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_/오마이뉴스_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 아직도 불안하다면 이 책을! (오마이뉴스, 130429)

Soli_ 2013. 4. 29. 17:17

<반디 & View 어워드> 선정작_2013년 5월 
오마이뉴스에 26번째로 기고한 글이며, "공부만 외치는 당신, 어리석은 부모입니다"란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 아직도 불안하다면 이 책을!
[서평] <학원 없이 살기_아직도 불안한 부모를 위한 노워리 프로젝트>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노워리 상담넷 지음│비아북 펴냄│2013년 4월)


우리 첫째 아이는 일곱 살, 둘때 아이는 네 살이다. 흔히 말하는 '미운 네살, 죽이고 싶은 일곱 살'이다. 특히 첫째는 딸인데 사사건건 엄마와 대립한다. 유치원에선 '바른생활 아이'로 통하는데, 집에서는 세침떼기와 왈가닥스런 극단을 수없이 오간다. 끊임없이 묻고 의심한다. 엄마가 뭐라 그러면 딸은 "아닌데, 선생님은 그렇게 얘기 안 했는데?"라며 엄마의 신경을 돋군다. 엄마의 권위는 유치원 선생님의 권위에 무시당하기 일쑤다. 엄마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느 날 아내가 집안에 우체통을 달았다. 그리고 딸을 불러, 우리 이제 편지로 종종 대화하자고 초청했다. 엄마에게 편지를 쓰면, 아침 우체통엔 엄마의 답장이 담겨 있다. 엄마가 여행가던 날도 그랬다. 엄마의 편지를 읽은 딸은, 엄마가 돌아오는 날에 맞춰 답장을 썼다. 그 뒤로, 둘은 속깊은 대화까지 나누기 시작했다.


부모력의 핵심은 아이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능력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부설 '행복한공부연구소'의 박재원 소장은 부모력의 핵심은 아이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능력이라고 강조한다. 기성세대는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 성장하고 내면화하였기 때문에, 자녀와 수평적 관계를 이루는 것이 유독 힘들다고 진단한다. 한국의 부모들은 유난히 '화'라는 감정을, 특히 자녀들에게 아무런 거리낌 없이 표출했던 사회적 습관에 젖어 있다는 것이다.

박재원 소장은 그런 부모들에게 글로 써서 마음을 전하는 '메모 소통법'을 권한다. 아이와 마주하는 순식간에 일어나는 부정적 감정을 조절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란다.

화를 참거나 아이 이야기를 경청하려고 노력하기 전에 부모로서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고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해야 합니다. 가장 쉽고 효과도 탁월한 방법은 바로 메모를 통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전달하는 것입니다.(<학원 없이 살기>, 49쪽)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존중받는다'는 느낌이다. 아이는 부모가 자신을 이해하고 믿어줄 때 학습동기를 갖게 된다. 그리고 학습동기는 자기주도학습의 가장 중요한 힘이 된다. 거기서부터 아이와 부모가 다같이 행복한 교육의 가능성이 열린다.

No Worry, Be Happy!

2008년, 입시와 사교육 고통 없는 세상을 만드는 대중운동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하 '사교육걱정')이 출범했다. 학부모, 교사, 학생간의 연대를 통해, 무익한 사교육 경쟁의 위선과 과장을 폭로하고, 무한 경쟁이 아닌 적성과 소질에 따라 자신의 존엄을 지켜나가는 건강한 사회 실현을 목표로, 선행교육금지법 제정 등의 당찬 운동을 펼치고 있다.

'사교육걱정'은 학원권력과도 맞짱 뜨며 선전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옆집 엄마에게 흔들리지 않는 내공을 기르도록 돕는 '등대지기학교'와 우리나라 최초의 사교육 관련 온라인 상담소인 '노워리 상담넷'을 운영하며 생산적인 대안 운동에도 뚜렷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2010년 출간된 <아깝다 학원비>를 통해 학부모와 교사들에게 의미 있는 충격과 파문을 일으켰다면, 이번에 출간된 '사교육걱정 노워리 상담넷'이 펴낸 <학원 없이 살기>는 그 실천편이다. 사교육에 의지하지 않는 학습법, 영어, 수학, 독서와 글쓰기, 생활 및 심리, 학교 생활에 이르는 각론을 구체적인 예를 들어 친절하고 세심하게 설명한다.

우리나라의 입시 환경은 변화무쌍하다.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학벌사회는 명문대 입학을 최고의 목표로 설정하고, 이는 우리 아이들이 가질 수 있는 최대치의 행복, 혹은 최소한의 생존 조건인 양 왜곡한다. 끊임없이 '당신의 자녀가 뒤쳐지지 않는지'를 의심하게 만드는 불안 마케팅을 감행하여, 사교육 시장의 팽창을 도모한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핏기 없는 얼굴로 학원가를 전전긍긍한다.

이 책은 '조작된 불안감'의 거짓을 폭로한다. 학원권력의 위선을 파헤치는 것은 어쩌면 쉬울지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정도로 만족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부모를 향해, 그 거짓에 숨어 버리는 부모의 욕망을 파헤친다. 잘못된 정보들로 인해 부모의 진심이 변질되어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진단이다.


무한경쟁을 강요하는 사람들이 사교육이라는 산업에 즐비합니다. 그들의 논리가 바로 '역전은 없다. 성적 부진은 좌절이다. 학벌이 필수다'라는 주장입니다. 정말 그들의 주장에 마음이 흔들린다면 결국 그들 편에 서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부모 마음이 절실하더라도 사교육 논리에 휘말리게 되면 아이를 위한 부모가 아니라 사교육을 위한 부모가 되는 것이 아닐까요?(124쪽)

성적은 좋지 못하지만 자존감이 높은 아이들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반대로 성적은 우수하지만 성적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극심한 우울에 빠지는 아이들이 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성적에만 매달린 아이들의 자존감은 위태롭다. '아이의 자존감은 성적이 아니라 부모의 마음에 달려 있다'고 이 책은 도전한다.

한 사교육 업체는 초등학생에게 고액의 수강료를 받으며 고등학교 수학을 가르치다 적발되었다. 해당 연령을 넘어선 학습은 대개 그 과정에서 '아이다움'을 앗아간다. 세상을 보는 아이의 시선은 경이로 가득해야 하지만, 선행학습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더 이상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질문하지 않는다. 결국 지나친 선행학습은 '수동적인 학습자, 지식의 암기자'를 만들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녀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이 책은 이 질문에 대한 근본적인 학습법을 제시한다. 학습동기를 찾게 해주기 위한 소통법, 예습과 복습의 주기와 시간,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단계별 학습의 핵심 등에 대해 구체적인 상담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또한 영어나 수학 등의 교과목에 대한 조언도 상당히 구체적이다. 예를 들면, 초등학교 고학년 때 중학교 수학은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스토리텔링 수학은 무엇인지, 평상시보다 학교 시험에서 점수가 나오는 5가지 원인과 대안은 무엇인지, 영어 유치원엔 왜 보내면 안 되는지, 초등학교 저학년을 위한 바람직한 영어 노출법은 무엇인지, 예체능 사교육의 문제는 무엇인지, 사고력 수학의 맹점과 바람직한 접근은 무엇인지 등을 다룬다.

이 책을 읽는 세 가지 독법

부모력의 핵심은 공감하는 능력이라고 했는데, 이 책은 이 땅의 부모에게 깊이 공감하고 배려한다.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이, 책을 읽는 내내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공감하는 부모'가 될 수 있을 거란 단단한 희망에 이른다.

당장 열매를 따려는 어리석은 부모가 되지 말아야겠습니다. 불안해할 이유도 사라집니다. 뿌리는 부모의 공감력만큼 강해집니다. 공감력을 발휘하는 데는 경제력도, 정보력도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방해가 되곤 하지요. 공감력을 기르기 위해 노력하는 부모가 아이의 희망이자 대안입니다.(174쪽)

이 책의 미덕은 또한 쉽고 자상하며 친절하다는 점에 있다. 심지어 만화로 그려진 서문은 이 책의 독법 세 가지를 소개한다. 첫째, 전체적으로 살펴보며 공감하는 사례 읽기. 둘째, 마음이 불안하거나 고민이 생겼을 때 관련 사례 읽기. 셋째,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해당 사례 읽기. 나는 이제 기껏 첫 번째 읽기만 수행하며 '공감'만 했을 뿐이다. 내 곁에 이 책을 둘 수 있다는 점은 큰 행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