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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처럼 읽기> 단상

Soli_ 2014. 10. 14. 23:35
<정희진처럼 읽기>(정희진|교양인|2014) 단상

1. 여성학자로서의 정희진은 물론, ‘을’이라는 현실의 비참함을 살아가는, 그러나 노동자로서의 위엄을 잃지 않는 정희진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유독 반갑다. 
2. 로버트 서먼은 평화를 여성의 본성이라고 말했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평화란 전쟁이 억제된 상태가 아니라 적극적인 정의의 결과라고 말했다. 정희진의 책 읽기에서 일관되게 강조되는 평화의 관점은 이 두 가지를 정확히 충족시킨다. 
3. 정희진은 망명자이거나 디아스포라적 존재로서 투쟁한다.  
4. 그는 어쩌면 지독한 낭만주의자이기도 하겠다.
5. 컨텍스트를 위해 텍스트를 소비하는 어떤 운동가들과는 달리, 정희진은 텍스트, 그 자체를 향한 성실한 연구자다.
6. “본질적인 나는 없다. 내가 추구하는 것이 나다”라는 선언과 독서를 "생각하는 노동"이자 '온몸으로 수행하는 수련'으로 정의하는 것을 고려할 때, 정희진의 책과 독서를 기록한 이 책은 '정희진을 읽는 가장 유효한 독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정희진처럼 읽기>라는 제목을 "정희진 읽기"로 살짝 변주해도 되겠다.  
7. 이 책이 이렇게 반응이 좋은 것에 놀랐다(부럽다). 이렇게 반응이 좋을지 알았다면 출판사는 책의 외모에 좀 더 신경을 썼을 것이다(아쉽다). 더 놀라운 것은 교양인에서 출간될 정희진의 근간들이다(무려 일곱 권. 무지 부럽다). 


다음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밑줄 그은 문장들.

즐거움(樂)에 풀잎을 얹으면, 약(藥)이 된다. 책은 즐거움이자 풀잎이자 약물이다. 나의 일상은 외롭고 지루한 노동의 연속이다. 자극이라고 해봤자, 우리 사회 대부분의 서민들처럼 분노와 스트레스가 고작이다. 내가 옴짝달싹 못하고 ‘을’이라는 현실에서 비참함을 느낄 때, 푸코를 읽으면 상대화된다. 미련으로 괴로울 때는 <그 남자에게 전화하지 마라> 같은 책도 도움이 된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이후 몇 년간 상실감에 빠져 종일 누워 지낼 때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사랑을 위해 사랑할 권리를 내려놓으라”라는 말은 나를 욕창 직전에서 구해주었다. 성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과 대화하다가 계급 문제를 생각할 때 주디스 버틀러는 명확한 논리를 선사했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 생각할 때 고바야시 히데오가 한 말, “어머니에게 역사적 사실이란 아이의 죽음이 아니라, 죽은 아이다”를 되새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타자란 없다”라고 했던 마르크스를 읽을 때 그의 깊이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내 글이 어렵다는 불평과 비판 세례를 받을 때, “쉬운 글은 익숙한 글일 뿐”이라는 스피박의 통찰은 나를 자유롭게 해주었다. “우리가 비판받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역사를 채우겠는가”라고 한 나혜석은, 나를 나대로 살게 하는 용기를 준다.(12-13쪽)


나에게 책 읽기는 삶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자극, 상처, 고통을 해석할 힘을 주는, 말하기 치료와 비슷한 ‘읽기 치료’다. 간혹 내 글이 어둡다고 지적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내가 읽는 책은 상처에만 관여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삶에서 기쁨이나 행복은 없냐고 묻는다. 왜 없겠는가. 문제는 무엇이 행복이냐는 것이겠지. 행과 불행은 사실이라기보다 자기 해석에 좌우된다. 그리고 독서는 이 해석에 결정적으로 관여한다.(15쪽)

독서는 내 몸 전체가 책을 통과하는 것이다. 몸이 슬픔에 ‘잠긴다’, 기쁨에 ‘넘친다’, 감동에 넋을 ‘잃는다’. …… 텍스트 이전의 내가 있고, 이후의 내가 있다. 그래서 간단히 말해 독후의 감(感)이다. 통과 전후 몸에 별다른 변화가 없는 경우도 있고, 다치고 아프고 기절하는 경우도 있다. 내게 가장 어려운 책은 나의 경험과 겹치면서 오래도록 쓰라린 책이다. 면역력이 생기지 않는 책이 좋은 책이다. 그리고 그것이 ‘고전’이다.(19쪽)


“정희진이 습득한 책 읽기 습관”(24쪽)
1. 눈을 감아야 보인다(in/sight).
2. 새로운 것을 얻으려면 기존의 인식을 잠시 유보하라(판단 정지, epoche). 
3. 한계와 관점은 언어와 사유의 본질적인 속성이지, 결함이 아니다. 
4. 인식이란 결국 자기 눈을 통해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체는 나의 시각을 객관화하는 것이다. 
5. 본질적인 나는 없다. 내가 추구하는 것이 나다. 
6. 선택 밖에서 선택하라. 
7. 궤도 밖에서 사유해야 궤도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8. 대중적인 책은 나를 소외시킨다. 
9. 독서는 읽기라기보다 생각하는 노동이다.

내가 생각하는 독후감의 의미는 단어 그 자체에 있다. 독후감(讀後感). 말 그대로 읽은 후의 느낌과 생각과 감상(感想)이다 책을 읽기 전후 변화한 나에 대해 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가 없다면 독후감도 없다. 독서는 몸이 책을 통과하는 것이다.(305쪽)

책이 되지 못한 책들의 피해, 비평이 되지 않는 비평의 폐혜는, 수많은 책을 읽는 ‘나’들에 의해 청산될 수 있다. 어느 출판사의 사훈은 책 때문에 망가지는 나무가 없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한다. 좋은 독자는 지구를 구한다.(30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