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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보지 않은 길’을 도모하는 ‘못다한 사랑’(복음과상황, 130705)

Soli_ 2013. 7. 27. 04:02

복음과상황(2013년 8월호)_“독서선집”



‘가 보지 않은 길’을 도모하는 ‘못다한 사랑’

<옥중연서>(디트리히 본회퍼, 마리아 폰 베데마이어 지음│정현숙 옮김│복있는사람 펴냄│2013년)

<목메는 강산 곱게 가슴에 수놓으며>(문익환 지음│사계절 펴냄│1994년) 






살아서 못다한 사랑/천 길 무덤 속 고요한 어둠/뚫고 솟아나리/차가운 샘물로

못다한 사랑 모이고 모여/내를 이루어 흐르리/목메는 강산 곱게 가슴에 수놓으며/흐르고 흘러 바다로 가리/바다로 갔다 구름 되어/못다한 사랑 눈물로 쏟으리 

_문익환의 시, “못다한 사랑” 전문


살아서 못다한 사랑은 산하(山河)를 곡진히 흘러 바다에 이르고, 결국 구천(九天)에 올라 다시 눈물 같은 빗줄기로 세상에 내린다. 비 내리는 날이면 끝내 못다한 사랑을 헤아려 잠시라도 숙연한 그리움을 품어야 한다. 황국명 시인은 "비가 오면 어김없이 몸 하나 가릴 만큼의 우산을 펴는" 사람들더러 "가끔은 비 내리는 하늘을 우산을 접은 채 쳐다 보아야 한다"고 썼다. 지금은 '못다한 사랑'이 뿌리는 빗줄기를 맞아야 할 시간이다. 

 

타자를 위한 존재란, 그 자신을 던짐으로 완성된다


우리가 헤아려야 할 ‘못다한 사랑’이 여기에 있다. 나치 체제에 저항하다가 히틀러 암살계획에 가담하여 1943년 체포되고 1945년 나치가 항복하기 직전에 처형당한 목사이자 예언자적 신학자였던 디트리히 본회퍼(1906-1945). 그리고 그가 체포되기 직전 약혼했던 그의 연인 마리아 폰 베데마이어(1924-1977). 그들의 못다한 사랑은 영원한 사랑의 예표로서 반추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 


대한기독교서회에서 출간한 <본회퍼 선집>이 ‘전집’이 아니어서 아쉬웠고, 특히 연인 마리아와 주고받은 서신집이 빠져서 더욱 아쉬웠던 차에, 이번에 복있는사람에서 이 서신집을 <옥중연서>란 애틋한 이름으로 출간하여 무척 반가웠다. 본회퍼와 마리아의 얼굴이 새겨진 소박한 겉표지를 들어내면, 본회퍼가 갇혔던 테겔 형무소 10호실 감방이 드러난다. 순간 애틋함은 처연함으로 추락하지만, 그들의 연서는 돌연 세상이 넘볼 수 없는 낭만에 이른다.


 


1942년 시작된 그들의 사랑은 1943년 1월 약혼을 하게 되고, 결혼의 언약 직전까지 순조롭게 당도하는 듯 보인다. 본회퍼가 37세, 마리아가 19세였다. 하지만 그들이 속한 야만의 시대는, 끝내 그들 사이를 갈라놓는다. 1943년 4월 본회퍼는 체제 전복 혐의로 체포되어 테겔 형무소에 갇힌다. 그리고 1944년 12월, 본회퍼가 마리아에게 보낸 성탄 편지를 마지막으로 서신 교환은 끝난다.    


사랑은 역설이다. 타자를 위한 존재란, 그 자신을 던짐으로 완성된다. 그리하여 오직 의미로만 존재해야 하는 숙명을 기꺼이 수용한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란 통념은, 그 숙명 앞에 여지없이 무너진다. 본회퍼와 마리아의 짧은 사랑은, 서로의 부재를 견디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들은 미래에 대한 낙관을 다짐처럼 써놓지만, 비극적 종말을 아는 독자들은 완곡한 슬픔을 앓으며 그들의 사랑을 추적한다. 그들의 그리움이 격렬할수록 우리의 슬픔은 사무친다. 


디트리히, 우리 삶에 슬픔이나 절망이 찾아오는 힘든 시간이 없을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그러한 시간이 우리 둘보다, 우리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보다 더 커질 수는 없습니다. 지금까지 슬픔이나 절망이 결코 우리보다 더 커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제게는 항상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신기하기만 합니다. 그 근거를 제게서 찾을 수는 없으니까요. 어쨌든 지금 분명하게 알게 되는 것은, 슬픔도 절망도 우리를 넘어설 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122-123쪽)


본회퍼의 단단한 신학은 어떤 사랑의 언어를 감행할 것인가. 거침 없는 사랑을 고백하고 호소하고 기약하는 본회퍼의 사랑은 뜨겁게 생동한다. 하지만 체포된 첫해가 저물 즈음, 그의 명민한 이성은 차츰 비극의 전조를 감지하기 시작한다. 고독은 더욱 깊어지고 불안과 초조함이 그의 일상을 차츰 지배한다. 1943년 성탄절, 본회퍼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신의 섭리’에 대해 쓴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모든 어둠, ‘쓰라린 이별의 고통’ 등에 함몰될 때 마음속엔 불신과 쓴뿌리가 돋아난다. 바로 그때, 성탄의 메시지를 기억하자고 다짐하듯 말한다.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171쪽) 하나님이 함께하실 때, 희망의 부재는 있을 수 없다. 그리고 마침내 일 년이 다시 흐른 1944년 12월에 쓴 그의 마지막 편지에는, 모든 단절의 고독을 호소하면서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한 강고한 확신의 언어가 새겨져 있다. 마치 죽음을 예감한 이의, 그러나 더 이상 요동치 않는 숭고한 작별인사처럼 읽힌다. 편지 말미에 덧붙인, 성탄 인사로 갈음한 그의 시는 이렇게 끝난다. 


주님의 강한 팔에 안겨 있는 놀라운 평화여!/낮이나 밤이나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은

다가올 모든 날에도 변함없으시니/무슨 일 닥쳐올지라도 확신 있게 맞으렵니다.(347쪽)


‘늦봄’은 ‘봄길’을 따라 길을 낸다


본회퍼와 마리아의 사랑처럼, 야만의 시대 속에서 예언자적 소명을 다하면서도 지극한 사랑을 뜨겁게 수행했던 이들이 우리에게도 있었으니 바로 문익환 목사와 그의 아내 박용길 장로였다. 문익환은 56세가 되던 해에 ‘늦봄’이라는 아호를 지었고, 아내 박용길은 그와 함께 가겠다는 뜻으로 ‘봄길’이라는 아호를 지었다. 문익환은 <공동번역성서>를 번역하던 1970년 11월, 청년 전태일의 죽음을 접한 이후부터 시인이 되었고 투사가 되었고 새로운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그리고 59세가 되던 해에 ‘3.1민주구국선언’을 통해 한국 현대사에 통일 민중운동을 이끄는 지도자로 전면에 나선다. 77세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마지막 16년 동안 자신의 생일 11번은 감옥에서 맞이하게 된다. 



서두에 인용한 시 “못다한 사랑”의 한 구절을 제목으로 엮은 문익환의 옥중서간집 <목메는 강산 가슴에 곱게 수놓으며>[각주:1]는, 그가 여섯 번째로 수감된 1991년 6월부터 1993년 3월까지 쓴 것이다. 이 책의 첫 번째 장은 아내 박용길 장로를 향한 연서다. 그들의 사랑은 청춘의 결기였다. 박용길은 꽃잎을 눌러 편지에 포개어 보냈고, 문익환은 ‘떨림 없는 사랑은 거짓’이라며 화답하며 이기철의 시 “지상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를 선물하였다. 


가 본 길만이 길이 아니다. 어둠 속으로 뻗은/가 보지 않은 길은 얼마나 깊고 싱싱한가

그곳에 흩어진 마음 조각들이/저들끼리 모여서 노래가 된다.(59쪽)


‘못다한 사랑’은 기어코 ‘가 보지 않은 길’을 도모한다. ‘늦봄’은 ‘봄길’을 따라 길을 낸다. “삶은 선택을 허락하지 않는다. 생(生)은 명(命)이다.”(<문익환 평전>, 399쪽) 어떤 삶, 어떤 죽음, 어떤 사랑은 운명이 되어 야만과 비극의 시대에 길을 낸다. 그들처럼 나의 삶도, 죽음도, 사랑도 그러하기를 소망한다. 






  1. 이 책은 현재 절판되었고, 추후 출간된 <문익환 전집>(전 12권, 사계절)에 포함되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