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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형의 서재는 "예지가 살아갈 세상"이다 (대학가, 100621)

Soli_ 2010. 6. 21. 23:54

대학가 2010년 7-8월호 인터뷰



김진형의 서재는 

"예지가 살아갈 세상"이다




김진형에게 서재는? 

저에게 책은, 저의 꿈이 자라가는 터, 또는 길 같은 것이죠. 가난했던 십대엔 힘들 때 숨어버리는 도피처이기도 했고, 성공을 꿈꾸며 책을 무섭게 읽기도 하였고, 예수님을 영접했던 스무 살 무렵부턴, 저에게 주어진 부르심을 고민하며 책을 읽었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가슴에 무엇을 품고 살아야 하는가?”, “내 존재를 걸고 지켜야 하는 가치는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답하던 긴 여정, 저에게 책 읽기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마 서른 무렵, 큰 좌절에 빠졌을 때가 있었어요. 사람에 대한 회의, 오랫동안 꿈꿔왔던 계획의 좌절, 세상에 대한 깊은 절망 등. 참 힘겨웠던 시절, 잠시 책을 놓았던 적도 있어요. 꿈을 상실하니 책 읽기도 힘겨웠죠. 그러다가 문득, 꿈이라는 것, 성경에서 말씀하는 너무나 이상적인 그분의 비전(예를 들어 마태복음 5장 팔복부터 시작되는 천국, 하나님나라에의 비전) 속에, 저의 삶은 또 하나의 작은 여정으로서 나름의(그러나 매우 중요한!) 가치가 있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죠(유진 피터슨은 마태복음 5장 4절을 이렇게 번역했어요.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다고 느끼는 너희는 복이 있다. 그때에야 너희는 가장 소중한 분의 품에 안길 수 있다”). 즉 세상은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럼에도 나의 꿈은 조금씩 자라고 있다는 것, 실현되고 있다는 것을 이제는 믿어요. 저의 첫째 아이 이름이 예지인데요. 예지는 저의 또 다른 꿈이죠. 예지가 살아갈 세상을 위해, 좀더 책을 열심히 읽어요. 예지가 살아갈 세상은, 지금보다 조금 더 하나님 나라와 닮아있으면 좋겠어요. 예지의 대한민국은 지금보다 조금 더 정의로운 나라로 성숙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책을 읽으며, 용기를 내어 더욱 굳세게 세상과 맞서려고 하죠. 그런 면에서, 현재 저의 서재는, 예지가 살아갈 세상입니다. 예지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이 좀더 아름다워지기 위해 분투하는 곳입니다. 


책과 사랑에 빠진 날

첫 번째 기억은, 중학교 2학년 무렵이었어요. 당시 담임 선생님이 분기별로 내던 등록금을 기한 내에 내지 못한 학생들을 방과 후 청소를 시켰어요. 아주 어렸을 적 아버지를 잃었기에, 저희 집은 상당히 가난했었죠. 자존심이 많이 상했어요. 반지하, 벽에 푸른 곰팡이가 피던 집의 작은 방 한 모퉁이엔 아버지가 즐겨 있으셨다는 세계문학전집이 박스 채 있었는데, 저의 피난처가 되었어요. 30권짜리였는데, 고등학생이 되기까지 전질을 세 네 번은 족히 읽은 것 같아요. 두려워서 도망친 곳이 책, 문학이었는데, 그곳에서 저의 가슴이 많이 치유 받았죠. 자칫, 스스로의 삶을 포기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책은 저에게 문학적 감수성과 인문학적 이상을 갖게 해주었죠.  

두 번째 기억은, 대학생 시절이었답니다. 여전히 가난한 대학생이어서, 책 살 돈은 없고 해서, 학교 도서관에 파묻혀 살았던 것 같아요. 아브라함 혜셀의 <예언자들>(당시 종로서적에서 출간, 현재는 삼인출판사에서 다시 출간함)이란 책을 읽었던 95년도 여름을 기억하는데, 무언가 저의 존재를 사로잡던 그 무엇, 하나님의 파토스적 열정 같은 것이 있었어요. 도서관 한 모퉁이에서 그 책을 읽고 또 읽던 기억이 나네요. 파스칼의 <팡세>도 너무 재밌게 읽었고, 완역본을 노트에 적어 옮겼던 기억이 있어요.


김진형의 독서법은? 

나에게 주어진 시간에 비해 읽어야 할 책은 너무 많기 때문에, 정독, 속독, 다독, 느리게 읽기 등을 적절하게 구사하는 독서의 전략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런 독서의 전략은 사실 처음부터 제대로 구사되지 않아요. 일단 어느 정도의 독서가 경험되면 그 다음에야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죠. 물론 모티어 애들러의 <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멘토) 같은 책을 먼저 읽어보시면 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읽고 싶은 책과 읽어야 하는 책 사이의 균형도 지키려고 노력해요. 예를 들어, IVP 신간을 두 세 권 읽으면 꼭 신경숙이나 폴 오스터 같은 작가들의 소설이나 문태준의 시를 읽으며 쉬어야 해요.(^^)  


나와 맞닿아 있는 작가, 내 인생의 책은? 

제 자신의 프로필을 늘 이렇게 씁니다. “로이드 존스를 읽으며 회심하였고 아브라함 J. 헤셀을 읽으며 인생을 고민하기 시작하였고 C. S. 루이스와 프레드릭 뷰크너를 읽으며 깊은 안식을 경험하였다”. 이분들은 저의 삶 고비마다 때론 친구가, 때론 스승이 되어주었죠. 제 인생의 책으로는 혜셀의 <예언자들>(삼인), 도스또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열린책들), 서준식의 <서준식 옥중서한>(노사과연), 그리고 김수영 시인의 <김수영 전집1-시>(민음사)를 꼽고 싶어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 진정한 자유는 무엇이며, 나의 신앙적 이상, 절대 가치는 무엇인지, 무엇 때문에 세상과 싸워야 하고 분노해야 하는지를 알게 해주었던 고마운 책들입니다.   


IVP와의 만남

사실 IVP도 도피처 비슷한 곳이었답니다. 신대원을 다녔고 교육전도사 사역을 했었어요. 신대원은 한 학기 만에, 전도사 사역은 2년 만에 그만두었죠. 신대원을 다니는 단 하나의 이유가 부르심 때문이 아니라, 목사라는 라이센스를 따기 위해서, 혹은 강단에 서기 위한 세속적 성공에의 수단으로, 혹은 생존에의 수단으로 전락한 것은 아닌가 하는 깊은 회의감에 빠졌었죠. 신대원을 휴학하고 ‘그토록 좋아했던 출판사’였던 IVP에서 일년 정도, 잠시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했었는데, 결국 이곳에서 ‘목사가 아니 되는 소명’을 확인하게 되었죠. 이곳에서, 책에 빚졌던 것을 열심히 갚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방학 동안 스승을 얻기를 권함,

혹은 ‘나만의 도서목록’을 만들기 권함

저는 비교적 대학생활을 아주 오랫동안 한 장(長)학생인데요. 방학 중 책 읽기를 통해, 제 인생의 스승을 한 명씩 한 명씩 얻었던 것 같아요. 앞서 말한 아브라함 혜셀(예전 종로서적에서 출간한 전집이 삼인, 한국기독교연구소, 복있는사람 등에서 재출간하고 있음), 마틴 로이드 존스(로마서 강해, 에베소서 강해 등), 존 스토트(<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비롯한 IVP에서 출간한 그의 주요 저작들), 함석헌(한길사에서 출간한 함석한 저작집), 김교신(부키에서 출간한 김교신 전집), 리영희(한길사에서 출간한 리영희 저작집), 도스또예프스키(열린책들에서 출간한 도스또예프스키 전집) 같은 이들은 긴 호흡을 갖고 받아들여야 할 분들이지요. 책을 읽은 만큼 자신을 되돌아보아야, 제대로 된 책 읽기겠지요. 그런 면에서 이들과 만나기엔, 방학이 적기입니다. 이번 방학에 이런 거장들을 한 명씩 선택하여 그 큰 산을 경험해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한가지 더 권하기는, 방학 중 나만의 도서목록(Bibliography)를 만드는 겁니다. 사실 작년부터 IVP가 출간하여 무료로 배포하고 있는 <청년도록>(구 <스타벅스 세대를 위한 도서목록>)과 같은 주제별 추천도서 목록은 그런 맥락에서 시작한 것이랍니다. 나만의 주제별 도서목록에, 내가 읽어야 할 주제들, 읽고 싶은 주제들로 분류표를 만들고 각 주제별로, 읽고 싶은 책, 읽은 책, 추천 받은 책 등을 적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각 책에 간단한 나만의 ‘첨주’를 다는 것이지요. 이런 나만의 도서목록은 차츰차츰 시간을 두고 만들어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계속 업데이트하고, 읽은 책들은 첨주를 달아 나만의 흔적을 새기는 것이지요. 나중에 큰 재산이 될 겁니다. 


추천 책 목록

우선 올해 봄, IVP에서 펴낸 <청년도록>을 권합니다. 이 목록을 기획했을 당시, 목록의 초안을 제가 작성했었기 때문에, 제가 추천하고 싶은 대다수의 책이 들어있습니다. 여기에 없는 책 몇 가지만 더 언급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언자들>(아브라함 혜셀, 삼인)

<서준식 옥중서간>(서준식, 노사과연)

김수영 전집(전 2권, 민음사)

함석헌 저작집(전 30권, 한길사)

김교신 전집(전 7권, 부키)

도스또예프스키 전집(전 18권, 열린책들)

IVP 모던 클래식스 시리즈(전 10권, IVP)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