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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으로 우리의 존엄을 지켜낼 것인가 (오마이뉴스, 130419)

Soli_ 2013. 4. 19. 13:01

오마이뉴스에는 23번째로 기고한 글이며, "민낯 보여주는 포로수용소, 현실과 다르지 않네"라는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무엇으로 우리의 존엄을 지켜낼 것인가
[서평] <산둥 수용소>(랭던 길키 지음|이선숙 옮김|새물결플러스 펴냄|2013)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유태인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랑클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혔다. 동료와 가족들은 분리 수용되었고, 하나둘씩 극심한 폭압 속에 죽어갔다. 프랑클은 하루에 한 컵씩 배급되는 물을 받아 반만 마시고, 나머지 반은 얼굴을 닦았다. 그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는 것에서부터 희망은 시작된다고 믿었다. 언제 가스실로 끌려갈지 모를 위태로운 삶이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끝내 1945년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 남았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유태인 프리모 레비 역시 아우슈비치의 생존자다. 그는 극한의 공포와 마주한 인간 존엄의 몰락을 사실적으로 기록하였다. '그대들은 타고난 본성을 가늠하시오. 짐승으로 살고자 태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덕(德)과 지(智)를 따르기 위함이라오'라는 단테의 <신곡>에 기록된 문장을, 레비는 동료들에게 들려주며 인간다움을 기억하고 간직하려 애썼다. 그리고 마침내 1945년 아우슈비츠으로부터 생환한다.

아우슈비츠, 그리고 산둥 수용소

이 책 <산둥 수용소>의 저자 랭던 길키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중국 산둥 지역의 위현 수용소에 1943년 3월부터 1945년 8월까지 갇혀 있었다. 이 책은 강제 수용소에서 겪은 인간 실존에 대한 회고록이다. 빅터 프랑클과 프리모 레비와 동시대의 비극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랭던 길키의 상황은 훨씬 나았다. 그는 무엇보다 일본군이 함부로 할 수 없는 미국 사람이었고, 일본 군국주의는 그들을 가두었으나 한편으론 보호했다.

일본군은 '육체적인 고문이나 굶주림, 정신적인 고통'을 가하지 않았다. 가두었으나 최소한의 자유를 보장하였다. 포로들은 그들의 대표를 세웠고, 수용소엔 아이들을 위한 학교가 있었고, 어른들을 위한 저녁 강좌가 열렸으며, 소박한 주말 여흥을 위한 프로그램이 운영되었다. 배급에 의존해야 했지만, 포로들 간의 암시장이 형성되어 있었고 본국은 그들에게 용돈을 전달할 수 있었다. 심지어 젊은 포로 간의 로맨스도 있었으니 어떤 면에선 우리나라 군대보다 나았다. 도대체, 이런 수용소라니!

저자는 산둥 수용소가 '거의 일상'에 가까운 '꽤 살만한 곳'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렇다고 수용소가 마냥 살기 좋은 곳이 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중국에서 우월한 생활 조건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더 이상 중국 사람을 하인처럼 부릴 수 없었고, 그들 스스로 노동자가 되어야 했으며, 식사 배급을 받기 위해 40분씩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무엇보다 그들을 가장 힘겹게 한 것은, 각 사람에게 허락된 비좁은 공간이었다. 각 사람에게 '침대로부터 반경 45센치미터'만 허락되었다. 수많은 낯선 타인들 속에서 그들 각자의 정체성은 심각한 위협을 받았으며, 서로를 향한 적대감과 외로움이 교차하는 아슬한 상황 속에 종일 노출되었다.

스무 명의 동거인들 앞에서 정신적으로, 또 때로는 신체적으로 발가벗겨진 채, 낯설고 종종 엿보기를 좋아하는 세계에 둘러싸여 삶의 가장 사적인 순간들을 살아내야 했다. 더 힘든 것은, 자신의 습관을 낯선 타인의 습관에 맞추어 바꿔야 하는 것이었다.(본문 40쪽)

내 은밀한 욕망을 감출 공간이 없을 때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은 위태롭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영토를 사수하고 타인의 영토를 침탈하려는 욕망은 자칫 그들의 동거 자체를 위태롭게 할 수도 있다. 이에 포로들은, 그들에게 필요한 지도자를 세워 최소한의 규범을 만들었다. 그렇게 산둥 수용소는 하나의 문명으로 탄생되고 있었다.

산둥 수용소라는 제한된 공간은, 때로 기존 사회에서의 사회적 위치와 질서를 역전시켰다. 엄청난 부호인 사업가, 선박 회사의 중역, 천진은행 부행장, 교수, 신부와 선교사 등은 마약 중독자 같은 하류 인생들과 좁은 방에서 동거해야 했다. 그리고 기존의 사회적 지위 따위가 아니라 '일하고자 하는 의지, 일하는 기술, 천성적인 쾌활함'을 가진 이들이 훌륭한 인품으로 인정받는 사회가 되었다.

수용소 경험을 통해 우리가 배운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이렇게 사회에서 통용되던 거짓된 가치관을 버리고 공통의 인간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마침내 우리는 이웃 사람을 보면서, 그가 무엇을 소유했는가가 아니라 그가 어떤 인간인지와 관련하여 볼 수 있게 되었다.(본문 51쪽)

인간 본성의 민낯, 그리고 도덕적 딜레마


포로들은 그들의 문명을 개척하고 세워나가는 과정 속에서, 어떤 일정한 성취를 경험한다. 질서가 생기고 생존을 위한 기본적 여건을 하나하나씩 확보하고 확대한다. 하지만 차츰 익숙해져 가는 수용소의 문명은, 인간 실존의 문제 앞에 숱한 딜레마를 겪게 한다. 주도권을 얻기 위한 정치적인 투쟁이 충돌하였고, 숨겨진 욕망이 노골적인 이기심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경건한 트라피스트회 수사였던 다르비 신부는 자신의 신분을 이용하여 계란을 밀수하였다. 암시장의 거래는 이문의 문제로 인해 종종 주먹 다툼을 야기했다. 바깥 세상에서 존경받던 기독교 지도자들의 이기심은 더욱 교활했다. 개인의 욕망은 공정하고 합리적인 정의에는 단호히 맞서면서도 무력을 앞세운 권위엔 곧잘 순종했다.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겨울, 식량 배급은 점점 줄어 들었고 추위는 매서웠다. 그런 와중에 엄청난 양의 적십자 구호품이 수용소로 전달되었다. '모두 14대의 수레'에 '100개 이상의 꾸러미'가 실려 있었다. 1500여 명의 수용소 인원에게 고루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구호품이 미국에서 온 것이라는 것이 밝혀지자 200여 명의 미국 포로들은 그것을 독점하려고 하였다.

배급은 유보되었고, 미국 포로와 다른 나라 포로 간의 갈등은 절정에 향해 치달았다. 미국 포로들은 그들의 몫을 양보하려 들지 않았다. 처음부터 공평하게 배분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경건한 기독교 신자들은 일단 그것을 자신들의 몫으로 취한 후에야 그것을 이웃을 위해 '일부' 나눠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도덕적 명분도 그들의 것이어야 했다.

그랜트는 자신의 신앙심에도 불구하고 전혀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미국인들이 '거룩'해질 수 있는 정정당당한 기회를 얻는 데만 신경을 썼지, 이웃의 배고픔이 해결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게다가 그의 도덕관은 천국에 복을 쌓는다는 개인적 공로에 입각한 것이었다.(본문 202쪽)

저자는 인간 본성의 민낯에 직면하며 깊은 회의에 빠진다. 특히 기독교인이었던 저자는, 추상적인 진리는 수용소의 실제적 문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신앙을 가진 자들의 위선은 그를 딜레마에 빠뜨린다. 진리, 그리고 신앙이 인간 본성 앞에서 무력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훗날 저자는 라인홀드 니버를 통해 그 무력함을 극복한다. 신앙에 근거하되 '그 결과 자신이 처한 상황이 아무리 불확실할지라도 이웃을 섬기라는 소명'을 견지한다. 그것은 '냉소하지 않은 현실주의'와 '순진하지 않은 이상주의'로 이 땅의 현실을 직면할 때 가능한 것이다. 무엇보다 저자가 발견한 것은 '미국이라는 더 큰 사회가 직면한 문제의 연속성'이었다. 즉 산둥 수용소는 세상의 민낯을 보여주는 하나의 샘플로서 유효했고, 현실은 그 연속선에 놓여 있었다.

산둥 수용소, 그리고 우리의 현실

1945년 8월 12일 포로들은 협정 소식을 듣고, 16일 산둥 수용소는 미군의 통제권 안으로 편입되었다. 그리고 1946년 3월, 저자는 마침내 미국으로 돌아온다. 그는 여러 강연을 다니며, 막연한 경건과 추상적 진리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신앙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그의 강연을 들은 미국의 중산층 기독교인들은, 여전히 우월한 위치에서 도덕적 명분에 취해 있을 뿐이었다.


산둥 수용소와 미국 사회의 간극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지만, 그 본질은 비슷하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자신의 영토를 사수하고 상대의 영토를 침탈하려는 욕망은 평화마저 무력으로 쟁취할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로 무장한다. 종교는 욕망의 명분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을 만큼의 부를 소유한 소수의 '가진 자'들은, 도리어 가난한 자들의 것까지 탐한다. 욕망이 노골적으로 표출되는 산둥 수용소와는 달리, 현실에선 좀더 그럴 듯한 모습으로 미화되고 포장될 뿐이다.

아우슈비츠의 빅터 프랑클이나 프리모 레비가 극심한 죽음의 공포 속에서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자 노력했다면, 길키는 노골적으로 드러난 인간의 욕망들에 맞서 인간의 존엄을 실현하고자 노력했다. 1940년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산둥 수용소의 이야기, 1966년 미국에서 출간된 책이나, 2013년 한국을 사는 우리의 '감춰진 실존'을 향해서도 이 책은 뚜벅뚜벅 나아온다. 우리는 무엇으로, 인간의 존엄을 지켜내고 실현할 것인가. 이 책은 그것을 엄중히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