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서 73

아이들 때문에, 다시 희망을 품습니다

이틀간 너머서교회 이삭이네, 다빛이네, 아진이네, 민지네, 예지네가 함께 산음자연휴양림으로 여행을 갔습니다.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를 예감하고 저녁엔 조촐한 기쁨의 성찬도 준비했었지요. 그런데 졌습니다.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인 눈부신 초록 생명들도, 고요한 바람과 눈부신 푸른 하늘도,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만 같던 밤 하늘의 수많은 별빛들도 우리의 절망을 쉬이 위로하지 못했고, 어느 누구도 섣부린 희망을 말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눈부신 눈빛, 웃음, 앙탈, 투정, 재치, 위트, 사랑, 생명들은 우리의 절망을 가소롭게 만들고, 금새 희망을 만들어내더군요. 아이들 때문에, 다시 희망을 품습니다. 그게 부모된 우리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視線_ 2012.12.20

여섯 살 예지를 씻기면서

퇴근하고 돌아와서 나의 역할은 보통, 아이들과 한바탕 놀기와 아이들 씻기는 일이었다. 내가 아이들을 씻기기 시작하면 아내는 청소를 하고 잘 준비를 한다. 아내가 인정하는 바, 청소는 내가 더 잘한다. 아이들 씻기는 일은 아내가 더 잘한다. 솔직히 난 대충 씻긴다. 그럼에도 아이들을 내가 씻기는 이유는, 아내가 아이들과 정서적으로 좀 떨어져 있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 종일 밖에서 보낸 아빠는 아이들과의 스킨십이 절실한 까닭이다. 여섯 살 예지를 씻기면서, 언제까지 이 아이를 씻기는 이 호사스런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 종종 생각했다. 아이는 어린이가 되고 소녀로 자란다. 조금 있으면 아빠랑 목욕하는 것을 싫어하게 되겠지, 그런 상상을 하면 서글펐다. 다 씻은 후에 예지의 머리를 드라이한다. 이 때..

霓至園_/rainbow_ 2012.12.01

좌충우돌, 너의 모험

좌충우돌너의 머리는 상처투성이다계단에서 굴러 떨어지고의자에서 추락하고바닥에서 자빠져 머리부터 쿵 떨어졌다 이마엔 긁힌 자국에 멍이 가실 날이 없고 뒤통수엔 제법 커다란 혹이 났다 그래도 기어이 다시 계단에서 뛰어내리고 의자에 위태롭게 올라 재주를 넘으려 한다 운동신경도 아빠를 닮은 놈이 그런 너를 보며 아빠가 예서를 닮아야겠다 생각한다 좌충우돌, 너의 모험을 닮아야겠다 나의 이마와 뒷통수에 멍이 들고 혹이 나더라도 예서처럼 오르고 뛰어내렸으면 좋겠다 오늘은 너를 생각하며 하루를 연다 고맙다, 아들

霓至園_/rainbow_ 2012.10.22

그르니에의 섬

기껏, 이제 며칠 지났을 뿐인데, 제주도, 그리고 울릉도에서의 시간이 벌써부터 아득하다. 울등도에서의 둘째 날 아침, 나리분지를 거닐며 그르니에의 "섬"이, 그 책의 서문인 까뮈의 글이 생각이 났다. 집에 가면 다시 찾아 읽어야겠다고 수첩에 적었는데, 오늘 퇴근하기 직전에 그 메모를 기어이 기억해냈다. "태양과 밤과 바다...는 나의 신들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향락의 신들이었다. 그들은 가득히 채워준 뒤에는 다 비워내는 신들이었다. 오직 그들과 더불어 있을 경우에 나는 향락 그 자체에 정신이 팔려 그들을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내가 어느 날 그 무례한 마음을 버리고 나의 이 자연신의 품으로 되돌아갈 수 있게 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나에게 신비와 성스러움과 인간의 유한성, 그리고 불가능한 사랑에 대하여..

視線_ 2012.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