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4 7

예서는 최고의 걸작품

이번 주는 계속 야근이다. 예서는 그저께 아빠한테 전화해서 야근한다고 버럭 화를 냈고, 어제는 왜 계속 야근하냐고 울먹였고, 오늘은 회의하느라 전화를 받지 못한 아빠에게 영상을 남겼다. (버럭 영상인 줄 알았으나) "나는 엄마아빠가 만든 최고의 걸작품이다. 최고의 걸작품이니까 무엇이든지 당당하게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하고 외치는 씩씩한 예서를 보니 오늘의 설움도 털어버릴 수 있을 것 같다.

霓至園_/rainbow_ 2015.04.30

"가냘픈 희망"에 대하여(존 버거)

"죽은 이들이 결코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다는 건 여러분도 나만큼 잘 알고 계십니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다면 망자들은 어떻게든 우리를 도와주려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마땅히 귀를 기울여야 하죠. 그렇지 않은가요? 그런데 죽은 이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이제 정치적인 행위가 되었습니다. 전에는 그저 전통적이고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행위였죠. 그러던 것이, 이윤을 내지 못하는 것이면 전부 '퇴물' 취급을 하는 세계 경제질서에 저항하는 행위가 되었습니다. 세계 곳곳, 너무나 다른 여러 역사 속의 망자들로부터 도움을 받는다면, 우리가 함께 공유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가냘픈 희망이지요. 하지만 살찐 희망은 헛소리입니다. 그러니 이 가느다란 희망을 간직해 나갑시다...

view_/책_ 2015.04.20

애도와 멜랑꼴리의 경계선에서 살아남은 이들을 위한 책(출판저널, 2015년 4월호)

2015년 4월호 이 달의 책 편집자 서평 애도와 멜랑꼴리의 경계선에서 살아남은 이들을 위한 책 오늘, 우리는 우울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며 산다. 우리는 우울을 먹고 마시며, 애도가 일상이 된 나날들을 산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 (2014)의 여주인공 산드라도 우울을 앓는다. 우울증으로 병가를 낸 사이, 회사는 직원들의 투표를 거쳐 그녀의 해고를 결정한다. 직원들은 그녀 대신 보너스 1000유로의 보상을 받을 것이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안 그녀는 사장을 찾아가 다시 한 번 기회를 청한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 재투표를 앞두고 1박2일 간 산드라는 동료를 찾아 집을 나선다(그래서 이 영화의 원제는 “Two Days One Night”이다). 산드라도, 동료들도 고달프다. 신자유주의 사회와 만성화된 경제 위기는..

기고_/etc_ 2015.04.16

예지의 첫 번째 이메일

아홉 살 예지가 아빠에게 메일을 썼다. 이메일 계정을 만들어 주었는데, 제대로 된 첫 번째 메일을 아빠에게 보낸 것이다. 컴퓨터나 스마트폰 사용을 거의 금지하고 있는 까닭에, 다른 아이들보다 한참 느리다. 여섯 줄 메일을 쓰는데 더듬더듬 독수리 타법으로 거의 30분이 걸렸다. 그러나 느린 걸음에 더 많은 걸 보고 느끼고 누리고 깊어질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교회를 갈지 물으며 "두근두근 아빠의 선택은?"하고 덧붙이는 센스도 감동이고, 집안의 권력 서열을 제대로 숙지하고 '모르면 엄마한테 물어보고 알려 달라'는 그 눈치도 감동이고, "아빠 사랑해!"로 맺는 그 마음도 감동이다. 이제, 답장을 써야겠다. 고맙다, 딸.

霓至園_/rainbow_ 2015.04.07

Y에게

Y에게, 무의식은 내 안에 깃든 타자의 흔적이고 타자를 향한 사랑을(또는 그 사랑이 유실된 흔적을) 탐구하는 것이 정신분석의 본령이라면, 가장 치열했던 사랑의 슬픔이 오히려 가장 무심하고도 심상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우리의 삶이 아닐까 생각하는 시간이었지, 내게는. 그리고, 그렇다면, 과연 무의식을 탐사하여 그것에 닿는 것은 가능할까, 다시 말해, 타자에게, 그 열렬한 사랑에 우리는 얼마만큼이나 닿을 수 있을까 묻고 의심하는 시간이었지. 확신이나 불신의 확정적 단정이 아니라는 점에서 만족해. 밤새 비바람이 창을 때리고 창밖에 번개에 번쩍했는데,예지가 무서워서 잠을 못자더라. 그래서 옆에 누워 소리와 빛의 간극을 헤아리기 시작했어. 번개가 치고, 하나, 둘, 셋...일곱, 우르르쾅쾅. 번개가 치고, 하나,..

窓_ 2015.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