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2008년 6월호)_책 읽어주는 남자
소망, 그 아름다운 힘
최민식, 하성란 지음│샘터│2006
어릴 적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남겨주신 유품, 1976년생 기계식 완전수동 카메라 Pentax MX는, 오늘의 내가 가진 정서, 그리고 세상을 향한 시선과 상당히 많이 닮아 있다. 어린 시절, 그리고 청소년 시절의 가난함과 지난함을, 그래도 나름, 거뜬히 이겨낼 수 있었던 것도, 내게 남겨주신 아버지의 유품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MX를 유실한 뒤 한동안 극심한 우울증을 앓기도 했고, 고등학교 졸업반이던 겨울방학 때 시작했던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통해 맨 처음 구입한 사치품 역시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는 중고 MX이다. 렌즈를 통해 바라본 세상의 리얼리티는 치열하였으나 감당할만한 것이었고, 객관적 슬픔 너머 따뜻한 관조적 시선도 가질 수 있었다.
카메라를, 사진을 좋아한다는 것과 사진을 잘 찍는다는 것은 다른 말이다. 난 전자에 가깝고, 사실 사진을 잘 찍지 못하여 스스로 좌절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좌절에 머물지 않고 렌즈로, 카메라 앵글 속에 사람을, 세상을 담아내는 것을 이토록 좋아하는 것은, 최민식에게 빚진 바 크다.
1928년 북녘 땅 황해도에서 태어난 그는, 리얼리즘 사진 작가로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작품성을 인정받아 영국의 Photography Year Book에 사진이 수록되고 ‘스타 사진가’로 선정되기도 했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늘 고독한 작업에 천작할 수 밖에 없는 비주류 사진가였다. 평생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열정적으로 렌즈에 담아낸 까닭이다. 독재 정권 시절에는 극빈층을 너무나 선명하게 묘사했다는 이유로 작품들을 압수당하기도 했다.
그의 사진들에서는 '포즈'가 보이지 않는다. 치열한 삶의 현장을 두 어깨 들썩이며 살아가는 땀내나는 사람들의 적나라한 모습이 그대로 담긴다. 때로 처절하고 참혹한 풍경이, 때로는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잠든 아이가 담겨진 쓸쓸한 풍경은, 사진을 읽어내는 우리 가슴을 아프게 한다. 최민식은 이렇게 말했다.
“가난과 불평등 그리고 소외의 현장을 담은 내 사진은 ‘배부른 자의 장식적 소유물’이 되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합니다. 가난하고 누추한 삶의 진실을 사랑하는 나는 호화주택에서 사치스럽게 생활하는 졸부들에 비해 가난한 서민의 진실이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는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치열한 리얼리티, 그 현장을 정직하게 담아낸 이 사진집에 소설가 하성란이 글을 입혔다. 치열한 가난, 치열한 생존에의 본능이 가지런히 담긴 흑백 사진들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기를 기다렸다, 고 하성란은 말한다. 그런 까닭에, 하성란의 글은 최민식의 사진에 대한 단순한 해설이 아니라, 사진 속 풍경 혹은 사람이 전하는 세밀하면서도 명민한 언어로 덧붙여졌다. 그런 까닭에 자칫 아득한 절망으로 오해 받을지도 모를 사진들이 합당한 이름, <소망, 그 아름다운 힘>이라는 책으로 만들어졌다.
“거뜬히 한 세월 재주 넘어 건너뛸 수도 있지만 견디며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씨앗들 속에 아이도 씨앗처럼 누워있습니다. 뚜껑을 들썩이고 쉭쉭 김 내뿜으며 희망은 부풀어오릅니다. 돌아보면 햇빛 아래 속을 꽉 채운 우리의 삶이 익어 갑니다. 깊어집니다.”(‘기도, 속을 꽉 채운 우리의 삶’ 중에서)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최민식, 조은,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샘터, 2001)
최민식 외, <WOMAN>(샘터, 2005)
최민식, <사진이란 무엇인가>(현문서가,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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