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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정 (IVP 북뉴스 2005년 7-8월호)

Soli_ 2005. 6. 17. 15:36

IVP 북뉴스(2005년 7-8월호)_booker 책 읽기


여정



나에게 있어 ‘ 읽기’는 진리와 맞닿은 안식에로의 여정이다. 에너퀸들러가 말한 대로, ‘책 읽기’ 그 너머엔 ‘자유 이상의 것’이 있다. 


책 읽기는 그 자체로 다름 아닌 여정이다. 그 길 위로 펼쳐지는 진리에의 향수는 내 인생의 그리움이 되기도 한다. ‘책’에 대한 매니아적 집착은 때로 강렬한 유혹이 되기도 하지만, 조금만 생각하면 그것은 너무 재미없는 일이기에, 난 그러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분명한 한가지는 책 읽기, 그 자체가 내 그리움의 여정이 되어준다는 것이다. 


1.

진리. 그것은 움켜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펼쳐내는 것이다. 지금 내 손에 움켜진 진리가 때로 초라해 보여도 그것을 펼쳐낼 때에야 비로소 진리는 오래된 ‘불가지론’을 극복해낸다. 진리는 그렇게 살아내는 것이다. 비가 몹시도 내리던 96년 여름, 캠퍼스의 한 교실에서 만난 비브 그릭은 내게 그런 강렬한 진리를 소개해주었다.  “제자도는 또한 억압과 불의로 생긴 가난을 변화시킨다. 제자들은 정의를 실현함으로 억눌린 가난한 자들을 옹호한다.” 1시간 남짓 이루어진 강의에서 비브 그릭은 모든 형태의 가난에 대해, 또 그 구조 속에 억눌려 살아가는 가난한 자들에 대해 우리가 살아내야 할 제자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온 몸으로 역설하고 있었다. 「가난한 자들의 친구」(비브 그릭, IVP)는 ‘빈민선교’라는 개념 이상의 제자도를 나에게 제시해주었다.

  비브 그릭이 진지하게 고민한 가난의 문제와 그것을 필연적으로 야기시키는 구조의 문제, 그것을 성경의 용어로, 신학적 개념으로 공부하고자 도서관에서 뒤척이던 어느 날, 빨간 책 표시의 눈에 띄는 책 「성서로 본 땅」(월터 브루그만, 나눔사)을 발견했다.  월터 브루그만이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이전이었기에 생소하게 마주한 이 책을 통해, 비브 그릭이 고민했던 실존적 가난에 대한 문제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선물과 약속, 그리고 도전으로서의 땅은 이스라엘의 실패를 거쳐 현대에 이르러 필연적 아픔과 상실의 근거로 변질되고야 만다. 브루그만은 이 책에서 “우리의 믿음이, 그리고 결국 하나님이 사회 정치적, 경제적 차원의 세계인 땅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 것”을 말하고 있다. 브루그만의 신학적 방법이 다분히 역사비평학적 수단을 차용하고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그가 건져내는 신학적 진리는 나를 사로 집기에 충분하였다. 한 동안 절판되어 찾을 수 없었는데 최근에 2002년 개정판을 번역하여 「성경이 말하는 땅」(기독교문서선교회)이란 제목으로 다시 출간되었다. 

  비브 그릭과 브루그만에서 시작된 진리에의 여정은 레슬리 뉴비긴을 거치면서 치열해지기 시작했다. 뉴비긴의 관심은 늘 오늘의 상황과 마주하고 있다.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복음」(IVP)에서는 아슬아슬한 복음의 ‘접경’을 버리고 교회라는 안전한 울타리 속에 안주하려는 오늘의 크리스천을 철저히 각성시키고 있다. 그에게 있어 오늘의 상황은 극복 되어야 할 선교적 사명의 출발점이다.  다분히 사변적인 논평으로 그칠 수 있는 현안들을 그 자신이 감내한 선교적 삶의 언어와 논리로 치열하게 극복해내는 그의 책은 가히 독보적이다.  최근에 출간된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이요」(IVP)에서 또 다시 그 치열함을 본다. 오늘의 문화적 상황을 회피하지 않으면서 오늘을 극복하기 원한다면, 또 그 도구가 온전한 복음이길 원한다면, 우리는 뉴비긴을 읽어야 한다.   

  

2.

최근 나의 생生은 깊고 깊은 목마름에 허우적대고 있다. 아플 때가 많다. 지금껏 걸어온 여정의 저 너머가 갑자기 막연해질 때, 지금까지도 늘 그러했던 새벽의 초조함이 새삼스런 두려움으로 대치될 때, 그 목마름은 두렵다. 그러나 그렇다고 발걸음을 멈출 수는 없다. 이러할 때 필요한 것은, 두려워하는 내 속 사람을 설득할 강력한 변증과 내 속 사람을 책망할 강력한 권고와 내 속 사람을 감동시킬 유쾌한 웃음이다. 

2000년도 Christianity Today Book Awards를 수상한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목마른 내 영혼」(복있는사람)은 영적 갈망에 대한 변증서이다. 우리가 가진 목마름이 의미하는 바를 명쾌한 언어로 설명해낸다. 간결한 그의 언어는 변증에 있어 참 유용하다. 그의 글에 등장하는 여러 역사의 증인들의 고백들은 우리의 완고함을 꺾어 버리기에 참 적절하다. 

제목으로 나를 제압해버린 이미 오래된 신간 「네 하나님은 너무 작다」(J.B필립스,규장)의 출간은 여러 사람을 기쁘게 했다. ‘교회를 움직인 100권의 책’으로 뽑히기도 했던 이 책의 제목은 이 책이 읽혀지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인용되었다고 한다. 필립스는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너무 큰 개념은 가질 수 없다.”고 단언한다. 우리의 생각이 그분을 뛰어넘을 걱정은 이제 그만 해도 좋다는 말이다. 나의 삶을 부인하지 않는 한, 나의 이성적 한계를 부인하지 않는 한, 나의 체험된 모든 경험을 부인하지 않는 한,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개념을 그대로 가진 채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명백히 불가한 일이다. 만약 지금 나의 목마름이 세상과 스스로에 대한 성급한 결론에 근거한 것이라면, 우린 다시 필립스의 강력한 권고와 마주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도 무엇인가가 더 필요하다면, 그땐 그 다음 책을 펼쳐 ‘희망’이란 단어를 찾아보자. “희망은 때로 진실이 실현되는 날개다. 진실은 때로 희망이 놓이는 반석이다.” 앞으로도 이 길고 지루한 목마름을 다시 만날 것 같다면 꼭 이 책을 챙겨두자. 프레드릭 뷰크너의 「통쾌한 희망사전」(복있는사람)은 유쾌한 언어로, 정직한 따뜻함으로 갖가지 진리를 정의하며 우리의 여정에 ‘희망’을 선사한다.  진리와 맞닿아 있는 안식에의 여정, 그곳에 뷰크너의 통쾌함이 가득할 것이다.      

 

깊은 것은 

진리

그리고 바다


언젠가 가슴에 담아놓았던 시詩 한 구절은, 오늘 또 다시 시작하는 나의 여정에 작은 동인動因이 된다. 

그리고 어김없이, 내일도 그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