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_

부활의 날, 도마의 길을 기억하다 (너머서교회, 130331)

Soli_ 2013. 3. 31. 23:59

너머서교회는 부활절과 설립 5주년을 맞이하며 전교인인 함께 칸타타를 부르고, 각 순서를 맡아 예배를 섬겼는데 제가 맡은 것은 글을 써서 읽는 것이었습니다. 제게 부여된 주제는 "너머서가 나아갈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도마의 부활절을 묵상해보았습니다. 성서의 기록을 참조하였으나, 그 여백 속에 저의 상상력을 보탰습니다. 어쩌면 저는 도마와 비슷했습니다. 물론 아직은 '불멸에 이르지 못한 회의자, 도마'인 것도, 한편으론 동료 요한 사도를 부러워하는 도마 같기도 합니다. 아무튼.




"부활의 날, 도마의 길을 기억하다"

-너머서가 나아갈 길-



열두 제자 가운데 '쌍둥이'라고도 불렸던 도마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갈릴리의 가난한 어부였던 아버지가, 그리고 제 자신이 못마땅했습니다. 학문을 익혀 부모와는 다른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버리고 싶었습니다. 못난 우리 민족을 계몽시키고 싶었고, 그들의 지도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진리를 믿었습니다. 진리에 닿고자 열심히 율법을 읽고 숙고하였습니다. 율법은 신비의 영역이 아닌 현실 속에서 구현되는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저는 예언자라고, 지도자라는 이들이 나타날 때마다 그들을 찾아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헛헛한 망상에 사로잡힌 신비주의자들이었습니다. 사유되고 입증되지 않는 믿음은 망상에 불과합니다. 저는 불멸의 진리가 로마로부터 우리 민족을, 가난으로부터 나와 나의 가족를 구원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삶은 힘겨웠습니다. 세상은 거짓과 불의가 압도했습니다. 메시아를 기다리던 저의 마음은 지쳐갔고, 대물림 되는 가난은 저의 숙명이었습니다. 가난한 어부 아버지를 원망하며 살았는데, 저도 기어이 어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갈릴리 촌구석에서 그분이 나타났을 때를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스스로를 메시아로 소개하던 여느 예언자들과는 달랐습니다. 그는 고아와 과부들의 벗이었습니다. 요르단 강가의 요한 선생께서 그 앞에 엎드렸다는 소문도 들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분과 만났습니다. 가장 낮은 이들과 기꺼이 눈빛을 맞추시던 그분. 그분과 마주친 눈빛에 저의 가슴이 뛰었습니다. 생애 첫 번째 설렘이었습니다. 그 눈빛은 제 삶의 등불이 되었습니다. 

제가 읽고 숙고했던 율법은 그분의 말씀을 통해 진리에 닿았습니다. 유독 질문하길 좋아하는 저를 동료들은 눈치를 주며 말리기도 했습니다. 무례해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 질문을 기꺼이 받아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 질문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셨습니다. 제가 미처 헤아리지 못한 진리였습니다. 평생 가슴에 품었던 질문은, 다름아닌 저의 갈망이었지요. 그분은 저의 갈망에 기꺼이 응답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마침내 그분을 주님으로 섬기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저는 늘 의심하는 사람이었으나, 진리를 만난 이후엔 거칠 것 없는 열정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진리는 곧 불멸이었습니다. 주님은 불멸의 메시아였습니다. 그분이 세상을 구원할 것입니다. 그분께서 병든 나사로를 만나러 유다로 가겠다고 하셨을 때, 동료들은 주님을 만류하였지요. 유다 사람들에 쫓겨 도망치듯 피한 것이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고집을 꺽지 않았습니다. 그때 제가 동료들에게 외쳤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죽으러 갑시다!" 저는 두렵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그분이 불멸의 메시아라는 것을 확신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나사로를 살리시는 그분을 보며, 저의 판단이 정확했다는 것을 알았지요. 

그때까지는 그랬습니다. 그분이 로마 군인들에게 잡혀가시고, 군중들에게 휩싸여 모욕을 당하실 때에도,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골고다를 오르실 때까지도, 전 그분이 불멸의 존재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초라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초라한 죽음이었습니다. 불멸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비탄에 젖은 동료들 틈에서, 저는 망연자실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습니다. 하루, 이틀, 삼일... 일주일의 첫날이 다시 시작되었으나, 우리는 그 시작이 두려웠습니다. 차라리 세상이 이대로 끝났으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깊은 고독이 칠흑같은 두려움과 함께 엄습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먼저 말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동료들에게서 다시 도망쳤습니다. 그렇게 또 며칠이 지났습니다. 동료들 사이에서 소문이 들렸습니다. 주님이 그들에게 나타나셨다는 허황된 소문이었습니다. 동료들이 저를 불렀습니다. 저는 다시, 갈릴리 어부 시절, 그 어느 누구도 믿지 않던 그때의 저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그때, 바로 그때... 어둠 속에서 그분이 걸어오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찢긴 손바닥을, 옆구리를 만져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의심을 떨치라고,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그렇게 불멸의 예수님은 다시 저에게 오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날 이후,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부활의 날에, 도마를 생각했습니다. 가난한 어부였던, 의심 많은 회의자였던 도마가 예수님을 만났듯이 부활의 예수님을 더 많은 사람들이 만났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봅니다. 가난을 대물림 하는 사람들, 못배운 사람들, 상처 받은 사람들, 버림 받은 사람들, 몸이 불편한 사람들, 피부색과 언어가 달라 차별받는 사람들,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들, 죽어가는 사람들...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 불멸의 소망을 가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찬란한 부활의 날, 너머서교회가 설립 5주년을 맞이합니다. 

생일은 존재의 이유를 묻습니다. 이름은 자식에 대한 부모의 소망이 담겨있습니다. 너머서교회가 5년 전에 시작된 것이 하나님의 섭리라고 믿는다면, 우린 그 존재의 의미와 우리에게 주어진 이름의 소명을 늘 묻고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걷는 이 길 너머 우리가 꿈꾸는 것은 무엇인지를 늘 묻고 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거짓과 불의가 압도하던 세상에서 의심하고 회의했던 도마가 마침내 불멸의 진리를 품게 된 것처럼, 너머서교회도 그러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불멸의 진리는 세상을 향한 뜨거운 열정으로 모든 절망을 이겨냅니다. 진리에 대한 근원적 사유는, 세상을 향한 가장 급진적 실천을 추동합니다. 도마가, 그분의 제자들이 그렇게 살았고, 그렇게 죽었습니다. 너머서교회가, 모든 성도님들이 그렇게 살고, 그렇게 죽을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너머서교회가 늘 부활의 날을 살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