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_/책_

호모북커스에서 추천한 올해의 책 5

Soli_ 2013. 12. 16. 23:52

호모북커스에서 추천한 올해의 책 5


지난 토요일 <호모북커스> 송년 모임에 패널로 참여했습니다. '올해의 책'을 선정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 총 10권의 책을 추천했고 그중 5권의 책을 소개했죠(5권은 주최측에서 골랐고, 나머지 5권은... 비밀!ㅋ). 제가 소개한 5권의 책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안희경 지음오마이북 펴냄)


인터뷰어 안희경은 한국인의 지평에서 민주주의, 정치, 사회, 교육, 환경생태, 여성의 문제를 질문하고, 인터뷰이였던 세계의 석학들은 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자본의 세계화, 신자유주의의 광풍에 맞서 지켜내던 공동선(共同善)의 가치에 대해 답변하였다. 그리고 그 두 지평이 만나는 지점에, 하나의 생각이 온갖 난해한 절망을 딛고 다시금 희망을 추동한다.

2013년 첫번째로 읽었던 책이며, 나의 2013년을 가득 채운 책이다. 이 책을 읽던 겨울은 대선에서 내가 지지했던 진영이 패배한 절망감과 더불어 10년 일했던 직장을 떠난 직후의 회의감에 몹시 힘들었던 시간들이었다. 이 책은 그런 나에게, 희망의 단서를 제공해 주었다. 세계의 석학들은, 정치적 역학구도 따위로 희망의 가능성을 가늠하지 않았다. 그들은 세계의 민중들, 그들의 결기어린 희망, 그 거대한 흐름에 주목하되, 그 시작은 나의 삶의 영역에서, 나란 존재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다나 시바는 온 세상이 하나로 연결된 유기체임을 강조하였다. 온 세상이 연결되어 있기에, 결국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꿀 것이다. 로버트 서먼은 세상을 바꾸는 주체는 정치인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라는 자각이 필요하다고 거듭 역설했다. 

"우리가 다시 시작해야 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같은 것을 바란다는 그 본심을 이해하려 시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차이가 생기는 현실의 원인을 진단하며 연대를 확대해야 한다. 세계의 석학들은 생존 가능한 사회, 억압 없는 사회를 만드는 답을 한국인이 이미 알고 있다고 했다."(12쪽) 



인간과 말 (막스 피카르트 지음배수아 옮김봄날의 책)

태초에 말이 있었다. 말은 관계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몸짓이나 생식기의 가능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말은 소리가 아니다. 말은 존재의 시작과 더불어 주어진 운명이며, 존재가 이루어야 할 숙명이다. 신은 우리에게 말을 주었다. 피카르트는 '침묵'에 이어 '말'의 본질을 수려한 문장으로 추적한다. 그의 사색은 우아하고 탐스럽다. 추락한 말의 본질이 회복되었을 때, 우린 찬란한 희망을 목도한다.

피카르트의 대표작 <침묵의 세계>를 꼭 읽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책을 더불어 읽어야 한다. 침묵이 근원적이되 능동적이고 독자적인 성찰의 공간이었다면, 말은 존재의 성숙과 완성을 도모하는 수련의 과정으로 제시된다. 시적 운율로 충만한 피카르트의 문장을 배수아가 아름답게 번역했다. 

"말을 위해서는 하나의 행동이 불가피했다. 하나의 행동을 침묵으로부터 꺼내와야만 했다." "말은 전적으로, 온전히 진실이어야만 했다. 말은 진실을 통해서만 그림에 맞서서 최초의 현존을 획득할 수 있었다.”(206쪽)

사랑은 왜 아픈가_사랑의 사회학 (에바 일루즈 지음김희상 옮김돌베개)

사랑은 우리 존재를 사로잡는 거의 유일한 서사다. 내 존재가 들썩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아프지 않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그런데 그 서사를 자본주의에 잠식당하기 시작했다. 계급과 자본의 논리는, 오늘 우리의 사랑에 값을 매기고 수치화한다. 

에바 일루즈는 감정사회학의 대가다. 그는 오늘날 사랑이 심리학적 해석의 대상으로, 나아가 치유의 대상으로 다루어지는 것을 아쉬워 한다. 사랑의 파트너를 고르는 하나의 시장의 생성되었다. 학벌과 재산, 성적 매력 따위로 권력의 서열을 줄세우는 사랑은, 언제나 아프다. 사랑은 스스로에게, 둘에게만 매몰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존재의 확장이어야 한다. 오늘날, 사랑이 아프다. 그 아픔을 추적하면, 병든 세상이 보인다. 사랑은 우리 존재를 사로잡는 거의 유일한 서사이기 때문이다. 

"이성애의 낭만적 사랑은 20세기에 일어난 두 가지 가장 중요한 문화적 혁명을 포괄한다. 하나는 생활방식의 철저한 개인주의화이며,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자신의 감정을 가장 우선시하는 태도다. 다른 하나는 사회관계의 경제화로 자아와 심지어 그 감정을 꾸미는 일까지 경제모델이 장악했음을 뜻한다... 이는 자본주의 문화의 문법이 권력을 가지고 이성애라는 낭만적 관계의 영역으로 침투해 장악한 결과다."(25쪽)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한윤형 지음어크로스 펴냄)


한윤형은 스스로를 '잉여'로 규정한다. 잉여는 과잉의 산물이다. '소수의 인간이 관료 조직과 자동화 기계를 붙들고 화석 연료를 펑펑 쓰며 너무 많은 물건을 생산하자, 그 공정에 참여하지 못하는 인간 대부분이 잉여가' 되었고, 그들은 '아무리 열심히 버둥거려도 더 나은 삶을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자의식을 가졌다.

'잉여 세대'를 둘러싼 세대론 논쟁에서 정작 청년들은 논의의 주체에서 제외되어 있으나(또는 그들 스스로 무관심했거나), 그 세대론이 유통되고 인용되는 과정에서 당사자인 청년들은 어떤 사회적 문제나 정치적 패배의 책임을 추궁당하곤 했다(예를 들면, 김용민의 "20대 개새끼론"). 그런 면에서 대부분의 세대론은 공허하거나 부당하다. 결국 세대론의 핵심은 미래를 담보할 수 없는, 혹은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한국 자본주의의 실패와 직결된다. 그리고 저자의 안타까움은 '88만 원 세대'와 '쌍용자동차 투쟁'이 만나지 못한 그 막막한 현실을 주목한다.

"88만 원 세대가 쌍용자동차 투쟁과 만나지 못한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쌍용의 노동자들이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애저녁에 포기한 것을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용 안전을 보장받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라는 것은 젊은이들의 상상 속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166쪽)

청년 세대론에 대한 당사자 반론이 담긴 '2부'를 곱씹어 소화한 후에, '1부'에 담긴 저자 한윤형의 처연한 잉여 인생론과 사적 비망록을 읽어내길 바란다. 이 과정에서 '공감'에 이를 수 있다면, '3부'를 통해 그 '희망'에도 닿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태어나다_수전 손택의 일기와 노트 1947-1963 (수전 손택 지음김선형 옮김이후 펴냄)

수전 손택(1933-2004)은 소설가이자 에세이 작가였고 예술 평론가였다. 그녀는 '예술에 온 정신이 팔린 심미가'이자 '열렬한 실천가'로 불리길 원했다. 서른세 살에 출간한 평론 모음집 <해석에 반대한다>는 당대 지성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손택은 "해석은 지식인이 예술과 세계에 대해 가하는 복수다"라고 도발했다. 또한 그녀는 언제나 지배 권력의 불의에 맞서 '용기와 저항'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고, 평생 그렇게 살았다. 

손택을 아직 읽지 않았다면 가장 먼저 <타인의 고통>을, 그리고 <해석에 반대한다>와 <문학은 자유다>를 읽기 바란다. 다시 말하지만, 이 책 <다시 태어나다>은 손택 입문서로는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다. 손택을 충분히 읽었다면, 이 책을 참으로 좋아하게 될 것이다. 일기 3부작 중 첫번째 책으로, 이 책은 14살부터 30살까지 손택의 민낯을 보여준다. 성적 정체성에 대한 성찰과 방황, 그리고 지적 열망 사이에서 끊임없이 전진하는 과정이 오롯이 담겨 있다.    

"젊음의 한가운데서 갑자기 삶의 번민, 절박을 깨닫는다는 것은 무엇일까?”(17쪽) "늙어간다는 두려움은 지금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다는 인식에서 탄생한다. 그건 현재를 오용하고 있다는 인식과 상응한다."(374쪽)



ps. 원래는 이 책을 가장 먼저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아무도 펼쳐 보지 않은 책 (그림책사람들 지음|오정택 그림|한솔수북)

숲 속에 책 한 권이 놓여 있다. 바람이 후루룩 지나 가니 책이 펼쳐 진다. 토끼, 멧돼지, 곰, 호랑이, 다람쥐가 차례대로 책을 밟고 지나간다. 다시 바람이 불고 책이 닫힌다. 그리고 한 소녀가 다가와 책을 집어 읽는다. 춤을 춘다. 아이가 엄마 손에 이끌려 떠난 자리에서 이번엔 동물들이 책을 펼쳐 읽기 시작한다. 모두 행복한 표정들이다. 책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었을까. ‘아무도 펼쳐 보지 않은 책’은 오직 읽는 이들에 의해 생명을 갖는다. 선택되어 읽혀진 어떤 책은 아이의 꿈이 되기도 하고, 동물들의 기쁨이 되기도 한다. 세상엔 ‘아무도 펼쳐 보지 않은 책’과 ‘내가 읽은 한 권의 책’이 있다. 책은, 읽는 이들에게만 유효한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