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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___목사님께 추천하는 열한 권의 책

Soli_ 2013. 4. 18. 02:52


누군가에게 책을 추천한다는 것은 상당한 용기를 각오해야 하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제가 읽은 책에서만 추천할 수 있고, 제가 읽는 책의 범위는 지극히 한정되어 있으며 편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의 목록이 하나의 목록으로서 유효하다는 것, 그리고 제가 추구하는 어떤 가치에 대한 확신이 반영되어 있는 까닭에, 종종 그런 무모한 용기를 내기도 합니다. 용기 내어 감히 몇 권의 책을 추천해드립니다. 


저에게 내주신 '숙제'가 일반 분야 5권, 신앙/신학 분야 5권의 책 추천이었는데요, 일반 분야는 조금 넘치나, 기독 분야는 겨우 채웠습니다. 그것이 못내 안타깝습니다(아무래도 목사님께서 어지간한 기독교 분야의 좋은 책들을 읽으셨을 것 같아서 신앙/신학 분야는 최근 신간으로 제한하였습니다).


★일반 분야_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사사키 아카루 지음|자음과모음2012)
루터에서 시작하여 마호메트, 니체, 도스토예프스끼, 프로이트, 라캉 등의 사유를 쫓으며, '책이 곧 혁명'임을 논증합니다. 종교개혁을 비롯한 모든 혁명은 책에서 시작하였고, 저자는 기어이 그 희망을 선동합니다. 텍스트의 힘을 느끼게 하는 책이죠.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지그문트 바우만동녘2012) 
2012년에 읽었던 책 중 최고의 책입니다. 이 책으로 시작해서 바우만의 책은 거의 찾아 읽었던 것 같아요. 관계로 규정되는 나의 존재론, 그리고 SNS 시대 속에서 위태로운 우리 군상들을 향하여 바우먼은 지혜로 충만한 44통의 편지를 띄웁니다. 마지막 편지의 제목이 "나는 반항한다, 고로 우리는 존재한다"이지요. 카뮈의 텍스트를 빌어 '반란과 혁명, 자유를 향한' 결기를 요청합니다. 아, 정말 좋은 책입니다. 

청춘의 커리큘럼 (이계삼한티재2013)
이계삼 선생은 이 책의 대부분을 '2011년 밀성고 2학년 4반 교실'에서 썼다고 합니다. "그때 아이들은 숨죽여 공부를 하고 있었고, 가끔 나는 아이들의 무구한 얼굴들을 바라보곤 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그들 앞에 놓여 있는 세상사의 격랑들을 생각하며, 그들이 견뎌내야 할 세파의 고통을 생각하며 마음 저리곤 했다"고 썼습니다. 그리고 이계삼 선생은 곧 교직을 그만 두고 밀양의 송전탑반대대책위에서 활동하고 계시죠. '책을 소개하는 책'으로, 웬델 베리, 도로시 데이, 하워드 진, E.F. 슈마허 등의 길을, 그리고 이계삼의 길을 제시합니다.   

로쟈의 인문학 서재 (이현우산책자2009)
제가 제일 좋아하는 서평가입니다. 그에게 빚진 것이 꽤 됩니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책들도 로쟈 이현우 덕분에 읽게 되었죠. 이현우의 책이 여러 권 나와 있는데요. 우선 이 책을 추천합니다. 그의 사유의 지도를 대략 알 수 있는 책이죠. 매우 유익합니다. 

살아야 하는 이유 (강상중사계절2012)
강상중은 '지옥과 같은 절망'을 마주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고 답합니다. 근거 없는 낙관과 행복론을 파헤치고 그 허위를 입증합니다. 전 간혹 강상중 교수의 책을 읽으며 성서의 지혜를 생각하곤 합니다. 절망해야 희망할 수 있는 극단의 역설, 말입니다. 

글쓰기 생각하기 (윌리엄 진서돌베개2007)
사유의 훈련에 있어 글쓰기 연습이 가장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글쓰기 분야에 있어 가장 유용한 책으로 꼽고 싶습니다. 물론 글쓰기라는 것은, '그 땅의 체화된 언어'를 전제로 하는 것이기에 모국어를 잘 연습해야겠지요. 이오덕 선생님의 책들과(아이들을 위한 글쓰기 교재가 특히 좋습니다) 이태준의 <문장강화>를 더불어 추천하고 싶습니다.

★신앙/신학 분야_

공부하는 삶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양주유유2013)
소명으로서의 공부를 다룹니다. 공부의 목적, 공부하는 자의 정신과 자세, 그리고 세세한 지침들이 멋진 문장 속에 담겨 있습니다. 읽다보면 공부에 대한 충만한 결의에 이르게 되죠. 좋은 책입니다만, 의외로 허점도 있습니다. 예스런 태도와 고루한 편견이 종종 거슬립니다. 그리고 공부에 대한 '소명'은 다루지만, 그것이 도대체 우리 현실에서 어떤 함의를 갖는 것인지에 대해선 좀 막연합니다. 이를 감안하고 보시면 좋겠습니다. 

산둥 수용소 (랭던 길키새물결플러스2013)
제2차 세계대전 중 중국의 산둥 수용소에 포로로 수용되었던 저자의 수기입니다. 랭던 길키는 라인홀드 니버와 폴 틸리히의 계승자로도 인정받는 저명한 신학자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산둥 수용소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드러나는 인간 실존의 문제를 다룹니다. 1945년의 산둥수용소의 이야기, 1966년 미국에서 출간된 책이나, 2013년 한국을 사는 사람들, 특히 그리스도인의 '감춰진 실존'을 향해 이 책은 뚜벅뚜벅 나아갑니다. 

묻고 답하다 (강영안·양희송홍성사2012)
오늘의 시대를 사는 강영안 교수의 혜안을 엿볼 수 있는 책입니다. 동서양의 오랜 지혜가, 이 땅의 현실에 어떻게 대응하는 지를 잘 보여줍니다. 넓고 깊은 철학적 사유가 재밌고 잘 읽힙니다. 사실 이런 책은 드물지요. 대담자로 질문하는 자의 역할을 맡았던 양희송 대표의 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화해의 제자도 (에마뉘엘 카통골레IVP2013)
불화의 시대에 평화의 유일한 희망은 여전히 교회라고, 공동체라고 말하는 책입니다. 진부해 보일 수도 있으나, 그것이 곧 우리의 옳은 길이라고 강조합니다. 한국교회가 이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제발!

성서의 에로티시즘 (차정식꽃자리2013)
좋은 신학자는 단지 성서를 잘 해석하고 논증하는 사람이 아니라, 성서의 텍스트 속에서 시대를 폭로하고 길을 분변하고 제시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통념을 깨뜨려 통찰을 제시하는 사람이죠. 그런 면에서 차정식 교수는 주목할 만한 신학자입니다. 이 책은, 성에 대한 갖가지 억압과 금기를 극복하고 마침내 하나됨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조망합니다. PDF 파일로 일독 했는데, 책은 이번 주에 출간된다고 들었습니다. 이 책이 널리 읽혀지길 바랍니다. 

모쪼록 작은 도움이라도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2013년 4월 18일
김진형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