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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놀이」, 그리고 부르그만

Soli_ 2012. 8. 17. 02:24

뒤척이다 결국 일어나 책상에 앉았다. 저녁에 읽던 「의자 놀이」 때문이다. 칠흑같은 비극들에 불편하고 아프고 슬프고 분노했다. 달리 무엇을 변명해야 할지 마땅한 말을 찾지 못한채, 기어코 찾아낸 것이 불면의 궁색함이다. 

부르그만의 책을 꺼내어, 얼마전 읽었던 부분을 다시 되새긴다. 부르그만은 출애굽 내러티브가 형성되는 시점, 유대교의 가장 핵심적인 기억이며, 기독교 전통과 의식에 유입되는 핵심적 사건인 출애굽 기적이 시작될 즈음을 주목한다. 그리고, 그 기적을 가능케했던 이스라엘의 "가장 초보적 기도"를 주해한다.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출 2:23)


"가장 초보적 기도"는 사실 기도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 어느 하나님이 아니라, 어느 하나님이라도 어디선가 듣고 개입하길 바라며 '열린 하늘'을 향해 내지르는 외침이기 때문이다. 


부르그만은 이러한 기도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가장 절실한 육체적 필요를 고스란히 표출하는 행위고, 견딜 수 없는 고통과 기필코 토해내야 하는 비극을 소리쳐 외치는 행위다. 따라서 이러한 외침을 견딜 수 없는 현실이 더는 계속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내젖는 희망의 몸짓으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구약의 위대한 기도, 13쪽)


그리고 하나님은 기꺼이, 그 초보적이고 원시적인 기도를 들으신다. 


"이들의 대담한 기도는 위험이자 희망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들의 외침은 사회적으로 수용될 수 없는 주장이다."(14쪽) 


세상은, 권력은 외면하고 폭력으로 짖누르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들으셨고 응답하셨다. 기적은 그렇게 시작한다. 

「의자 놀이」를 읽으며, 이 말도 안되는 현실 속에서 필요한 것은, 가장 초보적이고 원시적인 기도임을 깨닫는다. 그 기도야말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담대한 희망임을 고백한다. 화려한 수사로 그득한 신학적이고 현학적인 진단과 해석은, "견딜 수 없는 고통과 기필코 토해내야 하는 비극을 소리쳐 외치는 행위"로 치환 혹은 대치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러한 외침을 견딜 수 없는 현실이 더는 계속되지 않기"를 고대하고 고대하고 고대한다. 

하나님께서, 정의를 하수같이, 이 땅에 흐르게 하시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