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_

주일, 남자의 자리

Soli_ 2012. 7. 29. 23:25

아침부터 몸은 곤했고, 마음은 불편했다. 교회 갈 준비하느라 부산한 아내에게 괜한 트집을 잡으며 투덜거렸다. 교회가 뭘까. 무너진 관계와 마음들은 애써 무시한채, 신학적 담론만 제시하고, 헌신만 요구하면 될까. 온갖 위선은 우리 안에 난무하지만, 그냥 모른척 넘어가면 되는 걸까. 그리고 남자의 자리는 도대체 있는걸까. 남자의 각성을 농담반 진담반 요구하는 한 집사님에게 기꺼이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오후 늦게 한숨 자고 나서야, 저녁이 되어서야 마음이 좀 풀렸다. 소란스런 아이들의 소리가 다시 정겨웠고, 저녁 식사를 준비하며 세심히 남편의 마음을 살피는 아내의 마음에 죄책감이 들었다. 어서 가서 일하라는 아내의 만류에도, 꿋꿋이 설겆이를 하고, 아이들을 씻기고 집을 나섰지만, 그 죄책감은 여전하다. 아내가 화를 내야 마땅한데, 적반하장이었다. 개인적 모라토리움을 선언하고 장렬히 전사할까 잠시 망설였지만, 내일까지 내야하는 보고서를 쓰러 결국 사무실에 왔다. 


헨슬러가 녹음한 바흐 칸타타를 크게 틀었다. 바흐가 나의 마음을 다독인다. 은혜는 그제서야 내 가슴에 스민다. 주일이 그렇게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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