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_/빛과소금_

또박또박 쓴 나의 진심 (빛과소금, 130409)

Soli_ 2013. 4. 29. 22:19

빛과소금 5월호에 기고한 글이며, "거듭난 남자, 아내의 자리를 생각하다"란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또박또박 쓴 나의 진심



"인류의 반을 차지하는 여성은 남성에게 억압과 폭행을 당해온 시절에도 먹이를 찾아 아이를 양육하며 가정을 이끌고 삶을 이어오면서 평화를 지킨 중심이었습니다. 평화를 지키려는 본성을 아직도 많이 가진 존재가 여성이죠. 그 여성이 남성에게 군국주의적, 산업적 탐욕을 멈추라고 명령해야 할 시기가 왔습니다."


로버트 서먼이 안희경과의 대담에서 한 이야기다(<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76쪽). 평화의 근원은 늘 여성의 자리였다. 남자는 탐하고 모략하고 침탈하지만, 결국엔 여성의 품을 그리워하고 굴복한다. 어머니의 자리, 아내의 자리에서야 그 깊은 안식을 누린다. 언젠가 여성의 시대가 도래할 때, 비로소 우리는 충만한 평화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2005년 4월 9일 결혼하여, 오늘로 꼬박 8년의 세월을 아내와 함께 했다. 운명처럼 만나 뜨겁게 사랑했다. 나는 늘 두 번의 회심이 있다고 말해 왔다. 예수를 믿고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것, 그리고 인생을 주님께 드리기로 작정한 것. 그러나 이젠 세 번째 회심이 있다고 수정해야겠다. 세 번째 회심은 ‘거듭난 남자’가 되는 것이다. 

불혹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숱하게 흔들리고 방황한다. 작년 연말, 9년 조금 넘게 일했던 직장을 그만뒀다. 30대를 오롯이 바친 직장이었다. 의연한 척 내색하지 않았지만, 많이 아팠고 좌절했다. 사람들은 그간 수고했으니 좀 쉬라고, 어느 곳에서라도 잘 할 것이라고 격려했다. 잠깐의 격려로 그들의 몫은 충분했다. 나도 그들 앞에서 잠깐 견디면 되었다. 

그러나 아내 앞에선 달랐다. 종일 곁에 있는 아내 앞에서 난 한없이 움추렸다. 무너진 자존감은 못난 서글픔으로 찾아왔고, 간혹 아내에게 짜증 섞인 거친 목소리로 던져졌다. 아내 앞에선 숨길 수 없는 불안이고 고독이었다. 


아내는 첫째아이를 출산할 즈음 직장을 그만두고, 지금까지 전업 주부의 삶을 살았다. 칠 남매 중 여섯 째로 태어났고 여자 형제 중에선 막내였다. 가난했다. 여자로 태어난 설움은 그녀의 숙명과도 같았고 가난은 꿈을 앗아갔다. 그러나 아내는 용감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며 자취를 했고 기어이 대학에 들어가 스스로 학비를 해결하고 졸업했다. 그렇게 좋은 직장에 들어갔지만, 아내는 엄마의 삶이 더 소중했다. 가난은 견딜 수 있으나, 엄마의 삶은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그녀는 직장을 그만둔 것이다. 

  나는 가정적인 남편처럼 보였다. 기념일을 꼬박꼬박 챙겼다. 설거지와 청소를 담당했고 가능한 집안일을 나눠 하려고 했다. 하지만 둘째아이가 태어난 후, 조금씩 게을러졌던 것 같다. 직장 일이 점점 고되고 바빠졌지만, 아이들이 커가면서 아내의 삶 자체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기에 더 이상 변명하기 어렵다는 것을 안다. 난 그저 모른 척하며, 나의 우월한 여건을 즐겼다. 


내가 직장을 그만둘 때, 아내는 기꺼이 나의 편이 되었다.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도 아내는 한결같다. 남편의 좌절 앞에, 아내는 강한 여자가 되었다. 덕분에 힘겨웠던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을 맞는다. 아내의 튤립이 기어코 봄을 터뜨린다. 사사로운 욕심은 난데없는 아름다움을 만나 길을 잃는다. 길을 잃어야 닿을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는 법이다. 그렇게 나도 차츰 희망을 다독이며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중이다. 

봄이 겨울을 물리치던 즈음, 아내는 여행을 떠났다. 나와 아이들이 동행하지 않은, 아내의 첫 번째 여행이다. 그것도 고작 이틀간의 짧은 여행일 뿐인데, 허락받을 일도 아니고 그런 기회를 진작에 만들지 못한 나를 원망해야 할 터인데, 아내는 며칠 전부터 계속 미안해 했다.


그녀가 새벽에 떠난 후, 첫째 예지를 깨워 밥 먹여 유치원 보내고, 둘째 예서와 함께 동네 놀이터에서 한바탕 놀았다. 봄볕에 잘 마른 옷가지를 고이 접어 옷장에 넣는다. 점심을 먹고 예지가 오면, 호수공원에 갈 것이다. 날마다 주어진 소명이 아니라, 결혼 8년 만에 주어진 단 이틀간의 소명일 뿐이다. 그런데도 벌써부터 힘들다.

무엇보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반응을 요구하는 아이 곁에 있는 것이 힘들다. 책을 읽다가도 쉴새 없이 재잘거리는 아이로 인해 맥락을 잃고 책을 덮는다. 잠깐 아이에게 책 읽어주는 것, 한바탕 신나게 노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그것은 생명을 견디는 일이다. 무엇보다 아빠에게 아이는 타자의 생명인 까닭이다.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아이를 낳고 기르는 모든 엄마들에게 아이는 그 자신의 생명과 다름 아니다. 그래서 종종 엄마의 가슴은 하늘에 비유되고는 한다. 그것도 ‘열린 하늘’. 결코 내가 닿을 수 없는 지점에 그녀의 자리가 있다. 


“모야천지(母也天只)”, 

 어머니의 가슴은 열려 있는 하늘입니다. 


로버트 서먼이 말한 '평화를 지키려는 본성을 가진 존재로서의 여성'을 묵상한다. 여성을 통해 '엄마 하나님'을 묵상한다. 아내의 부재 속에, 아내의 희생을 배운다. 그녀의 부재 속에 그녀의 존재를 더욱 또렷이 기억하고 그리워한다. 


아내가 돌아왔다. 그제서야 안도한다. 나도 그녀처럼 한결 같은 사람으로, 그녀의 곁을 지키기로 작정한다. 그리고 나는 이제, ‘거듭난 남자’가 되기를 다시 한 번 다짐하고 각오한다. 모든 회심은 지속적인 헌신을 요구한다. 헌신은 전(全)존재의 각성이며 실천이다. 그리고 아내에게 속삭이듯, 엽서 한 장을 쓴다. 아내의 삶, 엄마의 삶… 이런 것 말고, 여성으로서의 그녀의 삶이 소담스럽게 영글기를, 이제부터라도 그녀 스스로 자애(自愛)의 길을 소명으로 살아 내길 바란다고, 진심을 담아 또박또박 쓴다.  



▪글쓴이 김진형은 IVP에서 30대를 보내며 마케팅, 기획과 편집, 문서학교와 <청년도록> 발간 등의 문서 사역을 담당했다. 현재 출판 언저리에서 무엇을 하며 먹고살지 고민하면서, 평생의 꿈인 ‘문서학교가 열리는 마을카페 예지원’을 향해 한걸음씩 걸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