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6

사직서와 이력서 사이

※ 〈기획회의〉 456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사직서와 이력서 사이 김진형, ‘아직은’ 생각의힘·아토포스 편집장 soli0211@gmail.com 헤아려보니 출판사에서 일한 지 십사 년 정도 되었습니다. 십사 년간 세 곳의 출판사에서 일했습니다만, 컴퓨터 하드 속에 감춰두었던 사직서를 꺼내어 슬쩍 날짜를 적어보거나 이력서에 그간의 세월을 보완해놓는 일은 훨씬 잦았습니다. 사직서와 이력서를 새삼 확인해보는 일요일과 월요일 사이의 시간들은 유난히 빠르게 흘렀습니다. 거취에 대해 고민하는 후배들을 다독여 그들의 자리로 다시 돌려보내곤 했지만 정작 제 자신은 쉬이 흔들리고 무너지곤 했습니다. 노동자로서의 자괴감을 토로하는 후배들에게 저는 그들에게 쉬이 동조하기보다는 정색하며 말하는 편을 선택했습니다. 편집자는 노..

이직移職

책담, 안녕_2015년 6월 12일 책담을 만들던 시간들과 책담이란 이름으로 책을 만들던 시간들에게, 이곳에서 만들었던 책들과 만들고 싶었으나 만들지 못한 책들에게, 한 권의 책을 마감한 직후 습관처럼 카페 트위드를 찾아 듣던 비틀즈의 노래들에게, 스스로를 칭찬하고 싶어 홀로 호사를 누리던 제인버거의 손맛들과 종종 황홀경에 빠뜨리던 망원시장 떡볶기집들의 유혹들과 시장 한 모퉁이 2000원짜리 칼국수의 후한 인심들에게, 가장 먼저 봄을 알리던 성미산의 꽃들과 내 가슴속 슬픔을 아우르던 한강변에 살던 조용한 바람들에게, 확신이 아닌 질문을 벼릴 수 있도록 보듬던 절두산과 양화진의 숭고한 죽음들에게, 지치고 외롭고 고달플 때 나를 위로하던 우정의 사람들에게 작별의 인사를 전한다. 책담과 망원, 그들과 함께했던..

窓_ 2015.06.22

가을의 마지막 날

가장 순수했던 자리에 함께했던 벗과의 점심 식사부터, 나의 밥벌이부터 걱정하며 마음 한 자락까지 세심히 챙겨주시는 '거래처' 분들과 작별하며 보낸 오후를 지나, '이곳'에서 함께 고민하며 치열하게 일했던, 그러나 다들 각자의 자리로 흩어진 오랜 동료들과의 저녁 뒷풀이까지 하루가 길고도 깊었다. 마음은 이제 겨울을 맞을 준비가 되었다. 그래, 오늘이 가을 마지막 날인거다.

窓_ 2012.11.21

밥벌이

동료가 밥을 샀고, 난 얻어 먹었다. 나의 밥벌이를 걱정해주는 동료의 마음이 감사했다. 가진 재산 없고, 아내는 전업 주부고, 아이들은 나날이 무섭게 자란다. 떠나야 할 이유와 의미도 소중하고 모든 좌절, 모든 소망에도 근거가 있겠으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당장 오늘을 살아내기 위한 밥벌이다. 사실, 그것이 가장 두렵다. 동료의 진심어린 눈빛, 그간 애써 지켜오던 온갖 그럴듯한 명분이 그 앞에 무너졌다.

窓_ 2012.11.06

IVP, 내 자리

(★이 글은 페이스북에 남긴, 'IVP 퇴사'를 밝힌 최초의 글입니다. 제가 페이스북에 남긴 글 중 가장 많은 분들이 '좋아요'를 눌러주시고 '덧글'을 달아주셨고, 많은 분들께서 메일과 편지를 주시거나 찾아오셨습니다. IVP에서 보낸 9년 1개월의 시간이 그저 덧없이 흐른 것은 아니었던 것 같아 위로가 되었습니다. 마음을 만져주신 분들, 고맙습니다.) IVP에서 9년 조금 넘게 일했는데, 제 책상은 언제나 지금 풍경 거의 그대로였습니다. 떠난 후엔 이 자리가 많이 그리울 것 같아요. 그래서 저의 책상을 사진으로 담아보았습니다. 몇 달 전 자리 옮기기 전엔 좀더 근사했는데, 그때 사진을 남겨둘 걸 그랬습니다. 맥북을 애플시네마 모니터에 연결해서 씁니다. 개인 일이건 업무건 모두 이 맥북으로 해결합니다. 아..

視線_ 2012.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