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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니에의 ‘섬’처럼 존재하는 기독 출판을 희망함 (복음과상황, 121207)

Soli_ 2012. 12. 21. 08:00



   오마이뉴스에는 "기독교 출판에는 왜 '창비'가 없을까?"란 제목으로 소개되었습니다.


복음과상황 2013년 1월호(2012.12.7.) _ 2013 한국 기독출판에 바란다



그르니에의 ‘섬’처럼 존재하는 

기독 출판을 희망함




경기는 불황, 출판은 몰락의 조짐


최근 온라인 서점들이 내건 ‘추천 도서’들이 광고비를 받고 선정되고 있음을 공정거래위원회의 감사로 적발되었고, 이 사실이 주요 언론에 일제히 보도되었다. 출판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이 보도가 난감할 것이다. 새삼스러울 것 없는 오래된 관행인데다가, 어쩌면 ‘우리’도 돈을 지불하고 어떻게든 추천 도서에 선정되려고 시도했던 ‘공범’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온라인 서점 중 연간 매출 300억을 올리던 업계 5위권의 대교 리브로가 최근 폐업을 결정하였다. 온라인 서점간의 과다 경쟁은 상위 3위권까지만 안정적인 흑자가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거칠게 말하면 전체 도서 판매량의 절반 가까이가 온라인 서점을 통해 판매되고 있는데, 그 서점 가운데 상위 3개 서점만 흑자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온라인 서점간의 과도한 할인 경쟁은, 출판 시장을 더욱 위축시킨다. 가격 할인은 보통 출판사들의 납품가를 기준으로 책정되는 까닭에, 출판사들은 온라인 서점에 조금이라도 더 노출시키기 위해 과도하게 낮은 납품가를 책정하거나, 광고비를 지출한다. 일부 열혈 독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독자들은 언젠가 ‘반값’이 될 도서를 서둘러 구입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은 알고 있을까? 그들이 싼 값으로 구입한 도서는, 사실 그것까지 감안하여 책정된 정가의 책이라는 것을. 즉 출판사는 납품가와 광고비를 반영한 정가를 책정하기 때문에, 결국 독자는 제 값을 대부분 다 지불하고 그 책을 구입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최대의 피해자는 독자들이다. 서점간의 과도한 가격 경쟁으로 출판사의 이익은 줄고, 출판사는 수익을 담보할 수 있는 책에만 집중하게 될 것이고, 독자들은 결국 좋은 책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경제 위기는 이미 진행 중이되 여전히 그 해법은 난망하다. 한 출판사에서 9년 조금 넘게 일했는데, 해마다 결산회의를 할 때마다 “올해처럼 경기가 안 좋았던 적이 없었다”라는 영업 담당자들의 푸념을 들었다. 아마 경기가 회복되고 출판 시장이 살아난다면, 어느 정도의 가격 경쟁 자체도 용인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불황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출판사간, 서점간의 과도한 가격 경쟁은 출판 생태계 전체의 위기를 촉발시키고 있다. 

2012년 기독 출판계는 어떠했을까? 대부분의 출판사는 매출과 판매 부수 등의 지표를 대외비로 관리하기 때문에, 이 자료에 근접하기가 쉽지 않았다(물론 필자가 몸담았던 출판사의 지표는 알고 있지만, 그마저도 대외비인 까닭에 이 지면에 밝히기는 어렵다). 다만 주요 출판사 관계자들에게 자문을 구한 결과, 일부 매출이 증가한 출판사도 있었으나 대체로 작게는 10% 선에서 많게는 25% 선까지 매출이 감소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가장 큰 매출이 일어나는 연말 특수를 제외한 현재 시점(11월말)에서의 피드백이라는 점에서, 대선 정국과 맞물리면서 연말 매출이 예년만 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을 감안하면 올해 매출은 더 악화될 가능성이 많다. 이는 서점 업계도 마찬가지다. 최근 몇 년간 기독서점의 신규 개업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한때 그 지역에서 굳건했던 기독서점들의 부도와 폐업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출판사의 역량을 평가하는 주요 지표 가운데, 매출과 더불어 중요한 것은 출간 종수라고 할 수 있다. 매출은 베스트셀러와 주석이나 성서지도, 세트 등과 같은 빅타이틀 도서로 단기간 두각을 나타낼 수 있지만, 출간 종수는 그 출판사의 기획, 편집, 유통, 마케팅, 핵심 독자군 등의 역량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주요 기독 출판사의 출간 종수는 2011년과 비교하여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두란노, 규장, IVP, 홍성사, 복있는사람, 포이에마 등의 발간 종수(단행본 기준, 개정판 제외, 12월 5일 기준)를 살펴보면, 대부분 전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였으나 특이한 점은 규장은 오히려 출간 종수가 늘었고(2011년 34종, 2012년 42종), IVP는 급격히 줄었다(2011년 26종, 2012년 15종)는 점이다. 규장은 ‘신앙 위인’, ‘슈퍼 바이블’ 시리즈가 본격적으로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음주의권의 대표적인 출판사였던 IVP의 위기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고립된 섬, 이슈와 담론을 잃어버린 기독 출판


해마다 연말이 되면 출판계에선 한 해를 주도했던 키워드나 주요 이슈를 정리하고는 한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가 발행하는 “기획회의” 333호(2012년 12월 5일 발간)는, 2012년 출판계의 주요 키워드 50개를 선정했고, 그 가운데 대표 키워드로 ‘노마드의 이중 고뇌’를 선정했다. 키워드 50개는 다음과 같다. 


노마드의 이중 고뇌, 스님의 힐링, 안철수의 생각, 에세이의 부흥, <의자놀이> 사태, 편집자론, 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낙하산 인사, 온라인서점 불공정 거래, 전자책시장의 방향성 확립,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마흔, 397세대, 출판사 옆 대나무 숲, “구글 북스” 국내 진출, 유권자, 보수의 뇌 진보의 뇌, 오프라인 서점의 몰락, 온라인 서점에서 더 많은 책을 파는 방법, 세계문학전집, 피로사회, 경제 민주화, 부채사회, 협상의 기술, 북유럽 미스터리, 유홍준, 황석영 50주년 기념작, 행복의 의미, 메타북, 강신주, 김두식, 조앤 롤링 선인세 논란, 99%, 김정운, 현시창, 정리, 먹거리, 이정명, 정은궐, 스크린셀러, 학교 교육 붕괴, 바버라 애런라이크 ‘배신’ 3부작, 백석, 자본주의의 대안, 저항, 스티브 잡스, 사재기, 언론 비판, 이지성과 자기계발, 저작권 무료 이용 동의서 논란, 집과 건축


‘노마드’(nomad)는 ‘유목민’, ‘유랑자’를 뜻하는 용어로, 끊임없이 자기를 부정하면서 새로운 자아를 찾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철학적 개념이다. 한기호 소장은 강상중의 책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국사회는 ‘학력이나 자산, 소득이나 지위의 극단적인 격차와 함께 행복과 불행의 차가 역력하여 과거 어느 때보다 사회 안에 르상티망(원한)이 깊이 퍼져 나가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극히 일부의 ‘부자 노마드’를 제외한 대부분은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하고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지 못하는 모든 세대는 ‘가난한 노마드’일 뿐이다.” “가난한 노마드는 고단한 현실을 극복해 승자가 될 수 있다는 실낱 같은 믿음을 버리지 못하는 고뇌, 그리고 따뜻한 위로에서 지친 심신을 달래고 있지만 근본적인 치유를 하지 못하는 고뇌, 즉 이중 고뇌에 빠져 있다.”(http://goo.gl/G0ygl) 가난한 노마드는 저항과 자기계발 사이에서 주저하고 있으며, 스님들의 ‘힐링’에 위로로 버티며, 이 난국을 헤쳐나가려 ‘희망’을 찾고 있다. 

글을 쓰기 위해 기독서점을 몇 군데 둘러 보며,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를 아우르는 주요 키워드를 살폈다. 출판 시장을 선도하는 베스트셀러는 현재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불안하고 난망한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욕망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리스도인이 가장 많이 읽고 찾는 상위 30위까지의 도서들 속에서 키워드를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다. 


삶, 영성/임재/천국/체험, 기도(응답), 제자도, 래디컬/교회 혁신, 제자 훈련(교회성장을 위한 방법론), 성령론, 메시지(유진 피터슨), 이어령/이민아, 이찬수, 간증/희망/성공/번영, 지혜/습관/자기계발, 성경통독/성경배경사


이찬수, 김동호, 유기성 목사 등 보수적이면서도 합리적 성향의 목회자들의 설교집들이 강세였다. 이들은 현실에서의 실천적 영성, 즉 ‘그리스도인의 삶’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그런 면에서 ‘베스트셀러 <메시지>’는 조금 아쉽다. <메시지>는 ‘오늘의 언어로 해석된 성경’이다. 언어란 그 시대와 땅의 현실을 반영하는 컨텍스트로, 유진 피터슨은 ‘말씀/텍스트’를 오늘 이 땅의 현실 속에서 해석하고 적용하는 ‘메시지/컨텍스트’로 옮기고자 하였다. 하지만 우리 나라에서 저자의 바램은 왜곡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저 <메시지>는 쉬운 우리 말로 번역된 또 하나의 역본으로 환영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 저자가 그토록 강조했던 ‘언어’의 특수성을 고려한다면, 우리말로의 번역 자체가 무리한 시도였겠지만!). 이를 제외하면, 기독교의 오랜 전통 속에서 강조되던 주요 주제들이 여전히 강세였다. <래디컬> 같은 도서들이 선전하였으나, 사실 메시지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카일 아이들먼의 <팬인가 제자인가>도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사실 오래 전 후안 카를로스 오르티즈의 <제자입니까>와 별반 다를 바가 없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20여 년만의 부활일까, 혹은 주기적으로 강조되는 이슈일까?). 기도, 성령, 교회, 제자도 등의 전통적 주제와 더불어 구체적으로 실천 가능한 자기계발서와 성공 지향적 감동 스토리가 여전히 기독 출판계를 주도한다. 어떤 기독서점 사장님은 베스트셀러가 없는 것이 2012년의 특징이라고 하였다. 베스트셀러가 전혀 없었다기보다는 그 종수가 현저히 감소하였다는 지적이었고, 베스트셀러가 되더라도 스테디셀러로 2~3년간 판매 추이가 계속되는 책들은 그 중에서도 소수라는 설명도 붙었다(필자가 속했던 출판사도 그러했다).

총선과 대선이 있는 2012년은, 그리스도인에게는 매우 난처한 한 해였다. ‘소망교회 출신의 장로 대통령’ 이명박 정권에 대한 절망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침묵하게 만들었고, 정권 교체라는 시대적 이슈는 그리스도인들마저 보수와 진보로 극명하게 드러나게 했다. 필자의 생각에, 한국 그리스도인은 절대적 보수와 중도적 보수만 있을 뿐이다(‘그리스도인’ 대신 ‘복음주의자’로 표현해도 마찬가지다). 물론 진보적 그리스도인도 있다. 다만 ‘소수’로 존재한다. 출판 마케팅 측면에서 말하면, 그들은 기껏 초판 부수도 소화하지 못하는 숫자로 존재한다(출판사들은 초판으로 보통 2000부 내외를 제작한다). 아마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중도적 그리스도인은 대부분 현실 정치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으나, 그것을 기독교적 관점으로 해석하거나 적용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들을 타깃으로 출간된 <어떻게 투표할 것인가>(김선욱 외, IVP), <정치하는 교회 투표하는 그리스도인>(김민웅 외, 새물결) 등은 각 출판사가 야심차게 출간하였고 주요 매체의 집중 조명도 받았고 서점에서의 노출도 괜찮았고 SNS 상의 반응은 뜨거웠으나, 정작 시장에서의 반응은 참담했다. 

다수 독자들에게 사랑 받은 도서들로 국한하여 본다면, 2012년 기독 출판 시장은 세상과 유리된 채 공고한 자신의 바운더리를 지키는 ‘섬’으로 존재한다. 사실, 이런 고립은 오래되었다. 전체 출판계를 주도한 대표적 키워드였던 ‘노마드’들은 기독 출판계 안에선 도무지 희망을 찾지 않았다.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노마드’가 없는 까닭일까? 혹시 ‘노마드 그리스도인’들마저 스님들에게서 ‘힐링’을 받고 있는 것을 아닐까? 복음주의를 표방하는 출판사들의 어렵고 딱딱한(그것도 대부분 번역서인) 세계관과 사회 참여 관련 도서들을 찾기보단, 보다 쉬운 언어로, 바로 우리 땅의 지극한 현실을 담아낸 일반 출판계 쪽의 주요 사회과학, 인문학 출판사들의 책들을 찾아 읽지는 않았을까?(‘정의’ 담론이야말로 기독교의 것이어야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엄밀히 말해, 2012년 기독 출판계는 주요 이슈를 생산해 내지 못했다. 새로운 키워드가 없다는 것은, 더 이상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뜻이다. ‘복음’은 있되 ‘상황’은 없고, ‘텍스트’는 있되 ‘컨텍스트’는 없다는 뜻이다. 한국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복음의 상황화가 실패하였다는 것이며, 그리스도인의 삶에 컨텍스트가 없다는 것이다. 기독 출판의 위기는 곧 한국 기독교의 위기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땅의 극심한 고통, 사람들이 잃어버린 희망, 총선과 대선이란 주요 변곡점 등이 2012년을 내내 소란스럽게 하였지만, 기독 출판계가 제시한 담론은 여전히 너무 건조하고 낡았다. 그리하여 기독서점엔 사람이 없다. 지난 11월 한 캠퍼스에서 독서법을 강의하며 물었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 기독서점에 나가는 사람?” 오십여 명 중에 다섯 명이 손을 들었다. 다섯 명 중 자발적으로 책을 살피고 구입했던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어떤 학생은 ‘나의 현실과 동떨어진 기독서점에 가면 이질감을 느낀다’고 하였다. 기독 출판은 섬으로 존재한다. 세상에서 스스로 고립되어 오직 자신들만의 이슈를 재탕, 삼탕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그리스도인들마저 그 섬을 차츰 떠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르니에의 ‘섬’이 되기를


가난한 노마드가 2013년엔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스님들의 위로로 진정한 힐링을 얻을 수 있을까?(그리스도인들은, 특히 신학자와 목회자들은 법륜, 혜민 스님들이 대중들의 마음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들은 불교 교리로 섣불리 현실을 규정짓거나 강요하지 않고 지극히 단순하고 평범한 일상의 언어로 지친 이들의 영혼을 위로한다.) 경기 불황은 계속될 것이며, 양극화는 심화될 것이고, 이 땅의 불의는 더욱 성실하고 교묘해질 것이다. 그들은 2013년엔 어떤 희망을 읽을 것인가? 혹여, 그들의 무너진 가슴에 기독 출판이 그 대안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 난망한 일인가? 

기독 출판계는 대체로 2013년에도 그 전통적 주제들이 여전한 키워드로 전체 흐름을 선도할 것이다. 물론 기독서점을 중심으로 한 주요 유통은 조금 더 어려워질 것이고, 기독 출판사들도 불황을 극복하기 위한 뚜렷한 모멘텀을 찾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이 위기의 근본적 원인과 대안을 다음 세 가지에서 찾는다. 

첫째, 기독 출판계의 위기는 기독 출판사들 역시 자본주의 논리 속에 상업적 이익을 최선의 가치로 두기 때문이다. 출판계 전체 생태계를 위한 마지막 보루인 도서 정가제 정책은 기독 출판계 안에선 더욱 무용지물이다. 물론 모든 출판사가 그렇지는 않지만, 일부 출판사는 직영 매장이나 독자와의 직접 거래를 통해 신간 도서도 파격적인 할인가에 판매한다. 도서 정가제는 서점 중에서도 기독서점이 더욱, 기독서점 중에서도 신학교 구내 서점에서 유독 지켜지지 않는다. 앞서 말한 대로, 과도한 가격 경쟁은 출판 생태계 전체를 위기에 빠뜨린다. 출판인들에 의해 2011년 최고의 출판사로 도서출판 창비가 뽑혔다. 콘텐츠 면에서 기계적인 중립을 지키지 않고 분명한 목소리를 냈을 뿐만 아니라 ‘가격 할인 경쟁에서 벗어나 영업과 유통 면에서도 정도(正道)를 걸었기 때문에’ 더욱 빛나는 결과였다(“시사인” 224호). 그에 견줄만한 기독 출판사를 보기 원한다. ‘문서 선교’를 표방하기 전에, 먼저 ‘정도’를 걷는 출판사를 보았으면 좋겠다. 

둘째, 좋은 이야기를 찾기 힘들다. 좋은 이야기는 사람을 자극하고 감동시키며 움직이게 만든다. 세상은 좋은 이야기로 변화된다. 기독 출판계를 선도하는 베스트셀러 중에도 이야기가 제법 많이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좋은 이야기’는 드물다. 

‘좋은 이야기’의 필요 조건은 다시 두 가지다. 우선 바른 신학에서 시작해야 한다. 종파적 입장에서의 다양한 신학적 관점의 문제는 여기서 논하지 말자. 다만 ‘순전한 기독교’ 관점에서 바른 신학으로 철저히 검증된 이야기가 필요하다. 번영과 축복의 문제, 자기계발서의 욕망에 관한 문제, 무엇보다 이 땅의 고통스런 현실에 관한 문제가 ‘바른 신학’으로 검증되고 제시되어야 한다. 철저히 검증하되, 일반 은총에서 특별 은총까지 그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열려 있어야 한다.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더 이상 논증하지 말고, 이제 이야기를 들려달라. 한국 기독교엔 정말이지 좋은 이야기가 절실하다.   

‘좋은 이야기’의 두 번째 조건은 이야기로서의 완성도이다. 그런 면에서 홍성사의 분전은 칭찬해주어 마땅하다. C. S. 루이스, 2인자 시리즈, 토스카 리 등의 소설을 비롯하여, 유독 좋은 에세이들을 많이 출간하였다(물론 <레프트 비하인드> 같이, 필자의 마음에 안 드는 소설도 있지만!). 복음주의를 표방하는 대표적 출판사인 IVP가 이 땅의 현실 문제에 직접 뛰어 들어, 그것도 이야기 형식으로 엮어 출간한 <평화, 그 아득한 희망을 걷다> 역시 좋은 이야기의 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기호 소장이 말했듯이, 소설이 살아야 전체 출판 시장이 산다. 그런데 기독교는 애당초 소설 장르는 죽어있다. 기독 출판 시장의 빈약함도 이와 관련 있을 것이다. 문학 장르도 없지만, 작가도 없다. 한편, 문학 독자도 없다. 소설, 시, 에세이 등의 장르는 문학적 상상력과 감수성을 한껏 자극하여, 우리의 영성까지도 깊고 넓고 단단하게 만들 것이다. 문학이란 장르가 한국 기독 출판계에 자리잡을 즈음이야,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달라져 있으리라 감히 생각한다. 

 셋째, 독자들의 각성이 필요하다. 결국 독자가 출판사를 만든다. 독자를 계몽의 대상으로 삼는 출판사는 이제 실패할 것이다. 미국 중심의 복음주의에서 비롯한 주요 담론을 이 땅에 어젠다로 제시하던(9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발현된 주요 담론이 한국에선 앞선 어젠다로 선도했다.) 출판사들도 이젠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 그 대안은 ‘독자’에게 있다. 독자의 삶, 독자가 살아가는 이 땅의 문제에서 시작해야 한다. 가장 기독교적인 메시지는 가장 현실적인 것이어야 한다. 복음의 상황화는, 이 땅의 필요를 직면해야 가능한 것이다. 출판도 마찬가지다. 기획하기 위해 아마존를 검색하지 말고 독자를 찾아 만나야 한다. 이제 독자들도 나서 주었으면 한다. 각성된 독자들이 좋은 책을 분별하여 출판사들을 한껏 자극해주었으면 좋겠다. 복음과상황을 비롯한 좋은 매체들이 독자들을 도와주었으면 좋겠다. 대학로 한 귀퉁이 작은 도서관 ‘호모 북커스’, 신촌 거리에 놓인 ‘카페 바인’ 같은 곳에서 각성된 독자들이 모여 책을 읽고 SNS를 통해 소문을 내어, 어리석은 출판사들을 긴장시키고 정도를 걷는 출판사들을 위로해주었으면 좋겠다. 기독 출판의 희망은 독자에게 있다. 

  

장 그르니에는 <섬>이라는 작고 아름다운 책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서 도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은 불가능한 일- 자기 자신을 되찾기 위해 여행한다고 할 수 있다.” 만약 기독 출판이 “섬”이라고 한다면, 그르니에가 명명한 그런 섬이 되었으면 좋겠다. 자기 자신을 직면하여 자기의 소명을 되찾는 섬이었으면 좋겠다. 숱한 ‘노마드’의 고단한 삶이 위로를 얻고 근본적 힐링을 경험하는 섬, 모든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가져야 할 ‘디아스포라’적 소명을 회복하게 만드는 섬, 그런 섬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