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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견뎌야만 이를 수 있는 '생존자'의 길 (오마이뉴스, 130502)

Soli_ 2013. 5. 5. 22:00

오마이뉴스에 27번째로 기고한 글이며, "'여성=꽃'? 성폭력 양산하는 그 생각, 집어치우라"는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죽음을 견뎌야만 이를 수 있는 생존자의 길
[서평] 꽃을 던지고 싶다_아동 성폭력 피해자로 산다는 것 
(너울 지음르네상스 펴냄2013년 3월)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여자 '정혜'의 일상은 언뜻 단조롭고 평화로운 듯 보인다. 꽃이 놓인 식탁, 아파트 화단에서 주워온 고양이 한 마리가 노니는 풍경 속에 그녀는 홀로 외롭다. 어린시절 고모부에게 강간당한 '정혜'는 결혼하지만, 신혼여행에서 '첫 섹스'를 묻는 남편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결혼을 끝내고 만다. 고모부를 죽이는 것도 자신을 용납하는 것도, 그녀의 몫이 아니다. 어느 날 그녀에게도 사랑이 다가오지만, 그 사랑이 그녀의 오랜 상처를 다독일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영화 <여자, 정혜>(2005)의 이야기다.


ⓒ LJ 필름


아동 성폭력 피해자로 산다는 것

한 달 넘게 책상에 놓여있던 책 한 권을 다시 폈다. 두려움에 차마 몇 장 못 넘기고 덮은 책이다. 들뜨지 않은 분홍 패랭이꽃 빛깔의 표지, 제목은 <꽃을 던지고 싶다>. '아동 성폭력 피해자로 산다는 것'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하는 것에서부터 치유는 시작된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치유는 폭력 당한 경험을 잊으려는 노력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여성주의 시각으로 재해석할 때 가능하며, 이때 그들은 희생자가 아니라 생존자가 된다"고 썼다.

이 책은 13살 때 성폭행을 당했던 여성이 25년 만에 그것을 기록하면서 시작된다. 그것을 드러내 말하고 기록하는 것 자체가 투쟁이다. 저자는 그 투쟁의 과정을 때로 처참하고 때로 죽고 싶을 만큼 아프게 담아냈다. 피해자가 생존자가 되는 과정은 어쩌면 죽음을 관통해야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열세 살을 살고 있는 서른여덟의 몸을 가진 괴물이 돼 있었지만, 세상은 나의 고통과 치유와 상관없이 변화하고 성장했다. 오직 나만 25년 전에 갇혀 있었다는 사실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본문 62쪽)

저자는 9살, 12살, 13살, 그리고 스무살 언저리 대학생 시절을 걸쳐 수차례 성폭력을 당했다. 엄마가 일하러 가고 방치된 상태에서 얼굴도 모르는 아저씨에게, 삼촌이라는 친족에게, 등굣길에 만난 황토색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아저씨에게, 그리고 대학생이 돼서도 아르바이트하던 곳에서 고용주에게 당한다. 9살 이후, 그녀는 저항할 수 없었다. 그 지독한 두려움은 그녀의 정신까지 짓밟았다.

유독 13살 때의 상처가 가슴에 남았다. 그날의 폭력이, 어느 날 그녀의 꿈속에서 재현됐다. 단순한 꿈 같았으나, 그녀의 삶까지 죽을 것 같은 공포로 지배했다. 불면의 날이 이어졌다. 해마다 3월이 되면 몸은 이유 없이 아팠다. 그녀의 몸은 그 해 4월에 있었던 폭력을 기억했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와 신체화장애(somatizing syndrome)가 반복해서 그녀를 괴롭혔다.

그럼에도 그녀는 용기를 내기 위해 몸부림친다. 한때는 죽으려고도 했다. 삶은 자신의 선택이 아니었지만, 죽음만은 명확하게 자신의 선택이길 바랐다. 그러나 어느 날, 도서관에서 폴 발레리의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라는 글귀를 만나 '나도 살고 싶다'란 희망이 움트기 시작했다. 그녀는 상담소를 찾았고 다른 생존자들과 함께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자조모임'에도 참여했다.

치유는 결코 천사의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괜찮아졌다고 여기는 순간, 지독한 우울증이 예고 없이 그녀를 점령했다. 생존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느 순간 내 몸과 마음이 점령당하는 식민지의 상태'와 같다. 반복되는 일상이며 고통이었다. 평온한 삶은 여전히 그녀의 것이 아니었지만, 그녀는 끝내 절망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녀는 무엇보다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폭력에 맞서고 싶다.

"여성을 꽃으로 비유하면서 꽃을 취하는 행동을 자연의 섭리라고 말하는 세상을 향해 꽃을 던지고 싶다. 꽃이라고 '은유되는 여성'을 던져버리고 싶다. 성폭력 피해를 양산하는, 그리고 성폭력 피해자에게 폭력적인 문화를 향해 꽃을 던지고 싶다."(본문 204~205쪽)

그녀는 아직 투쟁 중이다. 극심한 전투 끝에 거둔 잠깐의 승리는 언제 다시 패배의 나락에 떨어질지 모른다. 부디 그녀가 그 투쟁에서 승리하길, 아니 몸과 마음이 더 이상 다치지 않기를 바란다.

아직도 투쟁 중인 '그녀들'을 위해

그녀에게 '아동 성폭력의 경험은 지독한 가난과 같은 그림으로 새겨져 있다'. 모든 피해 여성들이 그렇지는 않지만, 가난과 성폭력의 문제는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고 설명될 필요가 있다. 범죄심리 전문가인 이수정 교수는 "아동 성폭력이 가난한 동네로 옮겨가고 있다"고 말한다. 가난한 아이들이 성폭력에 취약하다는 것은 성폭력이 단순히 성의 문제가 아니라 약자에 대한 폭력의 문제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성폭력 피해 여성들은 사실상 방치돼 있다. 국가는 가해자 처벌에만, 그것도 이슈가 될 때에만 집중한다. 성폭력 피해자에서 '생존자'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인프라가 확보돼야 한다. 치료는 물론, 최소한의 학업도 마쳐야 하고 직업 교육도 받아야 한다. 만만찮은 재정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하지만 국가는 피해 여성들을 돌보는 일을 대부분 여성단체로 떠넘긴다.

그녀의 바람대로, 이 고통스러운 기록이 또 다른 피해자들에게, 특히 아동 성폭력에 희생당한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의 단초가 되면 좋겠다. 책을 읽으며, 그녀처럼 무도한 폭력을 당한, 숱한 피해 여성들이 생각났다. 더 큰 문제는 그 폭력 이후의 삶이다. 처음 겪는, 처음 걷는 생존자의 길. 상상만으로도 아득하고 아찔한 그녀들의 세상, 그리고 삶. 우리는 그녀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영화 <여자, 정혜>를 보고 난 후,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여자였던 '정혜'를 모두가 이해하게 됐던 것처럼, 이 책 <꽃을 던지고 싶다>를 읽은 이들이 '아동 성폭력 피해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섣부른 동정이 아닌, 사려 깊고 진중한 실천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