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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광주', 그들의 노래를 들으라 (오마이뉴스, 130518)

Soli_ 2013. 5. 18. 03:26

<알라딘> 이달의 당선작(리뷰)_2013년 5월

오마이뉴스에 30번째로 기고한 글입니다





'1980년 광주', 그들의 노래를 들으라

[서평]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 (공선옥 지음|창비|2013년 4월)



나는 1995년, 강원도 춘천 102보충대에 입대하여 신병교육대에 배치되었다. 첫날 밤, 내가 속한 내부반 조교는 대뜸 전라도 놈들은 기립하라고 소리치며 머리를 박으라고 했다. 6주 훈련 동안 우리는 수시로 기합을 받았는데, 같은 말이라도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동료들은 조금 더 모질게 당했다. 

제대를 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문득, 전라도 사람들은 경상도 사람들과 달리 서울말을 곧잘 쓰는 것을 발견했다. 언젠가 광주 태생의 선배에게 그 이유를 묻자, 그는 내게 '넌 아직 광주를 모른다'며 웃었다. 쓸쓸한 웃음이었다. 소설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의 주인공 '정애'의 친구 '옥택'은, 서울서 살다 설 명절에 고향집에 들렀는데 친구들이 서울 말투를 흉보자, 그는 이렇게 하소연한다. 

"그것이 그러니깐, 서울서 전라도 말을 쓰거나 전라도 사람이란 것이 밝혀지면 사람들이 다른 눈으로 쳐다보는 거야. 나는 살기 위해 내 고향 말을 버렸던 거라구."(190쪽)

맞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미친 세상에서 미친 사람들의 이야기

공선옥의 소설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는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던 1970년 무렵부터 5·18이 있던 1980년 전후 시대의 숱한 폭력에 스러져간 여성들의 이야기다. 소설은 '1980년 광주'를 공들여 묘사하지 않는다. 다만, 그 전후 광주를 살았던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소설의 주인공은 '정애'와 '묘자'다. 

'정애'의 아버지는 투전판에서 돈을 잃고 일도 잃었다.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이 무서웠던 아버지는, 결국 말 못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남겨두고 돈을 벌러 도시로 떠나야 했다. 아버지가 믿을 만한 사람은 큰딸 '정애' 밖에 없었다. 밑으론 철없는 동생들 '순애'와 '명기', 세살 짜리 막내 '명애'가 있었고, 어머니 뱃속엔 곧 태어날 생명들이 있었다. 

아버지가 떠난 뒤 '정애'는 고달팠다. 각 가호에 일인씩 새마을사업에 차출되어야 했기 때문에, 정애는 시멘트 반죽 함지박을 머리에 매고 날라야했다. 어느 한밤 중 도둑이 들며 헛간 뒤 돌담장을 부수었고, 아버지가 애지중지 하던 돼지는 돌담에 깔려 즉사했다. 곤히 자던 닭들이 지붕 위로, 산 위로 도망쳤다. 동네 이웃 '정샌'이 닭을 몰아 갔고, 새마을이발소 '박샌'이 아버지가 꿔간 보리쌀 한 가마니와 퉁치며 죽은 돼지를 끌고 갔다. 

연쇄점 주인 '김주사'는 동생 '순애'의 성을 유린하고 그 값으로 하드를 줬다. 연쇄점 마당에서 부로꾸 찍는 남자는 '정애'를 강간했다. 그리고 '순애'는 잠만 자고 기력을 잃어갔다. 순애가 '깨구락가치' 죽어갈 때, 아버지가 전보를 받고 돌아왔지만 너무 늦었다. 

결국 '순애'를 땅에 묻은 아버지는 '정샌'을 죽이려 찾은 새마을이발소에서 자신이 먼저 칼에 맞아 죽고만다. 마침 이발을 하러 왔던 '종택'은 아버지를 죽였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끌려갔다. 어머니는 출산을 하다 죽고, 갓 태어난 쌍둥이도 죽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정애'의 집을 이장이 사용하겠다는 조건으로 돈을 쥐어주고, '정애'와 그 식구들을 도시로 쫓아냈다. 5·18이 있기 직전의 일이다. 

가난한 '정애'의 곁에는 오직 옆집 사는 벗 '묘자'의 위로만 있을 뿐이다. '정애'가 광주로 떠나고 할머니와 단둘이 살던 '묘자'는,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엄마의 식당을 찾아갔다. 엄마는 재혼했으나 다시 과부가 되어 있었고, 그곳에서 '묘자'는 5년 전 '5·18 또라이'였던 '박용재'를 만나 결혼한다. '용재'는 '사람들이 많이 죽어나갔던 봄'까지 카센터에서 일했으나, 감옥살이를 하고 출소한 이후 아무도 그를 받아주지 않는다. 그는 사람들이 꺼리는 '폭도'인 까닭이다. 

'용재'와 '묘자'는 가난했고 '용재'는 점점 미쳐갔다. 5년 전 그때, '용재'는 광주시민군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상무대, 교도소, 삼청교육대를 거쳐 검옥에 갇혔다. 그는 삼청교육대 이야기를 꺼낼 때면 온몸이 얼어붙고 딱꾹질을 하곤 했다. 그리고 라일락이 피던 4월이 되면, 군인들에게 이유없이 당했다는 5월이 다가오면 몸살을 앓거나 이상한 소리를 냈다. 


돈을 구하러 시장을 전전하던 '묘자'는 시장 상인들에게 '미친년' 소리를 듣던 '정애'와 마주친다. 광주로 가서 콩나물을 팔던 '정애'는 광주 항쟁이 있던 어느 날 군인들에게 짓밟히고 '미친년'이 되었단다. 

소설은 '정애'와 '묘자'의 삶을 교차시키며 시대의 고통을 추적하고 폭로하고 해명한다. 폭력의 시대를 사는 굶주린 사람들은 무도하고 잔인했다. 그들 모두 약자였지만, 그들보다 약한 이들에겐 더욱 가혹한 폭력을 휘둘렀다. 가장 약한 자들은 우정과 사랑으로 연대했지만, 그들의 연대는 무참히 짓밟혔다. '정애'는 고향집으로 돌아가 아버지를 죽였다는 죄로 옥살이를 한 '종택'과 동거하며 살길을 찾지만 그들의 노력은 무력하고 허무한 최후를 맞이한다. 

희생당한 사람들은 죽거나 미쳐갔다. '정애'도, '묘자'의 신랑도 미쳤다. 미치지 않고선 숨 쉴 수 없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미친 세상에서 미친 사람이 되는 것은 한편 당연하다. '정애'를 찾아온 '박샌댁'은 이렇게 말한다. 


"동네 사람들 다 미쳤지. 나도 미쳤지. 내 속의 이 큰 슬픔을 누구한테 말할까. 미친 세상에서 미치지 않은 사람들은 다 미친 거여. 미친 세상에서 미친 사람만이 미치지 않은 거여. 그래 그런 거여. 정애 자네만이 미치지 않은 사람이여. 올바른 사람이여. 아름다운 사람이여."(198쪽)

'박샌댁'의 목소리였지만, 작가의 진심이었을 것이다. 공선옥은 한 인터뷰에서, 이 소설의 비극적 이야기는 모두 사실이라고 하였다. '정애'도, '묘자'도 이름만 다를 뿐 실존했던 비극이었단다. 비극을 견딜 수 없어, 미친 세상에서 미친 사람이 되었던 이들에게, 작가는 '당신은 올바른 사람이여. 아름다운 사람이여'라고 다독거리고 있는 것이다. 

홀로 울어야 했던 그대, 광주


소설에는 유독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난무한다. 언어 장애를 가진 '정애'의 어머니가 그랬고, 가난에 집을 떠나 도시로 가야했던 아버지의 말이 그러했고, 차츰 미쳐가는 '정애'의 말이 그랬다. '키욱키욱파파라파휴우라!', '수리수리마수리 수수리 사바하', '아바아바사융기샹가바' 그것은 소리였고, 울음이었고, 노래였다. 

"나는 어머니의 진짜 말은 내가 알아먹을 수 없는 말 속에 있는 것같이 여겨졌다. 어머니가 알아먹을 수 있는 말로 하는 말은 가짜인 것만 같았다."(262쪽)

작가 공선옥은 '작가의 말'에서, 그 '알아들 수 없는 말'의 출처를 밝힌다. 작가의 어머니였다. 그리고 어머니의 '알아먹을 수 없는 말'이 '진짜 말'로 느껴졌다고 고백한다('정애 어머니'는 작가 어머니의 슬픈 과거가 반영되었다). 어쩌면 소설 속 그들이 읊조리는 숱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은, 오늘 우리가 외면하는 '진짜 말'인지도 모른다. 작가는 이 소설을 '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들어주는 사람 없어 혼자 울어야 했던 그대, 광주'에게 바친다고 썼다. 


어느 날, '정애'는 사라진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무성한 소문만이 떠돈다. 소설의 마지막 시제는 '지금'이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영암집 주모 묘자'에게 '이 세상 모든 냄새가 나고 또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 정애'가 찾아온다. '정애'의 영혼이었을까. 알 수 없다. 구천을 떠도는 '정애'와 해후한 '묘자'의 슬픔은, 그 시대를 견뎌 지금까지 살아온 이들의 가슴속에 여전한 고통으로 존재한다. 

지독한 슬픔은 '1980년 광주'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던 1970년 무렵에도 있었고, '1980년 광주'를 관통했던 이들의 5년 뒤, 10년 뒤, 그리고 지금까지 계속되는 슬픔이다. 그들의 순정을 짓밟던 폭력은, 오늘 그들의 슬픔을 망각하는 방식으로 재현된다. 


박근혜 정부의 국가보훈처는 '4800만원'짜리 5·18 민주화운동 공식기념곡을 공모하여 "임을 위한 행진곡"을 대체하려고 한다. 도대체 그들의 말을, 그들의 울음을, 그들의 노래를 듣지도, 묻지도, 인정하지도 않는다. 어쩌면 우리도 그렇게 망각의 세월을 순응하며 오늘을 맞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광주의 봄은 오늘도 처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