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희 5

진보를 성취하는 사랑의 서사

진보를 성취하는 사랑의 서사 《이혼일기 – 이서희 에세이》이서희 지음, 아토포스 펴냄, 2017년 8월 이 책은 사랑과 이별에 관한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에게로 향하는 내밀하고도 불온한 연서다. 타자로부터 연유했던 여인은 사랑과 이별의 계절을 거쳐 자신에게로 귀착한다. 그러고는 다시 여행을 준비한다. 이제 비로소 타자에게로 닿을 수 있으니 삶은 다시 뜨겁고 아름답고 충만할 것이다. 무릇 생명은 계절의 관습 속에서 진보한다는 점에서, 사랑은 진보의 근거가 된다. 반복의 습속에 머무는 것은 결코 사랑이 아니다. 그것을 뚫고 진보를 성취하는 것이 사랑, 그렇다면 이 책을 사랑의 서사로 불러도 좋다. 관능적 서사의 유혹자, 이서희 작가의 귀환 기억을 탐험하고 삶의 서사를 넘나들며 관능적이면서도 매혹적인 글..

view_/책_ 2017.11.07

2016년 나의 책 나의 저자

2016년 나의 책 나의 저자 올해의 책은 없다. 다만 나의 책이 있을 뿐이다. 그것을 알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한때 책에 대한 광신도였다. 책으로 회심했고 책 속에 길이 있다고 믿었으며 책의 사람이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 믿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책의 사람들은 곧잘 책을 배반하였다. 좌절은 타자로부터 시작되었으나 절망은 내게서 귀결되었다. 책에 대한 신앙으로 시작한 밥벌이였으나 이제는 밥벌이를 위해 책을 만든다. 좋은 책을 놓고 필사적으로 토론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에게 좋았던 책을 가만히 듣고 나에게 좋았던 책을 조근조근 말할 뿐이다. 설득은 그 책의 몫이다. 그가 그 책의 텍스트로 들어갈 때에야 그 책이 그의 삶으로 틈입할 것이다. 다만 나는 나의 소중한 책을 성실하게 기록하..

view_/책_ 2016.12.28

낭비되고 낭비하여 아름다운, 유혹으로의 초대

낭비되고 낭비하여 아름다운, 유혹으로의 초대 《유혹의 학교》(이서희 지음┃한겨레출판 펴냄┃2016년 5월) 손쉬운 사랑은 없다. 다른 존재를 향한 열망이 발화되는 것은 순간이나 그 존재에 닿을 때까지는 고독의 시간을 앓아야 한다(고독이 소중하다면 그것은 존엄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존재의 심연은 견고하므로, 더욱이 다른 존재라면, 내 고독의 보상을 그에게 쉬이 기대할 수 없다. 천운이 도래하여 열망하던 존재와 연인이 되었다고 해도, 그것을 섣불리 사랑이라고 할 수 없다. 사랑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며, 지금부터의 시간들로 치열하게 증명되어야 하니까. 세상에 손쉬운 사랑은 없으나 그렇다고 포기할 수 있는 사랑도 없다. 포기할 수 있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어떤 큰 물살로도 그대의 사랑을 끄거나..

<관능적인 삶> 출간 기념 북토크 후기

★ 서평은 여기에 있습니다_ http://soli0211.tistory.com/486 출간 기념 북토크 후기 2013년 12월 17일 스폰지하우스_ 1. 진행자 김두식 교수는 처음부터 살짝 소외되었다. 이서희 작가와 민규동 감독의 은밀한 우정 때문이다. 이서희 작가는 민규동 감독의 이름을 풀이하며, 곁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별 같은 존재라고 하였다. 멋졌다. 김두식 교수는 살짝 소외되었으나, 그 소외를 즐겼을 것이다. 어떤 기쁨은 자신의 소외됨을 기꺼이 허락한다. 2. 김두식 교수와 이서희 작가는 ‘페친’이란다. 김두식 교수는 그를 둘러싼 '페이스북 현상’에 주목하였고, 강렬한 매혹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흔쾌히 진행 요청을 받아들였단다. 이서희 작가의 북토크 진행을 한다고 했더니 주위 사람들이 40년 ..

view_/책_ 2013.12.18

'관능'의 습격에 관한 소고

'관능'의 습격에 관한 소고 (이서희 지음|그책 펴냄|2013년 11월) 시인 김소연은 '근거를 찾아 나선 상태'를 "홀림"으로, '근거를 아직 찾지 못해 불안정한 상태'를 "반하다"로, '근거들의 수집이 충분히 진행된 상태'를 "매혹"으로 정의한다(, 123쪽). 그렇다면, 이 책에 대한 매혹은 합당하다. 감각을 한껏 자극하는 미려한 문장들이 그 첫째 이유다. 문장들에 스민 삶의 서사는 독자의 가슴을 도발하여 흔들어 놓는다. 그리하여 요동친 존재는 비로소 삶의 의미를 체득한다. 이른바 '관능'의 습격이다. 미셀 푸코는 성(Sex) 문제를 사회적 권력의 지배 관계로 고찰한다. 지배 권력은 '합법과 비합법, 허용과 금지'의 통치 기제로 성을 통치하려 한다. 성은 근원적 욕망의 문제인 까닭에, 사회적 통제(..