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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자리> 두 번째 읽기

Soli_ 2013. 1. 17. 17:27

"그를 멸시한 세계에 내가 속하게 되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그의 가장 큰 자부심이요, 심지어는 그의 삶의 이유 자체였는지도 모르겠다."(아니 에르노, 127면)



두 번째, 읽었다. 작은 판형에 129면 밖에 안 되는 책. 처음엔 단숨에 읽었는데, 이번엔 자주 멈춰야 했다. 첫 번째 독서가 세월 넘어 유유히 흐르는 한 남자의 서사에 막막했다면, 오늘은 그 서사를 그저 관찰자 시점으로 응시해야 했던, 그러나 그 남자의 가장 중요한 존재였던 작가의 슬픔에 가슴이 울컥했다. 


"기억이 저항한다."(113면)

"난 내 책의 결말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었다. 이제는 그것이 다가오고 있음을 안다."(114면)

"내가 부유하고도 교양 있는 세계에 들어갈 때 그 문턱에 내려놓아야 했던 유산을 밝히는 작업을, 난 이제 이렇게 끝냈다."(125면)


아마, 오늘 이 책을 다시 꺼내어 읽은 것은, 새벽에 읽었던 진중권의 칼럼 한 구절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다시 세워야 할 것은 우리 바깥의 바리케이드가 아니라 우리 내면의 에토스인지도 모른다. 그 추위에 지팡이를 짚고 투표장에 나서는 노인들은 경멸이 아니라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비록 그들이 나라를 사랑하는 방식은 우리와 다르지만, 나라를 사랑하는 그 열정만큼은 우리의 것보다 더 뜨거울 것이다. 그들 역시 우리처럼 '비천한 자들'(les miserables)이다. 왜 우리는 그들을 우리의 협력자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문득, '남자의 자리', 그곳에 거했던 숱한 존재들, 그러나 그곳에서 다른 존재이고자 했던 나의 허영, 그리고 내가 구축하고 결국 아스라이 사라져갈 비루한 나의 자리가 교차했다. 그것은 그리움이기도 했고, 반성이기도 했고, 성찰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