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6

"가냘픈 희망"에 대하여(존 버거)

"죽은 이들이 결코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다는 건 여러분도 나만큼 잘 알고 계십니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다면 망자들은 어떻게든 우리를 도와주려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마땅히 귀를 기울여야 하죠. 그렇지 않은가요? 그런데 죽은 이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이제 정치적인 행위가 되었습니다. 전에는 그저 전통적이고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행위였죠. 그러던 것이, 이윤을 내지 못하는 것이면 전부 '퇴물' 취급을 하는 세계 경제질서에 저항하는 행위가 되었습니다. 세계 곳곳, 너무나 다른 여러 역사 속의 망자들로부터 도움을 받는다면, 우리가 함께 공유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가냘픈 희망이지요. 하지만 살찐 희망은 헛소리입니다. 그러니 이 가느다란 희망을 간직해 나갑시다...

view_/책_ 2015.04.20

아이들 때문에, 다시 희망을 품습니다

이틀간 너머서교회 이삭이네, 다빛이네, 아진이네, 민지네, 예지네가 함께 산음자연휴양림으로 여행을 갔습니다.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를 예감하고 저녁엔 조촐한 기쁨의 성찬도 준비했었지요. 그런데 졌습니다.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인 눈부신 초록 생명들도, 고요한 바람과 눈부신 푸른 하늘도,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만 같던 밤 하늘의 수많은 별빛들도 우리의 절망을 쉬이 위로하지 못했고, 어느 누구도 섣부린 희망을 말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눈부신 눈빛, 웃음, 앙탈, 투정, 재치, 위트, 사랑, 생명들은 우리의 절망을 가소롭게 만들고, 금새 희망을 만들어내더군요. 아이들 때문에, 다시 희망을 품습니다. 그게 부모된 우리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視線_ 2012.12.20

2012년 12월 19일 박근혜 대통령 당선

페이스북에 인용하고 올린 글들 12월 19일 _4.11의 트라우마를 이겨내길. 이 악물고 집을 나선다. _이만열 교수님의 포스팅 지금은 새벽 2시. 하나님 앞에 엎드린다. 그의 뜻을 묻는다. 매일 읽는 성경 순서를 따라 누가복음 24장을 읽는다. 스승의 죽음을 슬퍼한 나머지, 모든 것을 포기한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나타나 격려하면서 부활의 새로운 소망을 주신다.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셨다"(24:45)는 말씀이 와 닿는다. 그리고 찬송을 부른다. "뜻없이 무릎꿇는 그 복종 아니요 운명에 맡겨 사는 그 생활 아니라 우리의 믿음 치솟아 독수리 날듯이 주 뜻이 이뤄지이다 외치며 사나니. 약한 자 힘주시고 강한자 바르게 추한자 정케 함이 주님의 뜻이라 해아래 압박 있는 곳 주 거기 계셔서 그..

窓_ 2012.12.20

우정, 희망

하고 싶은 것, 그러나 하지 못하는 것. 하지 못하는 것, 그러나 언젠가는 꼭 하고 싶은 것. 조금 전까지 새벽 2시가 넘도록 아내와 이야기했다. 숱한 우리의 좌절은 우리의 우정을 더욱 공고히 한다. 김소연 시인은 희망을 "삶의 진자운동을 일으키는 자기장. 흔들리고 흔들리다 보면 닿게 되는 지점"이라고 했다. 흔들리는 나의 삶, 곁에 아내가 있어 다행이다. 우린 위기 속에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알아간다. 아내와의 우정이 나의 희망을 더욱 공고히 한다.

霓至園_/soon_ 2012.10.23

생존을 모색하기, 희망을 모색하기 (지승호, <우석훈, 이제 무엇으로 희망을 말할 것인가>)

대학가(2008년 4월호)_책 읽어주는 남자 생존을 모색하기, 희망을 모색하기 -그리고 ‘희진’에게- 김진형 간사 현실을 마주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한편, 오늘의 현실 속에 우리와 공존하고 있는 온갖 불의와 슬픔, 아픔에 대하여 정직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 깊은 고통을 감당해내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런 까닭에 절망을 마주하는 정직한 시선 속에 우리의 희망은 시작된다고 말하고 싶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미래다.” 요즘 읽고 있는 책에서 언급되는 이 명제 앞에, 가슴이 멈추었단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 그들에게서 시대의 소명을 받는 일. 그것은 힘들지만, 우리가 붙잡아야 할 희망이고 가야 할 길이라고, 난 그것을 읽었단다(지승호,『..

기고_/대학가_ 2008.03.10

'희망', 아직도 그 아련한 이름

'희망', 아직도 그 아련한 이름 가룟 유다의 가장 큰 죄는 무엇이었을까요? 스승을 배신하여 그의 목숨을 팔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유다를 향하여 '세상 끝까지' 사랑하신 예수님께 결국 돌아가지 못하였기 때문일까요? 저는 후자라고 봅니다. 우리는 늘 그분을 배반하지만, 그것을 용서하지 못할 우리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육신의 생명이 주어져있는 한, 늘 그렇게 기회도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그분께 돌아갈 수 있는 은혜 말입니다. 우리의 희망은 언제든지 그분께 돌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의 비극은 그 은혜를 받아들이지 못한 자기 의義, 그것으로 자신을 정죄하여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지으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13:..

窓_ 2003.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