霓至園_/soon_

순일과 진형이 만나 예지에 이르다

Soli_ 2007. 4. 24. 19:44

진형이 순일을 만나 예지에 이르다
-'무지개 아이' 예지에게-

 
 
예지霓至
 
지난 10개월 동안 ‘지음'이라 불렀던 너에게 이제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련다. 무지개 '예'霓, 이를 '지'至. '예지'라 부른다. 세상의 모든 아들과 딸의 이름에는 그 부모의 소망이 담겨 있듯이, '예지'는 우리의 소망이자 신앙고백이란다.


'예지'는 첫째, '하나님과의 언약에 이르다'라는 뜻이다. '무지개'는 노아에게 주셨던, 그리고 홍수 심판 이후에 인류에게 주셨던 언약의 징표였단다. 모든 불신앙을 이겨내고, 모든 절망과 공포를 이겨내고, 하나님의 헤세드, 언약적 사랑에 다다르는 삶을 살라는 뜻이다. 하나님과 더불어, 그분의 약속을 성취하며 살라는 우리의 바람이다.
 
둘째, '아름다움에 이르는 삶을 살라'는 뜻이다. 가장 선한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란다.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란다. 단지 외적인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참된 가치를 향해 곧은 의지와 부유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아름다움에 이르는 삶이란다. 온갖 비바람과 먹구름이 지나간 후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자연의 섭리, 무지개. 삶의 온갖 어려움과 불확실성을 이겨내고 예지의 삶에 아름답게 펼쳐질 그 무엇을 기대하며, 예지가 자라가는 것을 지켜보고 싶단다.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내가 나와 너희와 및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혈기 있는 자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땅의 
  무릇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된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창세기 9:13-16. 

 

2007년 4월 23일
 
오늘은 두렵고도 설레는 날이었단다. 아직 예정일이 일주일 넘게 남았지만, 예지는 이미 지난주에 4.2킬로그램을 넘어서고 있어서 부득이 오늘 '유도분만'이라는 것을 해야 했단다. 때가 차서, 엄마의 자궁이 예지를 세상에 내보내는 것이 아닌, '촉진제'라는 것을 써서 자궁을 수축시켜 예지가 자궁을 열고 나오도록 유도하는 것이란다. 엄마와 아빠는 예지가 너무 커서 자연분만을 시도하지도 못할 것이 두려워, 의사 선생님의 유도분만 제안을 받아들였단다. 그리고 오늘 아침, 엄마는 몇 가지 절차를 걸쳐 촉진제를 맞기 시작했다.
 
엄마는 하루 종일 금식했단다. 막내아들 내외가 걱정되어 서울에서 오신 할머니는 하루 종일 분만실 밖에서 서성거리셔야 했고, 아빠는 고통스러워하는 엄마를 옆에서 그저 지켜보아야만 했단다. 엄마는 고통스러워했지만, 엄마가 무엇보다 걱정한 것은 바로 예지였단다. 처음 경험해보는 이런 고통은 예지도 마찬가지인 까닭이다. 아니, 산모가 겪는 것보다 그의 10배의 고통을 태아가 겪는다는 이야기가 있지. 오늘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바로 예지가 아니었나 싶다. 생명의 섭리를 따라 엄마의 자궁을 열어 세상과 마주해야 하는 고통, 두려움. 엄마와 아빠는 무엇보다 그런 예지의 고통이 걱정되어 마음이 많이 아팠단다.
 
오늘 아침에 엄마와 함께 들어온 세 분의 다른 산모가 있었단다. 모두 유도분만을 선택한 산모들이었지. 한 산모는 촉진제를 맞다 양수가 터져 수술을 해야만 했고, 다른 한 산모는 5시간 넘게 진통을 겪다 마지막 고통을 견디지 못해 수술을 선택해야만 했단다. 그런가 하면 한 산모는 이번이 세 번째 출산인데 저녁 9시 즈음에 무려 5킬로그램이 넘는 건강한 딸을 순산했단다. 한편, 엄마는 저녁 6시를 훌쩍 넘어 진통을 겪다 자궁이 열리지 않아 결국 오늘 출산은 포기해야 했고, 오늘을 넘기고 내일 새벽부터 다시 촉진제를 맞고 유도분만을 시도해야 한다구나. 종일 금식하며 고통을 삼켜야 했던 엄마, 그리고 예지는 그렇게 다시 하루를 넘겨 내일을 기약해야만 한단다. 그러나 오늘 수술로 세상에 나와야 했던 다른 두 아이와는 달리, 엄마와 예지, 모두 건강하게 잘 견디어서 아빠는 옆에서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른다. 오늘 하루, 씩씩한 태동과 심장소리를 들려준 예지에게 감사해. 그리고 산고 속에서도 예지와 아빠를 먼저 챙겨주는 엄마에게 감사해.
 
성경에 나오는 '긍휼'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라카밈(rachamim)"이라고 하는데, 이는 어미의 자궁을 뜻하는 단어에서 유래한 것이란다. 하나님의 긍휼은 곧 어미의 자궁과도 같은 것이지. 마치 예지를 품은 엄마의 지극한 사랑 같은 것. 하나님께서 긍휼을 거두시면, 우리는 모두 더 이상 숨 쉴 수 없고 살아갈 수 없단다. 자궁을 벗어난 태아가 더 이상 숨 쉴 수 없듯이 말이다. 지난 10개월간 예지를 품는 엄마의 사랑을 보며 하나님의 긍휼,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은혜를 배웠단다. 하나님 없이는 우리는 단 한 순간도 온전한 호흡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배운단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긍휼, 사랑, 은혜라는 것. 아빠가 엄마를 만나고, 예지를 갖고, 예지가 이제 세상에 나오는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고백한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단 한순간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기억해야 한단다. 그것이 우리의 신앙고백이고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삶의 출발점이어야 한단다.

예지야. 우리 조금만 더 힘내자. 하나님을 의지하여 씩씩한 웃음을 터뜨리고 세상에 나오렴. 
엄마와 아빠에게 그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선사해주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스바냐 3:16
 
 




 
2007년 4월 24일
 
이른 아침 6시에 엄마는 두 번째 촉진제를 맞기 시작했다. 아침에 내진하신 의사 선생님께서, 오늘 오후까지 진행 상황을 보고 수술 여부를 결정하자고 그러신다. 본격적인 진통은 오전 10시가 넘어 다시 시작되었어. 이틀째 촉진제를 맞고 있는 엄마가 안쓰러워서인지 간호사 선생님들이 번갈아 들어오며 엄마를 정성껏 돌봐주었단다. 걱정해주며 안마도 해주고 운동도 시켜주고 긴장할까 봐 농담도 해주던 간호사 선생님들이 너무 고마웠단다. 엄마는 진통 과정을 차근차근 잘 감당해냈단다. 사실 결혼하고 나서, 그토록 결연한 의지의 엄마는 처음 보았단다. 엄마는, 내 아내는 참 강한 여자구나. 아니, 여자로서의 아내는 가녀리고 연약하지만, 엄마로서의 아내는 그 누구보다도 강하다는 것.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며 아빠는 많이 감탄하고 감동했단다. 여자는 그렇게 엄마가 되고서야, 그 찬란한 아름다움을 가지는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어머니들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예지도 그런 여자로, 나중 나중에 그런 엄마로 성장하길 기도할게.


  "모야천지母也天只. 어머니의 가슴은 열려 있는 하늘입니다." 

오후를 지나면서 엄마는 한계 상황에 직면하기 시작했단다. 자궁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하면서, 또 예지도 조금씩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참을 수 없는 진통이 엄마를 힘들게 했단다. 그래도 엄마는 다른 산모들에 비해 소리를 지르지도, 수술하게 해달라거나 하지 않았단다. 오히려 수술을 권하시는 의사 선생님이나 간호사 선생님들의 권유에 단호하게 맞섰단다. 다들 감탄했지. 처음에 같이 진통을 시작했던 산모들 가운데 일부는 견디다 못해 수술을 하거나 무통주사를 맞거나 했단다. 간호사 선생님이 그러셨어. “지음 엄마는 수술하잔 얘길 한 번도 안 하시네요. 다들 이즈음 되면 그렇게 얘기하시거든요.”

예지가 나오기 전 마지막 세 시간은 참으로 길고 긴 고통스러운 시간들이었단다. 엄마는 거의 탈진하여 탈수현상을 보이기 시작할 즈음, 세 번째 촉진제가 들어가기 시작했단다. 옆에서 아빠는 아무것도 엄마에게 해줄 것이 없더구나. 다만 호흡을 맞춰주고, 손을 잡아주고, 기도하는 것밖에. 자꾸만 눈물이 났는데, 엄마에게 보이면 안 될 것 같아 속으로만 삼켜야 했단다.

오후 5시가 넘어 의사 선생님은 마지막으로 자연분만을 시도해보고, 안 되면 밤늦게라도 수술하는 것을 고민해보자고 하셨단다. 이대론 산모가 위험할 수도 있단 이야기에 두려웠단다. 처음으로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어. 예지가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컸고, 엄마가 오랜 진통으로 탈진한 상태인데다가 또 혈소판 수치도 걱정이 되는 상황이어서 의사 선생님도 많이 힘들어하셨단다. 


저녁 6시가 조금 넘어 자연분만을 시도하던 순간, 드디어 자궁이 열리기 시작했단다. 예지의 새까만 머리카락이 보이기 시작했어! 예지를 받으러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셨고 몇 번의 극심한 진통 끝에, 저녁 6시 37분에 이르러, 예지가 엄마의 자궁을 열고 세상에 나왔단다. 아빠는, 그만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고야 말았단다.

 
예지는 4.06킬로그램의 건강한 아이로 태어났단다. 아빠는 모든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았고 예지의 탯줄을 잘랐단다. 나오자마자 엄마의 가슴 위로 올려진 예지의 작고 하얀 손을 아빠가 처음으로 잡아주었단다. 신기하게도 예지는, 아빠가 예지를 부르자 울음을 멈추고 아빠와 눈을 맞춰서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들을 놀라게 했어. 그때의 감동을 평생 잊지 못할게다. 작은 눈망울이 아빠의 시선과 맞닿았을 때, 아빠는 전율했단다. 그리고 옆방으로 옮겨져 아빠가 예지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할 때까지도 예지는 크고 맑은 눈을 깜빡거리며 아빠를 행복하게 해주었다. 
 
예지가 신생아실로 옮겨진 후, 엄마에게는 두 번째 위기가 다가왔단다. 탈진한 상태에서 피를 너무 많이 쏟았던 것이 문제가 되었어. 경련을 일으키며 정신을 잃었단다. 호흡 곤란에 자칫 잘못하면 뇌경색에 이를 수 있는 위험한 순간이었어. 정신을 잃은 짧은 순간에 엄마는 꿈을 꾸었단다. 악한 것들이 엄마에게 다가와 필사적으로 그것들에 발길질하던 꿈. 엄마와 아빠는 다시 기도했단다. 악한 것들에게서 우리를 구원해달라고, 하나님의 은혜로 엄마를 지켜달라고, 예지를 지켜달라고, 마음을 강하게 해달라고. 엄마는 예지를 낳은 밤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산소호흡기를 달고 병실에 누워 수혈을 받아야 했단다. 다시 혈액검사를 비롯한 여러 가지 검사를 병행하느라, 예지에게 수유하는 것도 미뤄야 했단다. 엄마는 다른 무엇보다 예지에게 젖을 물리지 못하는 것에 가장 미안해했단다.
 
 





2007년 4월 26일
 
엄마는 예지에게 젖을 물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웃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빠는 그제서야 다시 행복을 느낀다. 예지는 아빠에게 너무나 사랑스럽고 귀한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엄마는 아빠에게 그 이상의 존재란다. 엄마의 존재는 오늘 아빠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이유이다. 언제나 첫 번째 사랑이자 기쁨이란다. 예지에게는 미안하지만, 예지는 그다음이란다. 예지도 언젠가 그런 아빠를 이해해주고 더 기뻐해주리라 믿는다.

예지는 아직까지는 아빠를 닮았구나. 눈이며 코와 입, 아빠가 태어났을 때와 똑같다고 할머니가 그러시더라. 엄마를 닮으면 더 예쁠 텐데 말야. 앞으로 예지의 얼굴과 몸짓과 마음에 엄마의 모습이 더 많이 나타나길 기대할게. 아무튼 예지는 세상에서 두 번째로 예쁜 여자다. 적어도 아빠에겐 말야. 예지가 엄마 품에 안겨 잠을 잘 때, 엄마가 예지에게 젖을 물리며 웃음 지을 때 아빠는 너무나 행복하구나. 예지가 건강하게 자라주었으면 좋겠다. 하나님의 언약에 이르는 삶을 사는, 아름다운 무지개 빛깔의 삶을 사는 예쁜 아이로, 엄마를 닮은 맑고 순수한 아이로 자라가길 기도한다. 예지야,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이제 아빠와 엄마는 '무지개 아이' 예지와 함께, 병원을 나와 세상을 향해 다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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