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상황(2014년 1월호)_“독서선집”
위태로운 경계를 걷는 이들의 위로
≪다른 길이 있다≫(김두식 지음│한겨레출판 펴냄│2013년)
루쉰의 소설 <고향>은 다음과 같이 끝난다. "나는 생각했다. 희망이란 것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게 곧 길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소설 <흰 빛>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세상에 만약 정말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이 그래도 있다면, 우선 감히 말하고, 감히 울고, 감히 노하고, 감히 욕하고, 감히 싸우며 이 저주스러운 곳에서 저주스러운 시대를 물리쳐야 할 것이다."(이상, <루쉰 소설 전집>, 을유문화사, 2008)김두식과 ‘그의 인터뷰이’를 따라 걷는 내내, 난 루쉰의 문장들을 생각했다.
경계를 걷는 사람, 사람들
김두식은 경계를 걷는 구도자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강박’으로 훈련된 '바른 청년'으로 성장했지만, 세상에 아무런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교회에 절망하기 시작한다. ‘세상 속의 교회’로서 그 소명을 감당하지 못한 채, 도그마적 관념으로 위장된 자본과 계급의 가치를 공고히 쌓는 한국교회는 "생명력을 잃은 공동체"(<세상 속의 교회 교회 속의 세상>, 홍성사, 32쪽)였다.
아이러니하지만, 김두식은 교회의 경계를 넘어선 후에야 진정한 구도자가 되었다. 세상의 불의와 교회의 무력함에 애통했고, 그 슬픔은 그를 용감하게 했다. 구도자는 끊임없이 묻고 도전하고 수행한다. 구도자의 결기는 파토스를 앓는다. 김두식은 법조계의 불의한 카르텔에 맞선 내부 고발자였고(<헌법의 풍경><불멸의 신성가족><이제는 누군가 해야 할 이야기>), 국가적 신념 속에 굴절된 사회적 금기에 맞선 평화주의자였다(<평화의 얼굴>). 그런가 하면 영화라는 프레임을 통해 인권 문제를 대중의 언어로 풀어냈으며(<불편해도 괜찮아>), 급기야 '강박'에 가까운 자신의 삶 속에 깃든 은밀한 욕망을 적나라하게 고백하며 노골적인 '탈선'을 선동했다(<욕망해도 괜찮아>).
경계를 걷는 그의 행보는 위태롭고도 굳건하다. 그는 종종 자신의 '소심'을 고백하지만, 그 함의는 보다 깊은 성찰에서 비롯된다. 민주화 운동에 투신하여 자신의 삶이 부서져 버린 이들 앞에서, 그는 그저 '바른 청년'이었던 그의 과거를, 기독교인으로서의 그 무지를 성찰한다. 이번에 출간된 인터뷰집 <다른 길이 있다>에서도 그 '소심'은 여러 곳에서 발휘되지만, 이 책을 함께 기획한 고경태 기자는 "소심을 돌파하는 결심"이란 합당한 레토릭을 선사한다. 이 책은 서른 명의 인터뷰이가 서 있는 그 위태로운 '경계'에서 나눈 대화라는 점에서, 그들의 절실함을 이끌어 내는 인터뷰어 김두식의 굳건한 ‘질문’이라는 점에서 그의 전작들과 같은 결을 갖는다.
동일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떤 인터뷰어를 만나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인터뷰가 된다. 김두식이란 인터뷰어를 통해 구현된 서른 명의 ‘말’은 절창에 가깝다. 수려한 문장을 구사한다는 측면에서가 아니라, 그들이 가진 가장 위태로운 지점을 고백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렇다. 인터뷰이의 진심을 믿는 인터뷰어의 선의는, 그들의 가장 깊숙한 슬픔에 닿는다. 깊고 깊은 곳에 놓여진 슬픔은, 오늘 그의 삶을 이해하는 단초가 된다.
저는 기억의 감정을 풀어낸 순서대로 작업해요.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왕따 사건을 20년 동안 반복적으로 저 자신에게 납득시켜온 것과 같은 작업이었죠. 살아오는 동안 수많은 일이 있었지만, 내가 아파했던 부분, 쉽게 넘어가지 않는 부분만 기억에 남아요. 그렇게 남아 있는 이야기들이 고리로 연결되어 서사가 되는 거예요. 그보다 완벽한 서사가 없어요. 한 사람 한 사람의 기억은 너무나 납득이 되는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거든요.(<다른 길이 있다> 김성희 편, 191쪽)
아픔을 추적하는 일은 '남아 있는 이야기'를 잇는 고리가 되고 또 다른 ‘완벽한 서사’로 도약한다. 만화가 김성희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왕따 당한 아픔을 평생 앓았고, 마침내 그 오랜 상처에 직면하여 '딱 한 명'의 슬픔에 말을 거는 만화가가 되었다. '딱 한 명'의 슬픔에서 시작된 그의 서사는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다시 아프게 한다.
정혜신은 어린 시절 엄마의 부재를 앓았으나 지금은 '와락'의 사람들에게 ‘엄마' 소리를 듣는다. 박경신은 누이의 죽음이 지금도 너무 아파 숨죽여 통곡하지만, "누나를 잃은 상처가 남긴 문제를 피하지 않는 용기"를 저항의 동력으로 삼는다. 윤태호는 '대학 다니는 아이들'에서 제외된 '악다구니'로 기어코 만화가가 되었다. 김조광수는 게이라서 꼰대가 될 수 없는 숙명을 유쾌한(틀림없이 그랬을 것이다) 목소리로 고백한다. 유시주는 ‘퓨티부르조아’로서 살아가며 '실패한 운동권'으로서의 오랜 죄책감을 고백한다. 김대진은 스승의 죽음을 딛고 그 자신이 스승이 되어 그 소명을 잇는다. 이상호는 선배 이한열의 뒤에서 그의 죽음을 목도하며 "최소한 둘째 줄에서 비겁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실천한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예외 없이 인생의 어느 시점에선가 막다른 골목에 부딪혔"(5쪽)으나, 그들 대부분은 상처, 슬픔, 결핍을 극복하였다. 어떤 상처는 또 다른 이들을 향한 연민으로, 어떤 슬픔은 순전한 저항으로, 어떤 결핍은 독한 창의력으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서른 명 모두가 그러하진 못했다. 강기훈은 시대의 야만에 저항하되 타협하지 않은 대가를 지금까지 치르며 죽음 앞에 당도했으며, 문부식은 목숨을 걸어 투신했던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겪은 상처와 불화한 삶을 끊임없이 자책하며 이어간다. 김두식은 그들의 고백을 통해 우리의 각성과 배려를 촉구한다. 무릇, 그는 인터뷰이의 진심을 이끌어낼 뿐 아니라, 독자들의 진심까지 욕심내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고백할 차례라는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강기훈은 작은 목소리로 "왜 나한테 자꾸 이런 일이 오는지, 억울하고 기분이 더럽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고통에는 뜻이 있다"고 병실에서 전도하는 사람을 보면 "내 성격이 못되어서, 인간이 덜되어서 그런지, 한 대 때려주고 싶다"고도 했습니다. 예의 그 헛헛한 웃음을 날리는 그의 눈가로 언뜻 눈물이 비쳤습니다 타협을 거절한 인간의 눈물이었습니다. 그 눈물을 못 본 척하는 사회에서는 누구라도 언제든지 강기훈처럼 억울한 희생자가 될 수 있습니다.(208쪽)
문부식에게는 그를 끝까지 보호하고 지원하는 '조직'이 없었습니다. 문부식처럼 민주화운동에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에게 자기 삶과 화해할 기회를 한 번이라도 더 주는 것이, 저처럼 민주화운동에 전혀 기여한 바 없이 과실만 따먹은 사람들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요.(220쪽)
독자의 진심까지 욕심내는 인터뷰어 김두식
경계를 벗어났지만, 경계를 이탈하지는 않은 인터뷰어 김두식은 우리에게도 질문한다. 견고한 확신에 부동하는 자가 아니라, 끊임없이 회의하고 의심하고 질문하는 이들이 진리와 정의의 본령에, 타자의 진심에 닿을 것이다. 절실한 질문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그리고 오랜 상처를 마주하지도, 극복하지도 못하는 이들에게, 그래서 실패와 좌절을 반복하는 이들에게, 거대한 불의로 점철된 세상이 두려운 이들에게, 혹은 자책과 자기 연민에 허우적대는 이들에게… 김두식은 서른 명의 인터뷰를 빌어, 최선의 진심을 담아 말을 건넨다. 다른 길이 있단다. 온갖 부정적이고도 부당한 전망으로 그득한 새해를 시작하는 우리들에게, 이보다 더 큰 위로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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