전부를 아름답게해 한웅재, "그대를 향한" "그대를 향한 나의 마음은, 그대를 내게 허락한 그분을 보게 하는 힘".생각나니? 순일을 향한 사랑을 꿈꾸며, 담아 선물했던 노래...^^

霓至園_/soon_ 2006.03.26

사랑해, 현서

사랑해, 현서 8주차를 지나, 그리고 이틀이 지났다. 9주차에 접어들면, 몸은 3등신으로, 얼굴, 다리, 팔이 자라고 심장, 신장, 간 등이 생성되며, 얼굴엔 눈, 코, 입, 귀 등이 자리잡는다. 불과 4주전에는 하나의 점이었는데, 2주전에는 조그만 동그란 원 안에 심장만 별처럼 깜빡거렸는데, 오늘은 제법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생명에의 감격은 눈부시다. 그런데. 새로운 생명이 우리들 사이에 있지만, 그 생명의 체온을 느끼기엔 나의 가슴이, 온갖 감각들이 너무 게으르거나 순수하지 못했었나보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현서를 느끼지 못하고, 충분히 감사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래서일까... 자꾸만 눈물이 난다. 저녁, 아내 안보이는 곳에서 숨죽여 울었는데, 또 이렇게 눈물이 난다. 지독한 고통, 그리고 아..

霓至園_/rainbow_ 2006.03.24

안녕, 현서

지난 월요일, 8주차 아기의 형체를 가졌지만 심장이 멈추어버린 현서를 병원에서 보고 오던 날. 그날 밤 꿈속에 현서가 나타났었다. 무채색 초음파 사진으로만 보았던 현서였지만, 꿈속의 천연색 빛깔로 나타나 나를 보며 웃고 있던 그 아이가 현서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아무 말 하지 못하고 울고 있는 나에게, 현서는 손을 흔들며 웃어주었다. 현서의 웃음은 순결했다. 작별 인사, 현서는 그렇게 나에게 이별을 고했다. 하루 이틀, 극심한 혼란과 고통 속에 신음했던 시간들이 지나고 오늘 아내는 수술대에 올랐다. 아내는 마취제가 몸에 퍼지기 전에 현서에게 눈물로 작별의 인사를 건넸다. 잠깐의 수술 끝에 '숨'을 잃어버린 현서의 육신은 아내에게서 제거되었다. 수술 끝에 인내심 많은 아내는 또 그렇게 울음을 소리..

霓至園_/rainbow_ 2006.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