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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자’의 희망 앞에 선 ‘산 자’의 절망 (복음과상황, 140913)

Soli_ 2014. 10. 14. 08:33
복음과상황(2014년 9월호)_“독서선집”


죽음 자의 희망 앞에 선 산 자의 절망
≪그의 슬픔과 기쁨≫(정혜윤 지음│후마니타스 펴냄│2014년 4월)


2009년 1월 9일, 쌍용자동차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노동자들은 신차 개발 자금 확보를 위해 자신들의 퇴직금을 담보로 1천억 원을 출자하겠다고 했고, 임금과 복지 삭감을 받겠다고 했고, 순환 무급 휴직도 먼저 제시했다. 그들이 원한 것은 하나였다. 고용을 보장해 달라는 것. 그러나 회사는 해고를 강행했다. 노동자들은 “해고는 살인이다. 함께 살자”라고 쓴 현수막을 내걸고 파업에 돌입했다.

해고자 명단에 오른 자들은 ‘죽은 자’로 불렸다. ‘죽은 자’들과, 그리고 동료들을 버리지 못해 함께 파업에 동참했던 소수의 ‘산 자’가 있었다(옥쇄파업 결행했던 500여 명 중 72명이 ‘산 자’였다). 파업에 돌입하자 회사는 제일 먼저 ‘산 자’들로 하여금 그들 앞에 대치하게 했다. ‘산 자’ 앞에 ‘죽은 자’들은 아득한 슬픔을 느꼈다. 해고노동자 최기민은 당시를 고통스럽게 회상한다.

“이것은 우리만 살자는 게 아니다. 죽은 자들이 자기 문제로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같이 싸우지 않으면 살아 있는 당신들도 미래를 보장 못 받는다. 이 일은 반복될 것이다”라고 말했어요.…어제까지 나랑 같이 일했던 사람인데, 산 자와 죽은 자로 갈려서 한쪽은 “같이 살자”하고, 한쪽은 “내 상황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다” 하는 것이 고통스러웠고 그래도 한편으로는 이해도 됐어요.”(<그의 슬픔과 기쁨>, 50쪽)

그 말에 통증을 느꼈다


이미 오래된 일이 아니던가. 세월호 참사마저도 ‘피로하다’는 이유로 ‘망각’을 권장하고 선택하는 요즈음, 다시 쌍용차 이야기라니. 망설였다. 책을 사 놓고도 읽기를 시작하기까지 한참이 걸렸고, 첫 장부터 슬픔이 휘몰아칠 때면 호흡을 고른다는 핑계로 책을 놓았다. 그러던 어느 무심한 여름날, 나는 동료로부터 자신이 해고 통보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여름휴가를 떠나기 수일 전의 일이었단다. 동맹하거나 연대할 동료가, 그에게는 없었다. 단지, ‘산 자’의 어설픈 위로만이 한가로이 건네졌을 뿐이다. 그리고 난, 다시 이 책을 집어 힘겹게 읽었다. ‘산 자’의 비겁함을 마주해야 했다. 나의 비겁함이었다. 그러자 아프고 서럽던 그들의 시간이 또렷이 느껴졌다. 잊은 것이 아니라, 외면했던 진실들이 그곳에 아스라이 놓여 있었다.


이 책은 정혜윤 PD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스물다섯 명과 인터뷰한 것을 엮은 르포르타주다.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이 시작되던 때부터 2013년 “H-2000” 프로젝트 전후까지를 시간 순서대로 담았다. ‘H’는 Heart 혹은 Hope를, ‘20000’은 자동차에 들어가는 부품 개수를 상징한다고 했다. 서른 명 정도의 해고노동자들은 시민들의 후원금 8천만 원으로, 2004년산 코란도를 중고로 산 후 24시간 동안 해체하고 다시 24시간에 걸쳐서 조립했다. 허름한 호프집에서 열린 뒷풀이에서 해고노동자 김대용은 몽롱한 행복감에 젖어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반복했단다. “또 하고 싶다.” 정혜윤은 “그 말에 통증을 느꼈다”. 그들은 ‘선도투’라 불리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들과의 인터뷰는 시작되었다.

77일간의 옥쇄파업 기간, 식수가 끊기고, ‘산 자’들은 새총으로 ‘죽은 자’들을 겨눴고, 경찰 헬기는 대량의 체루액을 살포했고, 테이저 건 탐침을 노동자들에게 쐈다. 변기는 넘쳐 흐르고 에어컨을 가동한 물로 세수하고 그 물을 섞어 주먹밥을 만들어 먹었다. 사측과 ‘산 자’, 경찰과 용역들은 굴욕적인 교섭을 강요했다. 지옥 같은 시간들이었지만, 그들은 희망을 낙관했다. ‘우리는 잘못한 게 없으므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그래서 그들은 전기가 끊긴 상황에서도 자가 발전기를 고쳐 에어컨을 가동하여 도장 공장을 보존했다. 자신들의 뜨거운 몸을 식힌 것이 아니라, 파업이 끝나면 바로 공장을 가동하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다. 노동자들을 진압하러 경찰 특공대가 투입된 다음 날인 8월 5일, ‘쌍용자동차의 회생을 위한 노사합의서”가 체결되었다. 8월 6일, 파업을 끝내고 공장 정문을 나서던 96명의 노동자가 연행되었다. 그들의 낙관이 잔혹하게 짓밟히던 시간들이 시작된 것이다.

옥쇄파업 ‘77일’은 지옥 같았지만 견딜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파업을 주도했던 노동자들이 구속되고, ‘산 자’들은 ‘죽은 자’들을 모멸하고, 사측의 약속은 난망하고, 무엇보다 사람들은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을 잊기 시작했다. 잊힐 때 진짜 죽는 것이다. 해고노동자 임무창은 2011년 2월 26일, 생활고와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아내는 일 년 전에 우울증으로 자살했고, 남겨진 아이들이 아버지의 시신을 추스렸다. 쌍용자동차 범국민대책위원회가 꾸려졌고 ‘와락’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죽음은 멈추지 않았다. 스물두 번째 죽음 이후, 그들은 2012년 4월 5일 대한문 분향소를 세웠다. 장대비가 쏟아지던 나날들이었다. 그들은 장대비를 맞으며 절망과 처절하게 싸웠다. 

2012년 8월, 한상균 전 지부장은 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화성교도소에서 3년간 실형을 살고 만기 출소했다. 그는 대한문 분향소를 찾아 세 번 절하며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합니다"라고 낮은 소리로 읊조렸다. 김정우 지부장이 금식 41일째 되는 날 병원으로 후송되었고, 다음 날 2012년 11월 20일 새벽 4시 한상균을 비롯한 해고 노동자 세 명은 15만 볼트 전류가 흐르는 30미터 높이의 송전탑에 올랐다. 171일간의 고공농성이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모진 겨울을 앓았다. 그러나 그들의 그리움은 한결 같았다. 

송전탑에 올라간 세 명의 노동자는 문기주 · 복기성 · 한상균이었다. 그들 눈 아래 "청춘을 바친 공장의 전경이 어머니의 치마폭처럼" 펼쳐져 있었다.(163쪽) 

“진짜 희망은요…”

‘슬픔’과 ‘기쁨’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의 일상성은, ‘그’라는 3인칭 단수의 개별성과 만난다. 처음엔 이 책의 제목이 불만이었다. 책 만드는 것을 직업으로 가져서 하는 생각이겠지만, 나라면 제목을 달리 지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책을 다 읽을 즈음에야 저자의 의도에 닿을 수 있었다. 인터뷰에 실린 스물여섯의 노동자들은 모두가 ‘일상’을 빼앗긴 자들이었고, 그들의 일상은 각기 다른 ‘개별’적 의미를 가진 것이었다.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것, 그리고 해고 후 복직 투쟁을 통해 쟁취하려던 것은 바로 누군가의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아들로서, 노동자로서의 지극히 평범하되, 하루하루가 모두 다른 빛깔로 빛나는 일상의 삶이었던 것이다.

해고노동자 문기주는 “내가 자본과 정권에 순종하면서 살면 내 자식들도 순종하고 살아야 하는데, 아무리 순종해도 더 순종해야 하고, 그런 것들 앞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이거 말고 뭐가 더 있겠어?”(174쪽)라고 묻는다. 양형근은 “진짜 희망은요, 자본주의사회에 살지만 자본주의를 경멸할 줄 아는 거예요”(258쪽)라고 말했다. 그들의 호방한 희망 앞에 오늘 나의 절망이 무참하다. 역설적이지만, 그래서 희망할 수 있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