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_/대학가_

망각, 망실, 혹은 망명을 향한 무의식적 매혹 혹은 근원적 갈망

Soli_ 2009. 11. 16. 03:37


아마 "여행"과 관련된 서평을 써달라고 요청이 왔을 것입니다. 고민 없이 김연수와 제임스 휴스턴을 골랐습니다. 두 작가 모두 제가 흠모하는 이들이었죠. 그래서 글도 즐겁게 썼습니다. 다만, 원고를 받은 편집인이 제목이 좀 난해하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읽어보니, 내용도 좀 그렇네요. 보통, 마음이 많이 들어간 글이 종종 일반 독자들에겐 난해하게 읽힙니다. 독자를 위한 글이 아니라, 제 자신을 위한 글인 까닭이죠. 아무튼, 글을 썼던 당시엔 도통 바빠서 여행을 떠날 수 없는 아쉬움이 있었는데, 지금은 자유로운데 도리어 밥벌이에 대한 불안감으로 쉬이 떠나지 못하는 제 자신을 봅니다. 느닷없이, 여행을 떠나고픈 간절함에 잠못 이루는 새벽입니다. 2013/01/17 04:33




소리(2009년 12월호)


망각, 망실, 혹은 망명을 향한 무의식적 매혹 혹은 근원적 갈망


여행할 권리 (김연수, 창비, 2008)

즐거운 망명자(제임스 휴스턴, IVP, 2009)


김진형│IVP 간사, 문서사역부 부장



공항을 찾아가는 까닭은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 아닐까?(289) 김연수는 이렇게 부연한다. 여행은 망각, 망실, 혹은 망명을 향한 무의식적 매혹을 실천하는 행위라고. 여기에 머물던 나의 존재와 다른 존재가 되고자 떠나, 도착했던 모든 여행지, 그곳의 시간들은 지금, 이곳에 되돌아온 나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가. 그 간극은 어찌할 것인가. 김연수는 다시 이렇게 답한다.     


물론 타지를 떠돌 때였다. 그럼 집에 있는 이 사람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면, 그는 영원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조만간 그는 다시 공항을 찾아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질문하고, 그리고 그 질문의 해답을 찾아 여행할 수 있을 뿐이다.”(290)


작년 겨울이 시작될 무렵부터 읽기 시작한 김연수의 소설과 에세이들. 결코 만만치 않았던 지난 일년간의 고독에 그의 글들은 좋은 벗이 되어 주었다. 외로움에 벗하기 좋은 문장을 가진 작가 김연수. 아주 오래 전 가슴에 담겨있었던 것 같은, 잊혀질 뻔 하였던 이야기들을 다시 꺼내어 반짝거리는 추억으로 만들어 주는 매력적인 작가 김연수. 


때로 외로움이 부끄러워 숨길 때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 사람들이 있고, 늘 곁에서 말씀하시는 그분이 계신 까닭이다. 새벽에 내리는 빗소리에 가슴이 먹먹해지던 오늘 같은 날이면 더욱 그러하다. 아마 지금보다 내가 책임져야 할 것들이 조금만 더 적었더라도, 난 김연수처럼 곧잘 떠났을 것이다. ‘우리는 질문하고, 여행할 수 있을 뿐’. 그러나 결국 떠날 수 없는 나의 현실에 여행은 하나의 갈망이 되고, 대신 김연수의 여행 에세이 <여행할 권리>(창비, 2008)를 찾아 펼친다. 


작가는 1999년 도쿄부터 2007년 버클리까지,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던 자신의 소소한 사연과 경험을 들려준다. 그의 시선을 따라 펼쳐지는 여러 나라에 존재하는, 갖가지 삶의 모양새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움이 가득하다. 여느 여행기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으나, 그의 글에는 돋보이는 여행지의 풍경 이전에, 사람다움, 그것도 여느 보편적 존재들의 솔직한 갈망이 서려있다. 작가가 말하는 국경은 마음만 먹으면 걸어서 넘을 수 있는 선이다. 그래서 그는 아무리 멀리 가도 세상은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128)고 적고 있다. 결국 그가 찾아 나선 것은, 나란 존재가 가슴 속 간직하고 있는 오랜 열망과 다름 아니다. 망각, 망실, 혹은 망명을 향한 무의식적 매혹, 말이다. 


망각(忘却), 어떤 것을 잊어버림. 망실(忘失), 어떤 것을 잃어버림. 

망명(亡命), 본향을 떠나 새로운 나라에 속해 살아감. 


앞선 두 단어에 대한 설명이 국어사전적이라면, 마지막 단어에 대한 설명은 서른 너머 만난 스승, 제임스 휴스턴, 그리고 성경에서 빌려온 것이다. 김연수가 여행을 망각, 망실, 혹은 망명에 대한 무의식적 매혹으로 정의한 것에 대해, 난 대체로 동의하는 편이다. 그곳이 국외이건, 국내이건 상관없다. 절경을 품은 곳이건, 사람내음 가득한 곳이건. 다만 그곳을 향해 길을 나서는 나의 마음엔, 그 무언가를 향한 절실함이 있다. 그 절실함은, 내가 태생적으로 가슴에 간직한 절대적 결핍, 고독이기도 하다. 잊어버린 것, 잃어버린 것을 찾아 길을 나서는 것이다. ‘질문하고, 여행할 수 있을 뿐’, 내가 할 수 있는 그것뿐이다. 그러나 제임스 휴스턴에게서 조금 다른 희망을 보기도 한다. 


서른이 넘어서야 제임스 휴스턴을 만났다. 몇 권 번역되지 않은 그의 책들에서, 오래되었지만 낯선 희망을 보았고, 이후 근원적 그리움과 열망을 조금씩 키워내고 있다. 이번에 나온 신간, <즐거운 망명자>2006년에 쓰여진, 이제 여든이 넘은 휴스턴의 사상이 오롯이 담긴 역작이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종말론적 기쁨이다. 이 지상에서 우리는 영원한 기쁨과 암시와 그림자를 얻는다. 그것으로도 마음이 들뜨지만, 우리가 지상에 속한 존재하는 사실에 만족할 수는 없다. 우리는 하늘에 속한 운명을 타고 났다. 기쁨은 새로운 존재 방식, 즉 자기 희생의 방식이다. 영원한 것을 향해 눈을 들고 이 세상의 것들 너머를 보며, 그분을 위해 고난을 기쁨으로 감수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다.”(27)


물론 본서는 여행을 다루고 있지 않다. 다만 김연수에게서, 이곳을 떠남으로써, 현실을 벗어남으로써, 현실에 안주하는 나의 존재를 벗어남으로써 근원적 갈망(김연수는 이것을 무의식적 매혹이라 표현한다)을 찾아 나서는 여행자를 본다면, 휴스턴은 그 갈망 저편에 존재하는 근원적 부르심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즉 김연수는 갈망을 말하고 있으며, 휴스턴은 부르심을 말하고 있다. 김연수는 다른 존재가 되고자 하는 열망에 충실하려 하고 있으나, 휴스턴은 우리 존재의 본연의 모습을 더욱 애써 찾고자 한다. 어쩌면 김연수가 던진, ‘겨우 이것뿐인가?’라고 질문하고 새로운 세계를 찾아 여행할 권리는, 결국 휴스턴이 변증해내고 있는 그 부르심 앞에 압도당할 것이다. 허나 그 부르심 역시, 우리를 디아스포라적 존재로 세상 곳곳을 누비는 여행자로 거듭나게 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에겐 언제나 떠날 의무와 여행할 권리가 주어져 있다. 적어도 나의 삶이 그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